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상은 다수와 소수로 나뉜다. 다수 속에서 언제나 소수는 등한시되거나 억압받으며 살아가기 마련. 그들은 다수의 삶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소설 또한 다수인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기에 좀 더 다수의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있어야만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렇지 못하면 소수들에게 그저 인기를 끌고 제대로 된 평가를 얻기 어렵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가 아닐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로 자청한다는 것은 어쩐지 껄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렇게 소수임을 자청하는 소설가가 있다. 바로 임동헌이란 작가이다.

▲ 임동헌 소설 <별>
ⓒ 문이당
<기억의 집>이라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은 흑백사진 찍는 사진작가의 삶을 통해 사북 탄광 지역의 이야기를 천착한 바 있다. 그 이후 두 번째 작품 <별>을 내놓았다.

이번 소설은 소수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잘난 사람들에 대한 조소가 물씬 묻어나는 이 작품은 소설가 임동헌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단다. 그걸 보면 임동헌 그 자신은 아웃사이더다.

다른 이들이 그를 왕따를 시킨 게 아니라 소수가 바로 자신의 자리라고 믿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된다. 그의 전력을 보면 알 수 있다. 20년간이나 글을 쓰면서도 그 흔한 단체에 가입된 적이 없으며, 회사를 다닐 때도 노조에서 탈퇴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소수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대단한 사람들의 눈에서는 낙오자라고 보여지는 인물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세상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고 떠도는 소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조명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거대 담론에 급급해 하지 않으면서 다중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소외의 울타리, 폭력의 울타리에 갇힌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작위적이지 않은 객관적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세상 많은 소설이 그러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고 떠도는 인물들의 걸음걸이가 유난히 눈에 밟힌다. 해서 그런 인물들의 삶에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이기도 하거니와 나와 같은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한,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표출된 간접 화법이라고 나는 지금 고백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거대담론에 급급해 하지 않으면서 다중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소외의 울타리, 폭력의 울타리에 갇힌 소설 속 인물들과 교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변부에서 떠도는 인물들을 향한,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세상을 향한 현미(顯微)가 여전히 가능하다면 나는 그런 작법을 한동안 더 붙들고 있을 작정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밀려나 미물화되어 가는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가 빚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이 정신적인 아픔에 그치지 않고 삶을 와해시키고 균열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각박함과 메마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보듯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그려낸 6편의 소설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파편화된 삶이 어떤 파열음을 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 <별>은 증권회사 투자분석가였다가 택시운전사로 전업하려는 남자 '나'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나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난 가짜 골동품 제조공장 사장인 '그녀'의 피고용인임과 동시에 내연의 남자가 된다. 그녀가 집착하는 밤하늘의 별은 아름다운 존재로 비치기보다는 허망한 분위기를 돋우는 소도구로 기능한다. 작가는 현실에서 거세된 소중한 가치들을 넌지시 들춘다.

이밖의 작품들도 보면 사정은 매한가지이다. 박사학위를 얻고도 7년째 대학조교에 머물러 있는 남자가 변비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기차 화장실을 애용하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그린 <아이 러브 토일럿>,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리며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대학강사의 외로운 생활을 그린 <나는 풍란을 키운다네>도 부초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집배원 출신 남자가 인터넷 전자 상거래 회사의 분류담당자로 일하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직업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자전거를 타는 남자>에는 외환 위기 당시 한 인터넷 서점의 물류창고에서 일한 작가의 체험이 배어 있다.

이렇듯 일등이 최고로 여겨지는 이 사회에 작은 돌을 던져본다. 작가는 그러고는 소수들도 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거창한 소재지만 전혀 거창하지 않게 이야기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 이번 소설은 소수보다는 다수가 읽어보길 권한다. 잘난 다수들도 소수들이 있음을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임동헌 지음, 문이당(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