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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학 강의> 표지 사진
<현대미학 강의> 표지 사진 ⓒ 아트북스
정치평론가로만 진중권을 알고 있다면 그의 미학적 저작들에는 다소 당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평론가로서의 그와 미학자로서의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내지는 '균열'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로서의 그의 논지와 레토릭(rhetoric)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의 모습, 그것이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한 많은 책들에서 그가 펼쳐온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주로 비민주적인 정권하에서 우리 '근대'가 탈구적인 발전과정을 해온 '미완'의 근대임을 주장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던 미흡한 부분을 시민 사회의 합리성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통해 완성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비판적 '근대화론'의 논지를 펼쳐왔다.

후기/탈근대론에 대한 비판점 역시 뚜렷했다. <아웃사이더> 주간 시절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합리성과 상식적 가치를 벗어난 보수주의나 급진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쉬움을 비판하고, 유교적 가치의 복권을 주장한 우파의 <전통과 현대> 진영이나 탈합리주의로 날아가는 극좌적 니체주의 진영 모두에게 대립각을 분명히 해왔다.

그런 그가 '현대 미학'에 대한 저술을 꺼리낌 없이 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우선 그가 강하게 비판해왔던 후기/탈근대론의 주장들이 현대 예술과 미학에 대한 논의로부터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미학적 저작에서는 탈근대 논의에 대한 강력한 대립각 역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미학 강의>는 탈근대 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미학자들 8명을 소개한다.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의 독일 철학자들로 출발하여 데리다, 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보드리야르에 이르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차례로 소개하는 이 저술의 구성이 말하는 바는 뚜렷히 네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프랑스 철학의 주요한 개념은 독일 철학자들이 선취한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그 첫번째고, 두번째는 독일 철학자들의 새로움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그 성과를 확실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 철학자들이라는 점이다.

세번째는 '숭고'와 '시뮬라크르'라는 그가 주장해온 현대 미학의 중심 범주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도구적 혹은 언어적 합리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표현되지 않는 것들의 '숭고함'의 계기, 그리고 진리와 가상이라는 근대적 재현체계를 붕괴시키고 위계없는 차이들의 향연을 펼치는 '시뮬라크르'의 계기. 그는 이 두 계기가 근대 미학을 넘어서는 탈근대 미학의 중심 범주이며 그것이 현대 미학의 논의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음을 주장해왔다.

네번째는 이 두 계기의 중요성을 일찍이 갈파한 독일 철학자 '벤야민'의 선구적 면모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책 곳곳에서 현대 미학의 벤야민으로부터의 영향과 논지의 많은 유사성들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이 네가지 말고도 이 책은 사회주의자라고 여기저기서 주장해온 저자의 저술답게 '변증법'적인 종합을 통해 많은 새로운 의미들을 생산해내는 책이다.

예컨대 무겁고 남성적이며 진지한 이미지의 '숭고'와 가볍고 여성적이며 경쾌한 이미지의 '시뮬라크르'를 그는 현대 미학의 보족하는 두 개념으로 제시하지만, 이 책의 보드리야르에 관한 장에서 그는 '시뮬라크르'들의 무한 복제가 가져온 과도한 차이들이 '의미'가 불가능한 지점까지 진행됨을 보여주고 이와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계기로서의 '숭고'를 연관시킨다.

일견 가장 멀어보이는 것들을 수렴시키는 이 책을 진중권은 머리말에서 "제 꼬리를 입에 문 뱀처럼 원환을 그리"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변증법적 통일과 총체성을 희구하는 맑스주의의 전형적인 테마를 그처럼 잘 표현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우리 근대성에 대한 성찰과 연관지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근대적 합리성과 탈근대적 예술성을 동시에 찬양하는 진중권은 모순인가, 아닌가. 정치평론가로서의 진중권과 미학자로서의 진중권은 전근대/근대/후기 근대적 상황이 혼재하는 우리 근대 안의 '균열'처럼 메울 수 없는 간극으로 존재하는가, 혹은 아닌가.

여기서 정치평론가로서의 진중권과 미학자로서의 진중권을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거나 '이론적' 탈근대주의와 '실천적' 근대주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한 모습의 강조가 다른 면의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꾸 진중권에 대한 일면적이고 평면적인 이해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방법을 빌려 말하면 '합리성'과 '예술성'은 그를 설명하기 위한 보족하는 두 개념이다. 그 가능성은 9·11 테러와 이라크전 이후 그의 평론과 여러 저작에서 확인된다. 그에게서 미학과 정치적 평론의 뚜렷한 경계는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 책 역시 작품으로서의 예술, 학문 분과로서의 미학에 대한 논의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계기나 미학적, 윤리적 주체의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접속'하고 있음이 여러 구절에서 확인된다.

"푸코에게서 '주체'는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이 있다면 말 잘 듣는 신민에 불과한 근대적 주체일 뿐(…) '자기'란 자신을 배려하며 자기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미적 주체, 제 삶을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예술적 주체다." (181~182쪽)

"그(들뢰즈)에게 미학은 더이상 '예술의 예술'을 다루는 Aesthetik(미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삶의 예술로서의 Aisthetik(감각론)이다. (…)들뢰즈는 대중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회화에서 그보다 더 깊은 혁명적 의미를 본다." (224쪽)


필자는 진중권을 '근대'를 넘어서기 위한 '이중의 전략'으로 표현하고 싶다. 근대적 합리성을 통한 민주주의적 발전은 계속 추구되어야 하지만 그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한계는 탈근대적 예술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 예술성과 합리성으로 즐겁게 제 존재를 만드는 것 등인데(…)" (책 옆갈피, 저자소개)

진중권은 미학자와 정치평론가 사이를 '전략적 필요'에 따라 오가며 어떤 명민하고 총체적인 '전술'을 발명하고자하는 좌파 지식인의 전범이다. 그가 두루뭉실하다고 비판받으면서도 '문화평론가'라고 자신을 일컫기도 하는 것은 그래서 틀리지 않았다.

현대미학 강의 - 탈근대의 관점으로 읽는 현대미학

진중권 지음, 아트북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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