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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보름 늦게 핀 사과꽃이 이날 곱게 피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 이우성
복사꽃과 사과꽃이 서로 겹치는 아주 화려한 날, 아내의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시골로 내려와 보고 싶은 분들 보지 못하는 외로움이 컸는데 혼자만 즐기는 사과꽃 잘들 보시라고 모두들 초대했더니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동안 못 만난 분들과 회포도 풀고 우리 가족 시끌벅적하게 사는 모습 느릿느릿 보여드렸습니다. 배고픈 데도 행사 진행이 늦어진 것을 탓하는 사람 한 명 없었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갔노라고 말해 안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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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농사꾼 아내가 책을 냈습니다

음성에서 친환경농사 짓는 농부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풍물패 흙살림 젊은 식구들과 근처에 귀농한 젊은 동지들이 내 일처럼 나서 장구가락 울리며 신명나게 판을 달궈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습니다.
ⓒ 이우성
올해 보름 늦게 핀 사과꽃이 막 지기 시작한 복사꽃과 어울려 행사장 아래쪽에 차를 세운 분들은 그야말로 제일 화사한 시골의 맛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 올라오셨을 겁니다.

풍물패가 길놀이로 먼저 시작을 알리고 귀농동지 상주의 도명님이 안치환 노래와 자작곡 서너 곡을 기타를 치며 아름다운 음색으로 노래부르니 앙코르가 절로 나와 본 행사는 뒷전이었습니다.

▲ 귀농동지 도명님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기타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 이우성
남 앞에 서 본 적이 없어서 쭈뼛쭈뼛 하는 아내와 저를 빼고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기 소개를 하면서 많이 드시고 잘 놀다 가라는 제 부모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오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고 책을 쓴 아내를 제 친구가 소개합니다. 1년만 살고 도시로 다시 나올 줄 알았는데 오늘 와서 보니 안심해도 되겠다는 친구의 농담에 모두들 웃습니다.

아내는 도시에서 살 때 그토록 바라던 경제적인 안정을 버리고 나니 그보다 더 좋은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저를 안심시킵니다.

말주변이 별로 없는 저는 <오마이뉴스>에 올려서 많이 본 기사 1위까지 오른 <철없는 농사꾼 아내가 책을 냈습니다>를 읽었습니다. 책 내고 제일 즐거워하는 사람은 바로 저라는 대목에서는 참석하신 분들이 맞장구를 쳐줍니다.

▲ 가족소개 시간. 아이들이 말을 더 잘합니다. 잘 드시고 잘 놀고 가시라고.
ⓒ 이우성
우리가 결혼한 지 15년 되었는데 결혼식날 축시를 읽어준 오승건 시인께서 그날 읽은 <냉이꽃>이라는 시에서 '단단히 꽃을 피운 냉이꽃의 파란 하늘을 보아라' 하는 마지막 3줄만 다시 읽어줍니다. 모두들 배가 고팠거든요.

▲ 큰아들의 기타 연주에 앙코르가 나오자 준비한 듯 노래를 부릅니다.
ⓒ 이우성
이제 축하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공들여 배운 기타 솜씨를 큰아들이 서툴게 뽐냅니다. '로망스'라는 쉬운 곡인데 이놈은 1절만 칩니다. 예의상 앙코르가 들어오자 큰아들놈 마이크를 뽑아들고 노래를 부릅니다. 최신곡인데 제목은 저도 잘 모릅니다. 노래방 가면 이놈 마이크 독차지 하더니 오늘 날 잡았습니다. 제 딴에는 연습을 꽤 한 것 같습니다. 기타보다 노래가 훨씬 낫습니다.

▲ 오늘 하이라이트 풍물패 공연. 밤새 연습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 이우성
이제 풍물을 칠 시간입니다. 풍물패 썩을패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은 사람 역시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가듯이 순환하는 자연 흐름에 놀이를 맡기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놀이패 8명은 몇 달 전부터 밤마다 모여 길군악을 연습했습니다. 노광훈 상쇠의 지휘 아래 나날이 소리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뒷풀이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시간도 참 소중했습니다.

▲ 아내는 장구를, 작은아들은 북을, 저는 징을 쳤습니다. 사물의 기막힌 조화가 제 가슴을 울립니다.
ⓒ 이우성
아내도 장구를 잡고, 초등학교 4학년 작은 아들은 북을 잡고 저는 징을 잡았습니다. 연습때 이상으로 장단이 잘 맞았습니다. 앙코르가 쏟아집니다. 눈비산마을로 귀농한 김치환씨가 액맥이타령을 부르고 노광훈 상쇠가 장구로 장단을 맞춥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치환씨가 한 아이를 안고 어깨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자 잔치 분위기가 정점에 온 듯합니다.

이제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막걸리 한 사발씩 돌렸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분들, 그리운 분들을 찾아다니며 한두 잔 얻어마시다보니 취합니다. 사과꽃에도 취하고 정이 그리워 쏟아놓느라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오늘은 우리 가족 시골로 내려와 최고의 시간입니다.

밤 늦은 시간, 헤어지는 게 아쉬운 분들만 정크갤러리 데크에 모여 또 한바탕 장구를 칩니다. 춤추는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출판기념회 밤이 깊어가고 우리가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만든 시골의 문화가 사람들의 가슴에도 따뜻한 정이 깃드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친구놈이 말합니다. 도대체 어찌 사는지 보고 싶어 확인차 왔는데 이제 안심이라고. 시골살림 4년차가 무어 그리 시골에 대해 말할 수 있는게 많겠습니까만 이렇게 제 한 뼘 곁 주위에 저를 지켜주고 함께 길을 가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그분들 그늘로 제가 이렇게 뜨거운 햇살 아래 그늘막 지어 땀을 훔칠 수 있노라고 그걸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아내의 책도 그렇게 함께 하는 시골살이에 대해 쓴 것이지 도통한 농사꾼의 얘기를 담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아내 책에 대한 제 글이 실리고 여러분들이 도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중에 25년 농사지었다는 분 글은 저를 곰곰이 돌아보게 했습니다.

묵묵히 이 땅을 갈고 외풍에 아랑곳하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수많은 농부님들은 글도, 책도 내지 않는다는 말씀, 저도 깊이 공감하고 그분들 덕분에 후배 농부들이 다시 이 땅을 지키고 갈고 수확할 수 있음을 잘 압니다. 그분들은 우리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분이시지요.

▲ 뒷풀이 자리에서도 감동 받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풍물이 이어지고 춤사위도 나옵니다. 많이 춰본 듯.
ⓒ 이우성
도회지 있으면서 갖추게 된 전문기술이 출판일이다보니 제가 나서서라도 표현 잘 못하는 농부님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농부님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흙살림이라는 단체에서 농부님들이 보는 신문을 만들고 유기농업 기술 관련 책자를 만드는 일을 농사짓는 틈틈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적해주신 고마운 말씀들 잘 되새겨 저도 오래도록 이 땅을 지키며 묵묵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내년엔 더욱 땅이 가르쳐주는 순환의 원리를 제대로 잘 알아서 제가 농사 잘 못 지어 고귀한 작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 없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사과꽃 가득한 출판기념 자리에 오신 분들과 제 글을 읽고 충고의 말씀해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제 가족의 따뜻한 인사를 드립니다.

늘 제가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면서 물과 햇살과 바람과 돌과 풀, 이름없는 사소한 피조물에게도 눈길 주면서 저와 제 가족의 따뜻함이 세상에 넓게 손뻗어 정이 통하는 사회가 되는데 작은 주춧돌이 되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겠습니다.

시골에 오시면 삶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이전에 갖지 못했던 중요한 삶의 가치가 새롭게 보입니다. 그 대열에 함께 동참하시길 소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시골에서도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 주위에 등대같은 분들과 함께 출판기념회 잘 치렀습니다. 시골오시면 또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늘 배웁니다. 작고 이름없는 것 하나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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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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