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에도 무라카미 류가 있다’라는 문구를 어딘가에서 볼 수 있다면 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어떻게 반응을 할까.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바로 등단한 지 7년째인 이평재 소설가이다. 그의 두 번째 책 <어느날, 크료마뇽인으로부터>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문득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와 오버랩이 되면서 기이하고 낯선 소설에 심취해 갈 것이다. 왠지 모를 불편함때문에 계속 책을 읽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단숨에 읽어버리는…. 마치 매운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아! 매워’ 하면서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느낌으로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저자 이평재는 말한다. 자신의 기질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고.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작품 <마녀 물고기>에서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초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었다.

짐짓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작품 <어느날, 크료마뇽인으로부터>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이한 행동과 사건들,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8편의 단편들은 대개 뒤틀린 욕망의 노예들이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사랑은 없고” “여자는 구멍일 뿐”이라 여기는 바람둥이 ‘나’(어느날 크료마뇽인으로부터)는 협상 전문가인 형사지만, 타워 크레인 꼭대기로 인질범 여인을 찾아가 그곳에서 강간을 하기도 하고, 반면 자기 집 욕조에 살고 있는 3만5000년 전 크로마뇽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시어머니 앞에 벌거벗고 누워 애무 받기를 즐기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고양이를 죽여 그들에게 먹이는 것으로 그 혐오와 분노를 달래는 아내(‘고양이 변주곡’), 폭력과 변태성으로 성적 욕망을 달래는 이들…. 외음부 무모증인 ‘고양이 변주곡’의 여자는 옷을 벗어야 하는 곳은 아예 피하고 “심지어 옷을 입어도 풀어헤치지 않고 꼭꼭 몸을 싸매듯 단추를 채워 입는다”.

창녀의 몸에서 난 ‘나’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 뒤 이유 없이 자신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든다.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내가 다리를 벌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합니다. …두고 보세요. 아버지의 어떤 자식보다 양다리를 꽁꽁 묶고 살아서….”(‘앤디를 위하여’)

이런 기이한 내용과 캐릭터는 당연히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페니스가 졸아드는 병에 걸린 형사, 고양이 세 마리를 차례로 죽여서 요리로 만드는 외음부 무모증을 가진 여인, 창녀의 딸로 태어나 간암 말기의 생모(生母)를 외면하는 과학잡지 사진기자, 정신병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교수를 살해하는 대학 강사, 한편에서는 정신과 의사로 다른 한편에서는 소설가로 이중인격의 분열증을 보이는 남자 등 보통 세상 속에서 만나기 힘든 소수의 사람들을 작가는 다루고 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살인, 섹스 등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면서 트라우마로 나타나거나 실제 권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이 모습은 SM섹스로 인간의 억압된 욕망을 제시하는 무라카미 류와 닮았다.

어찌보면 사람 자체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부여하는 것은 류 보다 한 수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을 주무대에 내세워 모종의 억압된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방법 또한 그러하다. 이미 이 소설은 평단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뒷 표지에 보면 소설가 윤후명이 평을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이상한, 수상한 상상력의 근거는 무엇일까. '크로마뇽인 유령'이나 '샴고양이'나 '원숭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런데, 불안정한 의미의 존재가 새로운 충격인가 하면 위안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만큼 부조리하건만, 이 '현란한 이미지의 응전(應戰)'에 녹아서, 우리는 실패와 좌절을 삶의 계기로 받아들릴 태세에 긴박하다. 신랄한 유머의 미학이 앎과 아픔을 동반한다. 모든 이미지는 현대인의 그림자로서, 환각 또한 일상일 뿐이다. 박물학의 보물섬에서 나는 "죽은 자의 영혼을 품고 떠도는 바위"가 되어 "아랫배의 태동"을 느낀다. - 윤후명(소설가)

이 소설을 보면서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계속 본다면 끝내 책을 다 읽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매운 음식을 매워하면서도 자꾸 입에 넣지 않는가.

어느 날, 크로마뇽인으로부터

이평재 글.그림, 민음사(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