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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이 한창입니다
두릅이 한창입니다 ⓒ 성락
시골과 서울을 오가느라 며칠만에 느끼는 계절 변화는 더 빠릅니다. 지난 주 막 봉오리 지던 두릅이 어느새 먹음직스럽게 자랐습니다. 산속 곳곳을 한 바퀴 돌아오신 아버지의 주루막(산나물 등을 담는 자루) 속엔 이미 자랄 대로 자란 두릅이 담겨 있습니다.

벌써 웃자란 것도 있습니다
벌써 웃자란 것도 있습니다 ⓒ 성락
원주에서 낯선 중년 부부가 찾아 왔습니다. 작년 농장을 다녀간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저씨가 녹용에 대해 이것저것 묻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관심은 다른 데 가 있습니다.

"어머, 세상에. 여보 이 두릅 좀 봐요. 정말 싱싱하네."

어머니의 능숙한 솜씨로 싱싱한 두릅 한 무더기가 잘 다듬어집니다. 갓 따온 두릅에 빠진 아주머니는 아예 한 개를 집어 쓰다듬기까지 합니다.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이거 혹시 파실 수는 없나요?"
"글쎄요. 뭐 팔고 말고 할 게 있어야지요."
"아이, 그러지 말고 파세요. 이거 정말 귀한 건데…."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이십니다. 예전 같으면 선뜻 그냥 가져가서 드시라며 내주었을 텐데, 산에 다니는 것에 부쩍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를 의식하신 듯합니다. 뒤꼍에 계시는 아버지께 곤란함을 떠넘기듯 묻습니다.

"어떡헐까요, 이 분들이 달라시는데."
"아, 달래면 드려야지."
"이걸 얼말 받우?"
"허, 그것 참…."

먹음직스런 두릅나물
먹음직스런 두릅나물 ⓒ 성락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십니다. 그냥 드리면 부담을 가질까 봐 값을 쳐 받으시겠다며 저울에 올립니다. 눈금이 1kg을 좀 지나쳐 고정됩니다. 며칠 새 두릅 채취로 적지 않은 용돈을 버셨다는 아버지는 수집상들이 사가는 가격을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돈 만원이나 내시면 되겠소."
"고생해서 따신 건데, 그래도 되시겠어요?"
"아, 그거면 제 값 다 받는 거니 걱정 마시오."

흥정이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옆에서 지켜 보는 저는 그저 재미있고 자꾸 웃음이 납니다. 험한 산 속을 헤집고 채취해 오신 아버지도, 싱싱한 무공해 산나물을 구입한 중년 부부 모두 만족한 거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맛과 향이 독특한 엄두릅
맛과 향이 독특한 엄두릅 ⓒ 성락
시골에 사는 재미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손만 뻗으면 제철 산나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집 주변은 잡목들을 깎아 주기 때문에 각종 산나물이 잘 자랍니다. '잔대'나 '삽추싹', '미나지싹' 등은 계곡 물에 씻은 후 곧바로 고추장을 찍어 먹을 수 있는 나물들입니다.

잔대싹이에요
잔대싹이에요 ⓒ 성락
두릅과 흡사하게 생겼으면서 쌉쌀함과 함께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엄두릅(엄나무 순)'도 알맞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나물의 상징인 취나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불을 질러 일군 화전밭 주변으로 취나물이 질리도록 자랐었습니다. 산림이 울창해진 지금은 집 주변 야산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나물입니다.

중년 부부에게 준 탓으로 저녁상에는 실컷 맛볼 만큼의 두릅이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집 주변에 가꾸어 놓은 나무에서 아직 덜 자란 것들을 조금 따서 맛만 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자연의 맛과 향입니다.

더덕이랍니다
더덕이랍니다 ⓒ 성락
요즘 같은 기온으로 보아 곧 고사리와 고비, 다래순과 머위나물 등이 산과 계곡들을 살찌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른 봄부터 산나물을 찾아 골짝 골짝을 헤집던 아낙들의 들뜬 봄맞이 풍경은 이제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일손 부족으로 칠순을 훨씬 넘긴 할머니들도 품팔이에 나서다 보니 예전처럼 산나물을 뜯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나물에 취해 보시렵니까?
취나물에 취해 보시렵니까? ⓒ 성락
보는 맛이 그만인 제비꽃
보는 맛이 그만인 제비꽃 ⓒ 성락
무슨 꽃일까요?
무슨 꽃일까요? ⓒ 성락
오는 듯하다 벌써 가버리는 것 같은 봄이 아쉽지만, 그나마 잠시라도 봄을 느끼며 산다는데 위안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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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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