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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코> 표지 사진
ⓒ 민음사
무라카미 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SM'(가학·피학성 변태성욕, 이하 SM). 섹스와 마약 그리고 내재된 인간의 욕망. 그런데 류가 이번엔 새로운 낯선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가 알고 있던 류가 전혀 아닌-희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희망찬 내일의 모습을 그렸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사실 류의 데뷔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도 전혀 인간의 치부와 욕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류 자신도 그래서일까. 20년만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데뷔작을 많이 머리 속에 떠올렸단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내내 20년 전의 기분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데뷔작을 쓴 것이 꼭 20년 전의 가을인데, 잊어버리고 있던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 소설에는 섹스도 SM도 마약도 전쟁도 없다. 데뷔작 이래로 자의식을 날려버릴 수단으로 그런 모티프를 사용해왔지만 이 작품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교코>는 희망과 재생의 이야기이다. 패쇄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자신을 해방시키면서 새롭게 살아보려고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무라카미 류

교코라는 여성은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희망이라는 말을 스스로 언급한 걸 보면 정말 색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자 그럼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얼마나 어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말이다.

"인생이 무의미하다. 지루하다. 우울하다"라는 말을 사람들은 자주 한다. 그러면서도 근근히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 그게 의지하여 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다.

희망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 10년 뒤에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숨을 돌리기도 할 것이다. 그래 인생이 뭐 있겠나. 크고 작은 희망을 품으로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아래 희망을 측정하고 잴 것이다.

이 작품은 자신에게 댄스를 가르쳐준 호세와 함께 마이애미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댄스가 곧 그녀에게는 희망이었다. 주인공 교코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인물이다. 21살에 아름답고 작은 웃음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춤도 잘 추고, 또한 사려 깊기도 하고, 12년 전의 보은을 위해 머나먼 미국까지 게다가 에이즈 말기 환자와 함께 여행을 감행하는 강인함까지 갖추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희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려준 호세를 끝까지 신뢰한다. 그가 에이즈로 병으로 죽어가지만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고 엘레나를 불러도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그것이 자신의 보은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교코가 식사를 하고 , 멀리 알래스카의 족장으로부터 받은 점괘는 "미래는 이미 당신의 손안에 있다"라는 것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도중에 있다. 아직도 가는 중"이라고 하는 것. 결국 그녀는 희망을 찾아가는 중이라 생각을 한 것이다. 호세와 함께 말이다.

여덟 살 되던 해 여름, 호세를 만났다. …중략… 호세와 나는 카세트를 들고 공원이나 빈터로 가서 춤을 추었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여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애절한 멜로디, 그러면서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그 음악, 그 리듬을 정확히 밟으며 춤을 추면 정말 기분이 좋았다. 호세와 함께 춤을 추노라면 세상 근심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새 옷을 사거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거나, 유원지에서 제트 코스터를 타거나, 친구와 수영장에 가거나…, 그런 즐거운 일들도 호세와 함께 스텝을 밟는 기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모놀로그, <교코> 중에서-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주인공 교코가 화자로 시점을 이끌어가지만 이야기의 화자는 교코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따른 주변 인물들의 관점으로 연결되면서 전개된다. 이렇게 400m 계주에서와 같이 바통을 이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몇 조각으로 나눠진 조각그림을 맞춰나가는 느낌처럼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미국의 주무대이지만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백인들은 배제된 채 라틴계, 흑인, 동양인 주로 미국 내 소수인종들 그리고 멀리 알래스카에 있는 이누잇 족장 등,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이 소설을 채워간다. 이러한 특징들은 단순한 성찰기 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류다운 특징을 또 한번 발휘하는 기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빛내고 있는 건 바로 춤이다. 차차차, 맘보, 룸바, 콜롬비아…, 세계 여러 나라의 춤이 등장하면서 열정적이면서 우아하고, 발랄하면서도 부드러운 교코의 움직임이 춤의 향기로 다가온다.

특히 에이즈라는 무거운 소재가 글 전체에 깔려 있지만 그 무게를 '춤'이라는 형식을 통해 날려 버린다. 이것은 <식스티나인>과 같은 느낌이다. 무거운 소재를 전혀 무겁지 않게 그려내는 위트. 이것이야말로 류가 지닌 진정한 면모이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류가 섹스와 마약을 이야기하지 않기에 친숙하면서도 낯선 위트를 느낄 수 있으며 류의 그렇고 그런 소설이 질릴 때쯤 이 책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자꾸만 새로운 것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어진다.

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민음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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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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