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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먹은 절밥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먹은 절밥입니다 ⓒ 박희우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줄이 여간 긴 게 아닙니다. 족히 백 미터는 넘어 보였습니다. 점심은 비빔밥이었습니다. 절편이 두 조각입니다. 파란 떡과 하얀 떡입니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열무김치입니다. 그런데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미 간이식당은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우리 가족은 대웅전 뒤편으로 갔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습니다.

우리 가족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많은 신도들이 절 여기저기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아내는 절에서 만든 밥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습니다. 담백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고시 공부하느라고 절에서 오래 계셨지요. 이게 진짜 절 음식 맞아요?"
"그럼, 절 음식 맞지. 한번 자세히 살펴봐. 고추장만 빼면 전부 나물이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아이들도 비빔밥을 잘 먹습니다. 작은 놈이 제 몫으로 받은 절편을 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떡이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아내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큰 놈에게 자기 몫의 떡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형님, 불편하지요?"

후배였습니다. 저는 손사래를 치며 아주 밥이 맛있다고 했습니다. 후배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제게 도란도란 얘기를 합니다.

"형님, 좀 이상하지요. 사촌 형님이 스님이라는 게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삼촌들도 전부 스님이에요. 물론 큰아버지는 오래 전에 파계를 하셨지요."
"그래?"
"나머지 삼촌 두 분은 지금도 스님으로 계십니다."
"왜 스님이 되셨을까?"
"아버지가 그렇데요. 못 먹고 못살아서 어릴 적부터 절에 들어갔다고요."
"…."
"참, 형님?"
"응?"
"죄송합니다"
"뭐가?"
"삼천포에 있는 사촌형님이 돌아가셨어요. 4달 전이에요. 연락을 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도 한때는 스님이셨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삼천포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는 이미 속세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하는 말이 제게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 분이 화제를 바꿨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아주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별반 남는 게 없습니다. 아, 한 가지 있네요.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막 그분 집을 나설 때였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부처님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들 마음 속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좋은 분이셨는데."
"이곳 주지스님이 그분의 큰형님이십니다."


저는 산사(山寺)를 내려왔습니다. 차가 산사를 막 벗어납니다. 저는 뒤를 돌아봅니다. 후배가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기묘한 인연입니다. 큰삼촌만 빼고 나머지 삼촌 모두가 스님이십니다. 사촌 형님 네 분 중 세 분이 스님이십니다. 그 중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그 분과의 인연을 깊게 맺으려 했습니다. 그 분 또한 저를 그런 인연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로서 위로해보지만 그러나 그 애석함은 여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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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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