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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근
그런데 사람들은 문명을 건설하면서 검게 물든 밤을 인공적으로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석탄과 석유, 우라늄을 이용해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도시는 불을 환하게 밝힌 빌딩숲과 쌍심지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로 인해 빛나는 외투를 걸치게 되었습니다. 조용하던 밤이 조금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 배우근
나도 오늘밤은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의 붉을 밝히며 어둠을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자동차가 한꺼번에 서울로 향하다 보니까 주차장을 방불케 합니다. 차들이 붉은 후미등을 깜박이며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매캐한 배기가스가 코를 맥맥하게 하고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합니다. 앞차의 불빛 때문에 눈도 시립니다. 서울이 멀지 않았지만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고속도로위에 서 있는 자동차를 찍어봤습니다. 스물스물 생기는 짜증과 무료함을 달래는 즐거운 사진찍기 놀이를 했습니다.

ⓒ 배우근
노출과 셔터타임이 적정치 않아 자동차는 어둡게 나오고 흔들린 사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시계바늘을 천천히 돌려 시간을 늦추듯 셔터타임을 늘렸습니다. 셔터타임을 2초 정도로 조정하니 '찰칵'하고 찍히던 사진기가 '찰~칵'하고 중간에 숨 한 번 쉬고 찍혔습니다.

ⓒ 배우근
그랬더니 쇠로 만든 괴물이 붉은 눈을 부라리던 것처럼 보이던 앞차의 후미등과 주변의 빛이 형이상학적인 모습으로 카메라 모니터에 나타났습니다. 검은 도화지에 그려진 추상화 같이 보였습니다.

ⓒ 배우근
천천히 돌아가는 자동차의 바퀴처럼 여유있게 노출시간을 줬더니 성난 눈처럼 붉게 타오르던 앞차의 후미등과 반대차선의 쌍심지를 켠 헤드라이트가 조화를 이뤘습니다. 셔터를 누른채 카메라를 빙빙 돌렸더니 자동차의 라이트가 둥근 빛의 궤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 배우근
이번에는 삼각형도 그려보고 네모도 그려봤습니다. 셔터가 열려있는 시간동안 자동차의 빛은 카메라 안에서 즐겁게 춤을 추듯 각양각색의 그림을 만들어 냈습니다. 카메라는 빛나는 붓이 되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 배우근
자신이 붙은 나는 조금 더 복잡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채 별모양으로 움직여도 보고 일렁이는 바다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몇번 하다보니 금세 빛의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 배우근
그런데 사랑을 표시하는 하트는 모양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비슷한 모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하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빛으로도 그리기 어렵나 봅니다. 하지만 너무 쉬우면 사랑이 아니겠지요.

ⓒ 배우근
조급하게 서울을 향하던 마음과 달리 카메라에 여유롭고 넉넉한 시간을 허락했더니 어둠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이 카메라에 듬뿍 담겼습니다. 깜깜한 밤, 빛은 적었지만 그럴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을 발했습니다.

ⓒ 배우근
어느새 서울 톨게이트가 보입니다. 시나브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일곱번째 항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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