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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쿠폰에 피자만이라는 말 분명히 없거든요."

여자친구의 높아진 언성에 같이 온 친구들은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나도 처음 여자친구와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거는 클레임에 부담스러운 적이 많았기에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미 2년 넘게 사귀어 적응이 되었다.

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때문에 왼손으로는 수첩을 펼치고 오른손으로는 재빠르게 펜을 꺼냈다.

지난 5월 19일 나와 여자친구 그리고 친구 둘이서 대학로에 있는 모 피자 체인점을 방문했다. 사실 여자친구는 예전에 돈암점에 있는 같은 체인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클레임을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 쪽에서 사과의 의미로 15%할인 쿠폰을 보내 그 날 다시 대학로점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또 발생한 것이다. 쿠폰에는 주문금액 15% 할인이라고 굵은 글씨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유심히 보던 한 점원이 다가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이건 피자 금액의 15%만 할인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 이거 본사에서 주문금액의 15% 할인받을 수 있다고 한 건데요."
"제가 본사에 확인해 보았는데, 피자 금액의 15%만 할인받으실 수 있는 것 맞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여자친구와 난 그 쿠폰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15%할인이라는 것 아래는 이렇게 써있었다.

'이 쿠폰으로 피자를 주문하시면 피자 금액의 15%를 할인해드립니다.'

처음 내 생각은 굵은 글씨는 고객 눈속임용이고, 아래 문장은 해석하기에 따라 피자만 15%할인해줄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더욱더 격분하여 본사에까지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본사에서 보내줄 때 매장이고 주문이고 주문금액의 15%라고 했다니까,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늘 보아왔던 난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매장에서 그 매장에 대해 악평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자친구가 계속 전화를 하고 클레임을 걸자 드디어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건 모 카드사와 함께 하는 건데 그 카드를 사용하시는 거면 피자만 15%할인 하시는 것 맞구요, 본사에서 보내드린 거면 전체 주문금액의 15%를 할인해드리는 것 맞습니다."

여자친구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매니저를 불렀다. 친구들은 좀 당황해하는 듯했지만 웃으며 그 상황을 넘기려던 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예. 그거 15% 할인되는 거 맞습니다."

난 매니저가 무성의하게 사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매일 서서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저 자리에 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말 화가 났던 것은 만약 여자친구가 적극적으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손해를 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난 그 점이 무척이나 분했다. 괜히 화내 봐야 돌아올 것 없으니 웃으며 넘기고 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 어쩐지 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웃고 넘겼다면, 눈 뜬 채 뭐 털리는 꼴이 아니던가.

이제야 흥분하는 나와 달리 여자친구는 그제야 맛있게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예전 일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주면서 말이다.

그 예전일로 인해 이 쿠폰이 배달된 것이라는데 그 예전일이란 대충 이랬다.

"돈암점에 갔는데, 거기서 4명이 넘게 오면 샐러드를 두 개 시켜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그 규정이 바뀐 지 2개월도 넘었거든. 4명이 넘게 오면 한 명당 1500원씩만 더 부담하면 되는 것으로 바뀐 줄 알았는데, 거기서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 그리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게 아닌 거야. 그래서 바로 본사에 항의메일 보내고 항의전화하고 해서 피해 받은 금액만큼 돌려받고 쿠폰도 받은 거야."

예전에 한 번 듣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귀에 정말 쏙쏙 들어왔다. 2년 전부터 같이 다니면서 여자친구가 클레임을 제기한 건 이 피자 체인점 뿐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 패스트 푸드점, 극장, 이동통신사 등 정말 다양했다.

사실 지금은 나 자신도 모르게 여자친구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그냥 좋게 좋게 넘기지 뭐하러 긁어 부스럼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날 일을 겪으면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록 여자친구가 점원과 언성을 높이고 기분이 상할 정도로 싸웠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노력이 있기에 다음에 그 곳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친구들은 다들 이런 저런 시사회다 경품이다 해서 당첨되는 그녀에게 '이벤트 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난 다른 별명을 그녀에게 붙여주어야겠다. '클레임 걸'이라고. 그녀의 항의는 오히려 사회를 바꾸겠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나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느낀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게지만, 때와 장소를 적절히 가려 할 줄 안다면 그녀의 불만은 조금씩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훌륭한 약이 되리라.

덧붙이는 글 | 사실 클레임이라는 말을 두고서 좀 고민하긴 했습니다만, 원뜻으로 바꾸기는 좀 그렇고, 항의라고 하기도 좀 그래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피자 체인점에서 자주 쓰는 '클레임 걸었다'라는 표현을 그냥 그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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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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