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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의 어느 한옥 야경
전주한옥마을의 어느 한옥 야경 ⓒ 서재후
전남 보성은 생각보다 멀지만, 생각보다 멋진 곳이다. 단조로운 풍경이 자칫 방문객의 눈을 지치게 할 수 있지만 구석구석 살피면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모습이 의도하지 않은 감동을 준다. 남도의 산하는 전날 밤비로 인해 초록빛이 더 짙고 맑았다.

전날 밤에 전주에 도착해 널찍한 마당이 있고 담이 그다지 높지 않은 민박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조금 늦잠을 자도 된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나의 달콤한 늦잠은 여지없이 주인의 기상나팔 소리에 깨지고 말았다. 객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밥을 먹고 다시 잘까 생각도 했지만, 계속되는 주인의 서비스에 포기하고 한옥마을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담 너머로 한옥 내부가 보인다.
나지막한 담 너머로 한옥 내부가 보인다. ⓒ 서재후
한옥마을의 뒤를 돌면 나지막한 동산이 있고 이 위에 이목대, 오목대가 있었다. 이목대,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고종의 친필 비가 서있다. 또한 이곳에는 목조대왕이 자라면서 자만동(현지명 교동)에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곳 이목대에서 내려다보면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교동과 풍남동 일대는 9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흔히 한옥하면 아흔 아홉 칸의 넓은 한옥을 상상하지만 이곳은 조그마한 한옥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처마를 맞대고 있다.

푸짐한 전주의 음식
푸짐한 전주의 음식 ⓒ 서재후
널찍한 대청마루에서 봄나물에 청주 한잔

전주의 또 하나의 명물은 전주비빔밥이다. 하지만 음식점들이 모두 '한 맛'하니 굳이 식단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맛있다는 한옥마을 주변의 한 한식집을 소개받고 대청마루에 앉아 맛깔스러운 봄나물에 청주를 한 잔 기울였다.

따뜻한 햇살이 마당을 가득 채우면 여행객은 피로에 취기가 올라 대청마루에 온몸으로 큰 대자를 그리게 된다. 우리의 다음 일정은 전주시내로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영화 상영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전주 국제 영화제는 올해로 6회째. 개막식은 지난 목요일이었다. 영화가 끝나니 오후 5시쯤, 봄비가 서럽게 영화거리를 채웠다. 우린 서둘러 보성으로 출발할 요량으로 전주의 또 하나의 명물인 유명한 전주콩나물 국밥집(삼백집)을 찾았다. 저녁으로는 이른 시간임에도 식당은 종일 영화를 보고 허기진 듯한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가격도 3500원으로 저렴했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 내부. 원래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다섯 곳이었는데 나머지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 내부. 원래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다섯 곳이었는데 나머지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 ⓒ 서재후
식당을 나서니 봄비가 꽤 화가 난 모양인지 빗발이 굵어졌다. 보성으로 가는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녹색 융단 차밭 따라 피어난 흰 사과 꽃

전남 보성은 지금 녹차 향으로 가득하다. 1년에 3번 녹차 잎을 따지만 한해의 첫 수확인 봄이 최상품이기에 이 때가 제일 분주하다 한다. TV드라마 속이나 광고의 장면을 상상하며 관람객들도 이때 많이 몰린다. 5월 중순까지가 한창이라 한다.

보성 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남도의 산하는 이제 초록의 갑옷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른 아침 보성 차밭으로 향했다. 차밭은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장관이었다. 곱게 난 산책로를 따라 사과 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안개 낀 차밭을 보기 위해 서둘렀던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몸을 차밭에 숨기고 얼굴만 보인 채 가파른 차밭을 오르고 있었다.

녹색 융단 차밭 따라 피어난 흰 사과 꽃
녹색 융단 차밭 따라 피어난 흰 사과 꽃 ⓒ 서재후
우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차밭을 빠져나와 20~30분 거리에 있는 율포해변으로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율포해변은 그다지 큰 해수욕장은 아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운치는 꽤 좋았다. 바다 위로 구름이 깔리고 해변 가에는 버려진 조각배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다. 의외로 찾는 이들이 적어 신발을 벗고 해변을 한가로이 거닐 수도 있어 좋았다.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웅치 녹차 밭

서울로 출발하기엔 이른 시간. 주인 할머니에게서 좋은 곳을 추천받았다. 바로 '웅치'라는 곳이다. 율포 해변에서 10분 거리라 한다. 짐을 챙기고 그 곳으로 출발했다. 여행지에서는 이정표가 있어도 찾기 어려운 곳이 많은데 제대로 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 들어간 웅치. 고개를 돌려야 그 끝과 끝을 볼 수 있는 녹차 밭이다.

장관이었다. 구름의 그림자들이 녹차 밭 위로 스물스물 움직였다. 이곳도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하지만 조금 외진 곳이라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모두 '여름향기'의 촬영장소만 보고 돌아가는 듯하다. 보성의 녹차 밭을 여행한다면 놓치지 말고 들르면 좋을 곳이다.

회색 구름이 덮인 율포해변
회색 구름이 덮인 율포해변 ⓒ 서재후
이제 길은 웬만큼 알겠다 싶어 왔던 길을 돌아가지 않고 웅치에서 방향만 잡고 서울로 향했는데 곧 낭패를 봤다. 10리도 못 가서 길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촌부에게 길을 물어볼 요량으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논에는 놀랍게도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지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운영을 심는다고 한다.

앞으로 그 논의 자운영은 흙에 섞여 퇴비가 된 후 우리의 밥상에 다른 형태로 오를 것이다.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얻은 보석 같은 지식이었다. 이런 것이 또한 여행의 묘미일지니….

웅치의 광대한 보성녹차밭
웅치의 광대한 보성녹차밭 ⓒ 서재후
찾아가는 길

서울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천안인터체인지 못 가서 이정표에 광주방향 천안―논산 간 민자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선택하면 호남고속도로보다 1시간쯤 빨리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약 2천원 내외의 요금을 내야 한다. 전주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시내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시내로 들어서면 전주한옥마을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전주에서 보성 녹차밭 가는 길은 전주인터체인지서 빠져나와 광주방향으로 직진, 동광주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흐드러진 자운영
흐드러진 자운영 ⓒ 서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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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잊고 살았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기 위해서라면 어떨지요...지금은 프리렌서로 EAI,JAVA,웹프로그램,시스템관리자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 하고싶었던일은 기자였습니다. 자신있게 구라를 풀수 있는 분야는 지금 몸담고 있는 IT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글은 잘 쓰지못합니다. 열심히 활동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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