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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고갯길을 몇차례 넘으면 산문에 이르는 사색의 길이 있었다. 근래에 생긴 수종사 일주문
가파른 고갯길을 몇차례 넘으면 산문에 이르는 사색의 길이 있었다. 근래에 생긴 수종사 일주문 ⓒ 이승열
수종사 처마 끝으로 올라온 양수강 물고기

약간의 시멘트를 덧입혀 정리가 되었다고는 하나, 수종사 가는 길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난코스의 연속이다. 30도에 이르는 급경사, 180도를 도는 급커브, 아직 포장되기 전 붉은빛 황토를 군데군데 고스란히 드러낸 길 끝 푸른 하늘과 맞닿은 곳에 수종사가 있었다.

송글송글 이마에 땀이 맺힌 채 한고비 돌아 뒤돌아보면 강물 사이로 양수마을이 성냥갑 만하게 보이고, 다시 한고비 돌아 뒤돌아보면 등 뒤로 시린 강물 속에서 산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일주문도 입구의 부처님도 없었던 호젓했던 시절 우리는 이 길을 ‘사색의 길’이라 불렀다.

수종사에 가면 삼정헌 옆에서  종일 지치지도 않고 강물을 바라보며 참선에 든 개를 만날 수 있다.
수종사에 가면 삼정헌 옆에서 종일 지치지도 않고 강물을 바라보며 참선에 든 개를 만날 수 있다. ⓒ 이승열

삼정헌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풍경. 힘차게 달려온 북한강이 넉넉한 남한강과 합쳐져 한강이 되어 다시 달린다.
삼정헌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풍경. 힘차게 달려온 북한강이 넉넉한 남한강과 합쳐져 한강이 되어 다시 달린다. ⓒ 이승열
해동제일의 사찰이라 칭송한 서거정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더 이상 소개가 필요없을 만큼 유명한 곳, 이미 몇 개의 기사로 소개된 절 수종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실 쓸까 말까로 한참을 고민했다. 어차피 여행이란 같은 곳에서도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과 만나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니, 내가 알고 있는 수종사와 찻집 삼정헌, 우리에게 삼정헌을 선물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삼정헌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두물머리 풍경은 폐부 속 찌꺼기를 한번에 날려 버릴 만큼 시원한 눈맛을 자랑하지만, 아직 삼정헌이 생기기 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맨눈으로 보는 두물머리 풍경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넉넉한 품을 가진 남한강이 내쳐 달려온 북한강을 품고 드디어 하나가 되어, 한강이 되어 흐르고 있는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곳, 그곳이 수종사다.

양수강 봄물을 산으로 퍼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공광규의 ‘수종사 풍경’ 일부-


이미 풍경이 되어버린 삼정헌 다모 보살

차를 우리기에 가장 좋은 물은 자기의 성질을 드러내지 않는 물이다. 개성이 강한 물은 찻잎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향기와 맛을 훼손할 수 있다. 자기 색깔이 없어야 차의 개성을 온전히 흡수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수종사 물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물이다. 차 잎 냄새만 맡아도 원산지를 안다는 차 전문가 ‘손성구’님의 수종사 석간수에 대한 평이다.

나한전에서 바라본 삼정헌. 차를 마시거나 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거며 강을 바라보면 된다. 댓돌에 가득한 신발이 정겹다.
나한전에서 바라본 삼정헌. 차를 마시거나 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거며 강을 바라보면 된다. 댓돌에 가득한 신발이 정겹다. ⓒ 이승열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삼정헌(三鼎軒)  바깥 풍경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삼정헌(三鼎軒) 바깥 풍경 ⓒ 이승열
이 곳 수종사에 찻집 삼정헌을 둘 수 있음은 이 석간수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수종사 석간수로 차모임을 열었을 만큼 이곳 석간수의 물맛은 예로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한다.

내 것, 우리 것만 찾고 챙기는 각박한 세상에 두물머리 풍경을 통째로 담은 찻집 삼정헌을 ‘당신들의 극락’으로 만들지 않고 애써 대중들에게 나누어주신 주지 스님께 진정 고마움을 전한다. 차 마시고 목을 축일 수 있음이 납승의 자비가 아니라 본연이라니. 참 멋지고 또 고맙다.

이미 그 곳 풍경이 되어버린 다모 보살의 뒷모습.
이미 그 곳 풍경이 되어버린 다모 보살의 뒷모습. ⓒ 이승열
삼정헌에는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한 양수강 물고기를 닮은 다모 보살이 또 다른 풍경이 되어 찻집을 지키고 있다. 자신을 한 점 드러냄 없는 수종사 석간수 같은 그녀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삼정헌 풍경 속에, 양수강 풍경 속에 언제나 풍경처럼 스며 있었다.

객이 들면 드는 대로 요란스레 애써 대접하지 않고 풍경처럼 스며 있다가 찻물을 대접하고, 차 마시는 법을 설명하는 그녀의 맑은 얼굴은 벌써 참선에 든 물고기와 표정이 같다. 공짜라서 우린 참 좋은데, 제대로 운영이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차 사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사람들이 차 값을 내고 가는걸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붉은 빛을 띤다하여 주목이라 했던가. 수종사를 찾은 지 십년만에 발견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붉은 빛을 띤다하여 주목이라 했던가. 수종사를 찾은 지 십년만에 발견했다. ⓒ 이승열

어린시절 집집마다 지붕을 장식했던 안테나가 아직도 수종사를 지키고 있다.
어린시절 집집마다 지붕을 장식했던 안테나가 아직도 수종사를 지키고 있다. ⓒ 이승열
4년 전 걸을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어 그녀가 떠난 삼정헌은 어쩐지 친정어머니가 없는 친정집 같았다. 가끔 북한강 풍경이 그리워 수종사에 가도 툇마루 앉거나 잘 생긴 은행나무 아래서 그저 강물만 바라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바라보다 돌아올 뿐이었다.

지난 해 가을 그녀가 삼정헌으로 돌아와 그 곳 풍경이 되어 다시 찻집을 지키고 있었다. 보살님 안 계신 동안 어쩐지 차도 마시고 싶지 않았어요. 다음부턴 그냥 가시지 마시고 꼭 들어와 차 마시고 가세요. 누가 지키든 같은 찻집인걸요. 그동안의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일러바치는 중생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그녀의 해맑은 얼굴이 관음보살이다.

장작불이 활활 타는 무쇠솥도 강을 바라보고 있다. 세가마의 쌀을 씻고 미역을 빨고 공양을 대접받았다.
장작불이 활활 타는 무쇠솥도 강을 바라보고 있다. 세가마의 쌀을 씻고 미역을 빨고 공양을 대접받았다. ⓒ 이승열

500명의 비빔밥을 준비할 쌀, 미역, 취나물, 콩나물. 공양간에 누워 있으면 ‘여기가 바로 극락이지’ 란 말이 절로 나온다.
500명의 비빔밥을 준비할 쌀, 미역, 취나물, 콩나물. 공양간에 누워 있으면 ‘여기가 바로 극락이지’ 란 말이 절로 나온다. ⓒ 이승열

덧붙이는 글 | 제목과 소제목은 공광규 시인의 <수종사 풍경>을 인용했습니다. 

실제 수종사는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있으나 내겐 양수리와 하나로 기억되는 장소이기에 양수리 수종사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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