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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시 50분입니다. 저는 출근을 서두릅니다. 양복저고리를 입고 휴대폰을 챙깁니다. 집을 나서다가 '아차' 하며 돌아섭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빠졌습니다. 아내더러 디지털카메라를 달라고 합니다. 어느새 디지털카메라는 제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아파트 입구에서 '카풀'하는 후배를 기다립니다. 오늘은 김밥아줌마가 장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며칠 동안 쉬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김밥 파는 승합차 뒤 유리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00새벽김밥'이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저는 디지털카메라를 꺼냅니다. 한방 찍어야겠습니다. 어, 그런데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 용량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카메라 화면에 메모리가 없다고 적혀있습니다.

저는 필요 없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지웁니다. 같은 사진이 서너 개 이상씩입니다. 저는 사진을 찍을 때 한번으로 끝난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두 번 이상 찍었습니다. 잘못 찍히는 걸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을 때는 다섯 번 이상씩 찍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진을 지우다가 깜짝 놀랍니다. 이런 사진도 있었다니. 작은 애가 지게를 지고 있는 사진입니다. 어린이날에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배경이 그걸 말해줍니다. 저는 몸을 푸르르 떨었습니다. 제 눈이 자꾸만 창 밖을 향합니다. 보이는 모든 게 흐릿합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습니다. 저는 마침내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말았습니다.

▲ 작은애가 지게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 박희우
큰형님에 대한 아련한 기억 때문입니다. 큰형님은 키가 작았습니다. 1미터 55센티미터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둘째 형님에게 큰형님이 왜 저렇게 키가 작았는지 물었습니다. 둘째 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이 배어있습니다.

"어렸을 때 못 먹어서 그랬지 뭐."

물론 둘째 형님 말씀처럼 못 먹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저는 다시 둘째 형님에게 물었습니다. 둘째 형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그래, 자네들도 알 건 알아야지. 큰형님은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어. 아마 열댓 살 되었을 것이야. 그 때도 큰형님께서는 같은 또래들보다 키가 작았어. 어쩌겠어. 일은 시켜야하고. 할 수 없이 주인은 큰형님에게 작은 지게를 맞춰주었지."

큰형님과 저는 열다섯 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큰형님은 제게 언제나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큰형님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무척 가까이 하려 했습니다. 큰형님은 성격이 불같았습니다. 한번 성을 내면 아무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있을 때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이었습니다.

"희우야,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나는 지게 지는 동생을 만들고 싶지 않다."

큰형님은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월남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와 바로 위 형님은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게를 져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큰형님은 한창 자랄 나이에 지게에 묻혀 살았습니다. 어디 큰형님뿐이겠습니까. 둘째 형님도 등이 구부정하게 휘었습니다. 둘째 형님 역시 어린 시절을 지게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큰형님은 1991년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큰형님은 돌아가시면서 두 가지를 남겨놓으셨습니다. 가난과 가족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식당에 가면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어느 이름 모를 식당에서 오늘도 큰 형수님은 허드렛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1991년도부터 식당 일을 하셨으니 벌써 14년째입니다.

저는 다시 디지털카메라를 들여다봅니다. 작은 애가 지게를 지고 찍은 사진을 삭제하려다 멈칫합니다. 아무래도 남겨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놀이용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그래도 제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가난했던 우리 가족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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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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