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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세 시어머니(이대연·왼쪽)와 82세 며느리(김자순)
106세 시어머니(이대연·왼쪽)와 82세 며느리(김자순) ⓒ 김명숙
양사리 가장골 여주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친정아버지와 친구였던 시아버지의 '뱃속 혼인'으로 열여섯 살에 동갑인 조풍호(80세 때 별세) 할아버지에게 시집 왔다. 지금은 거동이 좀 불편하지만 기억력은 좋다.

"우리 신랑은 음력 사월 스무이레 날 태어나고 나는 시월 스무이레 날 태어나서 둘이 여섯 달 차이가 나. 우리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친구였는데 뱃속에 있는 나를 두고 딸 낳으면 며느리 삼자고 약속해서 혼인했어. 우리 신랑 이름은 조풍호. 어려서 부른 아명은 능선이고 우리 손자들 이름은 돈식이, 찬식이, 택식이, 손녀는 선자, 용자, 인자지. 증손자는 용석이고."

귀가 좀 안 들려 대화할 때는 큰소리로 해야 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이 할머니는 시집가기 전 친정아버지에게 한글도 배워 읽을 줄도 안다. 100세 때까지 밥도 직접 해먹고 풀도 뽑고 하루에 두 잔씩 커피도 직접 타 마실 정도로 건강했으며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교회에 다녔다. 100세 생일 때는 마을에서 생일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시집와서 62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김자순(82) 할머니. 남편이 9년 전 79세로 먼저 떠나고 난 후부터 시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이 동네서 시어머니 있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여. 경로당에서 놀다가도 시어머니 밥 차려 드리려고 왔다가고 허지. 그래도 뭐든지 잘 잡수시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과일이고 떡이고 부침이고 다 잘 드시고 몸도 깨끗이 해. 아직도 매일 따뜻한 물로 발 씻고 뒷물하고 얼굴에 로션 바르고 그러니까 냄새 안 나고 깔끔하지. 시집살이? 많이 했지.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그 시집살이가 야속해 시어머니가 안 좋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지."

한 명 있던 시동생이 6·25전쟁에서 전사해 며느리는 자신 밖에 없어 평생을 모시고 있는 김 할머니. 당뇨와 혈압이 있어 몸이 불편하지만 며느리들이 두 사람 먹을 반찬을 대줘 시어머니를 모시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집안 주권을 넘겨 받은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순종하고 살다가 57년만에 처음 시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다. 젊어서도 애들 학교 운동회나 소풍에 한번도 따라가 본적이 없다. 시부모가 대신 가고 자신은 집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상하다.

자신은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때로 서운하지만 3남 3녀의 자녀들은 할머니를 잘 모셔서 좋다. 자주 찾아오고 먹을 것 떨어지지 않게 대주고 할머니 건강을 걱정한다.

이웃집에 사는 김 할머니 친구는 "회관서 놀다가도 시어머니 밥 차려주려고 집에 댕겨오는 사람이여, 노인네에게 잘해야 집안이 잘 되는 건데 그러니까 이집 애들이 다 잘됐어"라고 말한다.

이대연 할머니의 장수비결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다. 살얼음판 같이 어려웠던 고부간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나이 먹어 덤덤한 고부간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바람은 "가는 날까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사는 것"이다.

세월은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의 누그러짐을 쌓아 두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역신문인 <뉴스청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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