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갖고 대통령이 되겠어? 아랫사람 관리를 잘해야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 3가 주변 공구 상가에서 만난 이아무개(51)씨. 이씨는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의 수뢰혐의(일명 청계천 비리)에 대해 묻자 대뜸 이명박 시장의 '대권론'에 제동을 걸었다.
"부시장이 받았든 아래 공무원들이 받았든, 돈을 받은 건 사실 아냐? 청계고가 뭐하러 허물었나? 땅장사 하려고?"
이씨는 손가락으로 공사가 마무리돼가고 있는 청계천을 가리켰다.
"저것 때문에 다니기도 힘들고 불편해 죽겠다. 봐라. 차도 제대로 못 다니는데…. 없는 사람들은 죽어나는데, 있는 놈 살리자고 저 짓을 하고 있나?"
이날 오전 검찰은 양 부시장에게 뇌물을 준 M사 외에도 업체 2곳을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서울시 공무원과 재개발 관계자 5∼6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렸다. 청계천 비리가 끝도 없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청계천 주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적거렸다. 한 두 시간 봄비가 사납게 내렸지만 땅을 고르는 포크레인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음을 알리듯 보도 위에는 새로 심은 가로수가 줄지어 섰다. 을지로 끝에 있는 청계천복원홍보관에도 이따금씩 관람객이 드나들었다.
을지로에서부터 속속 들어서는 대형 건물들
"여기 사람들 그런데 관심 없어. 사실 공사한다고 하면 그런(뇌물 주고받는) 일이 한 두번이겠어? 우린 그저 공사가 빨리 끝나면 좋지."
김태기(55)씨는 청계천 비리 사건에 대해 "관심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굵은 수도용 호스를 묶어 올려놓은 간이 손수레를 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김씨와는 다르게 청계천을 따라 작은 가게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가뜩이나 장사도 힘든 판에 을지로에서부터 대형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번쩍이는 유리와 대리석으로 한껏 멋을 낸 현대식 건물들은 전통적으로 청계천을 찾던 고객들의 변화를 뜻한다. 공구와 조명, 제지, 수건 등을 도매로 팔고 있는 소규모 가게들은 새로 들어설 '쇼핑 센터' 등에 자리를 내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양 부시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길아무개씨가 을지로2가에 세우려 했던 '서울비즈니스센터'도 청계천변에 들어설 현대식 쇼핑센터 중 하나였다.
"허탈하지…. 처음에는 노점상들 내쫓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게 있으니까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서울시에서 시민들 위해 좋은 일 한다고 해서 환경정비가 필요하다고 그랬어. 그래서 간판도 바꿔 달고."
작은 공구 도매상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45)씨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김씨의 머리 위로는 '○○상사'라는 황금빛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저기 건물 들어서는거 봐라. 여기도 언제 싹 밀어버리고 건물이 새로 들어설지 모르겠다."
김씨는 불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또 "청계천은 '이명박'이가 돈 벌려고 만든 것"이라며 "부시장만 돈을 받았다는 것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청계4가 근처에서 만난 조명가게 직원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임아무개(35)씨와 박아무개(39)씨는 "결국 돈 안되면 내쫓기는 거고, 돈 되면 모셔가는 거지 뭐"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 청계천에 물이 흘러서 관광지 비슷하게 되면, 주변에 공구상, 조명가게, 조그만 공장이 남아날 수 있을 것 같나? 어림없는 소리다. 결국 돈 안되는 가게들은 사라지고, 옷가게나 음식점이 청계천 따라 쭉 늘어서겠지."
"수사도 좋지만, 공사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
이처럼 청계천 비리에 대해 주변 상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청계천이 개발되면 전통적인 산업보다 서비스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고, 지금 있는 가게들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청계천 비리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점을 파악한 길아무개씨가 훗날의 투자 가치를 얻기 위해 저지른 부정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당장 상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공사 진행이 차질을 빚는 일이다. 오랫동안 영업에 타격을 입으면서도 참아왔는데, 공사가 더 지연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려가 매우 크다.
"공사 빨리 끝내야지…. 그래야 다니기도 좋고, 다니기 좋아야 사람들도 오고 안 그렇겠어?"
마네킹과 기타 물품을 팔고 있는 최아무개(55)씨는 '무조건 공사가 빨리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주변 사람들 하고 이야기 해 보면 다 똑같은 얘기일 것"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돈 받은 놈 잡는 것하고, 수사하는 것 다 좋은데…. 이명박 시장 본인이 뇌물 받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서울시에서도 공사가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