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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저를 반겨주는 저희 시골마을입니다. 지금은 열 다섯가구에 서른 분이 채 되지 않는 어른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계십니다. 일 하느라 모내기 장면은 찍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저를 반겨주는 저희 시골마을입니다. 지금은 열 다섯가구에 서른 분이 채 되지 않는 어른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계십니다. 일 하느라 모내기 장면은 찍지 못했습니다. ⓒ 장희용
고만고만한 작은 마을이라 각자 논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10분이면 논과 논 사이를 오고가니 새참이라도 내오면 어른들은 '마을 최고의 효자'한테 갖다 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줍니다.

호사를 누리기는 '최고의 효자'를 둔 부모님도 마찬가지죠. 자식 잘 키웠다는 말에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어깨가 으쓱해지니, 그 날만큼은 일을 해도 힘들지가 않을 법합니다.

그럼 '마을 최고의 효자' 다음은? 그 다음은 그냥 '효자'와 '불효자'로 구분됩니다. 모를 심기 전에 오면 일단은 '효자' 그룹에 속합니다. '마을 최고의 효자'만큼의 대우는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을 어른들한테는 우호적인 대접을 받습니다.

하지만 한참 모를 심고 있는 상황에서 온다, 그러면 영락없이 '불효자'로 등급이 매겨져 모를 다 심고 시골을 떠나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만나는 마을 어른들한테서 한 마디 듣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효자 낙인(?)을 벗어던지기 위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마을 어른들한테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쉴 사이 없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마을 어른들이 보시고 "야! 좀 쉬면서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늦게 온 죄를 벗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일한 시골마을의 슈퍼 역할을 하는 농협 면세점에 가서 최소한 음료수라든가, 500원짜리 빵을 사서 동네 어른들한테 대접해야 합니다. 일종의 뇌물인 셈이죠.

어른들 손에 빵이라도 쥐어드리면 금세 어른들 입에서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듯 "요새, 바쁘냐? 그래도 일찍 와서 도와 드려야지. 남들은 다 심는데, 어머니 아버지 속 타잖여"하시면서 용서의 말씀을 하십니다.

간혹 "이거 가지고 되겄냐"하시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어른도 계십니다. 덕분에 때아닌 먹을거리 풍성한 마을잔치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옹기종기 고만고만한 시골의 조그만 마을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차지요.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효자' 경쟁이 마을 어른들의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함께 지내 온 세월이 70평생'이라는 마을 어른의 한 마디에서, '효자' 경쟁이 혹여 서로 배려하는, 그래서 마을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한 어른들의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다른 집 자식들은 다 내려와 모내기를 하는데, 어느 한 집만 자식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마을 어른들이나 그 집 어른이나 마음이 편치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상관없습니다. 덕분에 저희 시골마을은 명절 때는 못 봐도 모내기철에는 도시로 간 친구, 형, 누나, 동생 등 어릴 적 함께 했던 모든 정든 사람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날만큼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인심이 넘치는, 그래서 사람 사는 맛도 나고, 사람 사는 재미가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되니까요.

덧붙이는 글 | 역시 부모님들은 자식과 손자 얼굴 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 바빠도 자주 부모님들을 찾아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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