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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해서 붙은 이름 오골계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해서 붙은 이름 오골계 ⓒ 서정일
이상하다. 몇 발짝 걷지도 않았는데 이마엔 땀이다. 몸이 허해진 건지 아니면 벌써 여름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다. 분명 5월이면 아직은 봄인데 여름이 신발 끈을 매기도 전에 나는 지레 겁먹고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처량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올해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은근히 걱정까지 든다.

인삼·도라지·대추·마늘·황기·더덕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는다.
인삼·도라지·대추·마늘·황기·더덕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는다. ⓒ 서정일
어디서 듣긴 들었나 보다. 아내는 측은했는지 며칠 전부터 오골계 타령이다. 옛날부터 약용으로 쓰이고 임금께만 진상했다는 검은 닭, 오골계. 여름이 오기 전에 보양식으로 먹어둬야 한다며 오골계 백숙을 잘 하기로 소문난 집이 있다면서 다짜고짜 가잔다.

요리 재료와 함께 잘 손질해 놓은 오골계가 도마 위에 놓여있다.
요리 재료와 함께 잘 손질해 놓은 오골계가 도마 위에 놓여있다. ⓒ 서정일
낙안면 목촌리에 있는 오금산장의 주인 장금순(55)씨는 토종 오골계의 특징을 말해주며 튼튼한 것으로 한 마리 골라 날개를 잡는다. 숙달된 솜씨다. 20년 동안 오골계 백숙을 요리했다 하니 요리장인다운 솜씨다.

이미 만들어 놓은 육수에 오골계와 음식재료들을 넣고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 놓은 육수에 오골계와 음식재료들을 넣고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 서정일
인삼·도라지·대추·마늘·황기를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둔다. 그리고 오골계를 다듬어 도마 위에 올린 후 물로 씻어낸다. 흘낏 보니 진짜 검다. 살도 검고 뼈까지도 검다. 하얀 도마 위에 놓으니 더더욱 검다.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에 양념과 함께 압력솥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20여분이 지난 후 압력추는 하얀 김을 내 뿜으며 흔들리고 있다. 요리가 다 되어 간다는 신호다.
20여분이 지난 후 압력추는 하얀 김을 내 뿜으며 흔들리고 있다. 요리가 다 되어 간다는 신호다. ⓒ 서정일
20여 분이 지났다. 압력추가 흔들리며 하얀 김을 쏟아낸다. 점점 더 빠르게 흔들리는 압력추. 고소한 냄새가 배어나온다. 의외로 요리는 간단하다. 그저 불에 올려놓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맛은 그리 간단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비밀은 육수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법을 알려 달라 해도 묵묵부답.

당근·오이·고추 등 싱싱한 반찬이 아삭하고 씹히는 것 또한 환상적이다.
당근·오이·고추 등 싱싱한 반찬이 아삭하고 씹히는 것 또한 환상적이다. ⓒ 서정일
당근·오이·고추 등 반찬이 아삭하게 씹히는 게 또 환상적이다. 신김치는 입에 착 달라붙는다. 고추장에 버무린 더덕은 그 향까지 더하여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걸쭉한 국물 속에 푹 삶아 나왔지만 흐물거리지 않고 쫄깃쫄깃하다.

접시에 음식을 놓고 살펴보니 정말 뼈까지 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접시에 음식을 놓고 살펴보니 정말 뼈까지 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 서정일
오골계는 귀한 음식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오골계. 옛날엔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숙종 임금이 오골계를 먹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부터의 일이라 한다. 한때는 일반 백성은 물론 정승까지도 오골계를 먹지 못하도록 했다고 할 만큼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 기가 약한 사람에게 특히 좋고 살이 찌고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여름 보양식으로 많이 찾는다. / 서정일
오골계는 작지만 알찬 게 있다. 두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아내는 평소답지 않게 "보양식인데" 하면서 뼈까지 발라먹고 국물까지도 넘본다. 은근히 약이 오른다. 내 몸 생각한다면서 끌고 오더니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다.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신김치가 참 맛있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을 더 주문했다. 역시 기름진 음식엔 신김치가 제격이다. 평소 좋아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신김치 팬이 아닌 우리에게 이건 신기한 일이었다. 식당에 김치가 맛있으면 모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 있다. 오늘 먹은 신김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는 신김치. 두고 두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는 신김치. 두고 두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 서정일
닭죽이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었을까? 맛있어서 신나게 먹었고 약이라 해서 욕심내 먹었다. 어느새 배는 꽉 찼지만 닭죽이 나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두 사람은 다시 수저를 든다. 뽀얀 국물 속에 엉켜있는 찹쌀, 뜨거운데 자꾸 '시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인가?

또다른 별미 오골계 닭죽
또다른 별미 오골계 닭죽 ⓒ 서정일
이번 여름은 꽤 더울 것이라 한다. 올 여름을 쫄깃쫄깃한 오골계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닭죽을 먹으면서 '뜨거웠지만 시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올 여름 아무리 더워도 오골계 먹고 나면 시원하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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