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흘러간 드라마 <떨리는 가슴>. 시청자들의 열기와는 달리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단다. 이번 드라마도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시청률은 고전을 면치 못한 모양이다. 아마도 작품의 질이나 재미 면에서 타 드라마에 밀렸다기보다는 홍보가 부족했던 점과 KBS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시청률 30%로 1위를 달리고 있으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MBC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봐줘야 할 듯. 누가 봐도 이번 드라마는 기획 자체부터 신선했다. 옴니버스로 '떨리는 가슴'이라는 주제 아래 사랑, 기쁨, 슬픔, 가족 등을 그려내기로 마음먹었다는 자체부터가 우리나라 방송가 실정상 치기 어린 행동이었고, 비아냥거림을 받을 수도 있었다.

ⓒ MBC
더욱이 주말드라마는 매번 홈드라마를 표방한 가족들의 이야기 혹은 신데렐라, 캔디의 캐릭터를 지닌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이야기-<떨리는 가슴> 후속 드라마 <사랑의 찬가>가 바로 현대판 장금이라니 말해 뭐할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시청률 면에서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으니 당연히 이런 기획 자체는 엉뚱하기 그지없는 일. 하지만 <떨리는 가슴>이 저주받은 걸작이라지만 '드라마왕국' MBC의 내공 덕택인지 빛을 발하며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방송가에서 시청률이 최고이며, 다수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생리라지만 진부한 내용과 교과서적인 내용을 다루어야만 했던 주말 드라마 시간대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떨림을 선사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 바로 이 점이 <떨리는 가슴>이 가진 진흙 속에 묻힌 진주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대중들은 너무 진부한 것을 외면하지만 너무 파격적인 내용들 또한 꺼려한다. 적당히 버무려서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춰 떠 먹여줘야 그나마 사랑을 받을까 말까 한 현실. 녹록치 않은 시청자들이니 말이다. 거기에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내용 수정까지 요구하는 용감한 우리나라 시청자들. 이런 면에서 적당한 실험적인 시도와 낯설지 않은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이야기 '사랑' 편은 멜로는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 결론을 무시해버리며 보통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이혼녀 배두나, 평범한 김동완 두 주인공이 소소한 일상에서 특별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의 모습, 그리고 맺어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은 사랑의 결말은 '짝짓기'라는 명제를 보기 좋게 비웃어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허무한 것이 인생이 아닐까.

두 번째 이야기 '기쁨' 편에서는 트렌스젠더를 방송에서 전면적으로 다루며 화제가 되었다. 특히 실제 트렌스젠더인 하리수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소재 자체부터 파격적이었는데 내용을 보니 더욱 더 진일보했다. 만약 기존 드라마였다면 트렌스젠더 그 수식어만으로 눈물바람에 어둡고 칙칙하며, 약간의 눈요기를 만들어 보여주었을 텐데, 역시 달랐다.

취업에서 차별 받는 현실을 전면에 내세워 소수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아픔을 보여줌과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유쾌할까 할 정도로 이야기를 다루었다. 게다가 연기 경력이라고는 대사 거의 없는 <노랑머리2>가 전부인 하리수가 오버를 자제하고 눈물연기를 펼쳤고, 언제나 무게만 잡던 신성우가 망가졌으니 그것만으로 매력은 충만했다.

ⓒ MBC
세 번째 이야기 '슬픔'에서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무릇 낭만과 추억의 산물인 청소년 시절은 드라마에서 언제나 현실은 뒤로 한 채 한없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여준다거나 한없이 희망찬 내일의 모습을 그리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현실과 허상을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떨리는 가슴> 슬픔 편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첫 사랑의 감정을 잘 보여주었다. 그럼으로 해서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가 별반 다르지 않은 거품 없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네 번째 '바람' 편은 극 중 40대의 가장의 힘없는 모습을 그려냈다. 꿈을 잊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던 한 중년. 그리고 꿈은 있지만 현실에서 방황하는 20대 여성. 서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아픔이라는 공통점으로 사랑이라 하기엔 좀 모자란 연민의 정을 교감한다.

여타의 드라마에서 다루어졌던 바람의 칙칙한 이미지, 선정적인 내용과는 달리 너무나 해맑은 주인공들의 순수한 모습이 비춰진다. 더욱이 최강희라는 순수함이 돋보이는 배우를 선택했다는 점이 매력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다섯 번째 '외출'에서는 중년 여성의 첫 사랑 떨림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리며 배종옥의 연기에 다시 한번 감탄을 표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행복' 편은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 아래에서 자매를 키우다가 남편이 치매에 걸려 아무 힘도 없어진 어느 날 가정을 버린 엄마와 딸의 애증을 통해,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가정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의 불가분 관계,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스토리와 형식면에서 <떨리는 가슴>은 여타의 드라마와 달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점뿐 아니라 드라마에 출연한 배종옥은 연기 베테랑답게 중심에 서서 때론 눈물 짓게 하며, 때론 웃게 만들었고, 배두나와 최강희의 자연스러운 연기, 김창완, 하리수, 신성우, 김동완의 뜻밖의 호연이 드라마 전반을 안정감 있게 메워주었다.

아마도 이 모든 매력들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떨리는 가슴은 큰 떨림으로 다가오게 된 것 같다. 더욱이 그리 멀지 않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잊혀졌던 추억과 경험을 꺼내들게 했고, 상투적인 내용에 치를 떨어야 했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해주었다.

으레 시청률에만 열을 올리는 방송가 현실에서 이런 주옥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점에 다시 한 번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감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