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학꽁치회
ⓒ 이종찬
하루 종일 짙푸른 바다를 열심히 통통거리며 들락거리는 고깃배. 고깃배가 항구에 닿을 때마다 봄 햇살 따갑게 쏟아지는 청잣빛 하늘을 까맣게 가리며 떼 지어 날아오르는 갈매기떼. 그 갈매기떼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은빛 찬란한 물방울을 튕기며 새파란 바다 위를 파도처럼 툭툭 뛰어오르는 학꽁치떼.

지금 울진 죽변항 주변에서는 학꽁치 낚시가 한창이다. 특히 주말의 죽변항 주변은 갈매기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창 물이 오른 학꽁치를 낚기 위해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 죽변항 앞바다에는 학꽁치가 떼 지어 몰려들어 전문 낚시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학꽁치를 쉬이 낚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꽁치는 이른 봄에 가장 잘 낚이고, 그때 낚아 올린 학꽁치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회를 떠서 먹어야 가장 맛이 좋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 늦지는 않다. 이른 봄에 낚아 올린 학꽁치가 향긋하고 부드러운 봄맛이라면 지금 낚아 올리는 학꽁치는 쫄깃쫄깃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과 함께 뒷맛이 아주 깊다.

학꽁치는 주둥이가 정말 학 부리처럼 뾰쫌하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몸매 또한 학처럼 단정하고 멋드러지게 생겼다. 그런 까닭에 학꽁치는 다른 생선들과 마구 섞어놓아도 금세 눈에 띈다. 특히 붉으죽죽한 빛을 띤 긴 주둥이만 바라보고 있으면 새 부리인지 물고기 주둥이인지 얼른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 고깃배가 끝없이 들락거리는 죽변항
ⓒ 이종찬

▲ 지금 죽변항 주변에는 학꽁치 낚시가 한창이다
ⓒ 이종찬
주둥이가 침처럼 뾰쪽하게 튀어나왔다 하여 '침어'(針魚) 또는 '공미리'라고도 불리는 학꽁치. 학꽁치는 성질도 무척 급하다. 은빛 물방울을 파드닥 튕기며 올라오는 학꽁치는 낚싯바늘에서 채 빼내기도 전에 금세 죽어버린다. 학꽁치를 낚아 올리자마자 곧장 회로 떠서 먹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임에 틀림없다.

방파제나 갯바위에서 금방 낚아 올린 학꽁치는 숯불에 구워먹어도 맛이 끝내준다. 특히 학꽁치는 지방질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저열량 생선이어서 회나 구이, 국을 끓여서 소주 한 잔과 곁들여 먹는 그 맛이 정말 똑 소리가 난다. 은빛 찬란한 회는 쫄깃하면서도 사르르 녹는 감칠 맛이, 구이는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맑은 국은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 그만이다.

낚시꾼들이 학꽁치를 좋아하는 것도, 일본 사람들이 '사요리'라고 부르며 학꽁치만 보면 숨이 마악 넘어갈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바로 이 기막힌 맛 때문이다. 하지만 학꽁치 회를 뜰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학꽁치는 내장을 긁어낸 뒤 뱃속에 붙은 검은 부분을 특히 잘 긁어내야 한다. 검은 부분을 잘못 먹으면 배앓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꽁치는 아래턱이 학의 주둥이처럼 5~6㎝쯤 길게 튀어나와 있으며, 몸길이는 보통은 25~30㎝이나 다 자란 것은 40~50㎝ 정도다. 학꽁치는 보통 10~15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몸 빛깔은 등쪽은 청록색이며, 배부분은 은백색, 아래턱 끝은 아름다운 등황색이다.

▲ 죽변수협 수산물 회 직판장 5호점 '대구회'
ⓒ 이종찬

▲ 갓 잡아 얼음에 재 놓은 싱싱한 학꽁치
ⓒ 이종찬
"아제는 안동 꺼끄기니껴? 울진 꺼끄기니껴?"
"울진 꺼끄기니더."
"옆에 따라온 아재들은 서울 꺼끄기니껴?"
"이 분은 창원 꺼끄기고, 다른 분들은 모두 서울 꺼끄기가 맞니더."
"아니, 남 시인.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꺼끄기라뇨?"
"각중에 남의 나라에 온 것 같니껴? 이곳 울진에서는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볼 때 어디 꺼끄기냐라고 하니더."

지난 24일(일) 오후 2시, 나의 울진 길라잡이 남효선(46) 시인을 따라 나선 죽변수협 수산물 회 직판장 5호점 '대구회' 집. 이 집이 바로 울진 앞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대게(1마리 2만원)와 학꽁치(7~8마리, 1만원)를 도매로 파는 곳이다. 이곳에서 학꽁치를 사면 회를 맛갈나게 떠주는 것은 물론 갯바위나 죽변해변에서 먹기 좋게끔 초고추장과 마늘, 깻잎, 상추까지 곁들여 준다.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 아주머니는 "학꽁치는 껍질이 은청색으로 몹시 아름답기 때문에 껍질만 얇게 벗기는 것이 회를 뜨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어 갓 잡은 학꽁치는 비늘만 대충 벗겨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거나 굵은 소금을 철철 뿌려 구이를 해 먹어도 그 맛이 끝내준단다.

"학꽁치는 어떤 방법으로 조리를 해도 맛이 아주 좋은 생선 아이니껴. 술안주로는 회와 구이가 그만이지만 초밥을 만들어 먹어도 그 맛이 정말 기차니더. 오데 그거 뿐이껴. 학꽁치는 비린내도 나지 않아 아(아이)들과 여자들도 환장하니더. 그라이 왜놈들이 학꽁치만 보모 사족을 못 쓴다 아이니껴."

▲ 이게 새 부리야? 물고기 주둥이야?
ⓒ 이종찬

▲ 학꽁치는 흰살 생선에 들어있는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질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저열량 생선이다
ⓒ 이종찬
5분쯤 지났을까. 학꽁치를 다듬는 아주머니의 재빠른 손놀림은 금세 학꽁치 7~8마리를 맛깔스럽게 다듬어낸다. 이내 바구니에 가지런하게 담기는 학꽁치회. 투명한 은빛으로 반짝이는 학꽁치회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그때 아주머니께서 학꽁치회 한 점을 초고추장에 푸욱 찍더니 내 입에 넣어준다.

학꽁치회를 입에 머금자 금세 입안이 향긋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근데, 이게 웬일일까. 잠시 쫄깃한 학꽁치회가 씹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르르 녹아 목구녕을 타고 꾸울꺽 하고 넘어가버린다. 정말 기막힌 맛이다. 초고추장에 찍은 학꽁치회를 깻잎과 상치에 싸먹지 않아도 비릿한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몰래 학꽁치회가 담긴 스티로폼 그릇에 손이 간다. 나 또한 아주머니처럼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학꽁치회를 한 점 집어 초장에 푸욱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혀끝에 착착 감기는 맛! 쫄깃하면서도 너무나 향긋하고 고소하다. 또다시 몇 번 씹을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진다. 쩝,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남효순 시인이 턱짓을 한다. 어서 학꽁치회를 들고 죽변해변으로 가자는 눈치다. 그래도 한 점 더 하면서 얼쩡거리자 남 시인이 손에 든 소주 한 병을 꺼내 병뚜껑을 딴다. 그리고 소주 한 잔을 잔이 철철 넘치도록 부어준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학꽁치회 한 점을 집어먹어보라는 투다.

▲ 쫄깃하고 고소한 학꽁치회 드세요
ⓒ 이종찬

▲ 싱싱한 학꽁치는 썰어놓으면 투명하면서도 빛이 반짝반짝 난다
ⓒ 이종찬
커! 하고 짜릿한 소주를 넘기자마자 남 시인이 학꽁치회를 상추에 커다랗게 싸서 한 입 가득 넣어준다. 싱싱한 상추와 매콤한 마늘이 함께 씹히는 쫄깃한 학꽁치회의 이 고소한 감칠맛. 정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또 먹고 싶다는 간절함뿐. 아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그 맛이 바로 이런 맛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학꽁치회는 죽변불(죽변해변)에 퍼질고 앉아 소주와 함께 먹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니더. 그리고 여기는 회를 파는 곳이 아니라 물고기를 사면 회로 썰어주는 곳이니더. 하여튼 울진에 오면 유명한 횟집을 찾지 말고, 이곳에 와야 제 철에 나는 싱싱한 물고기를 아주 값싸게 먹을 수 있니더."

깊어가는 봄, 은빛 찬란한 학꽁치회 맛보셨나요? 입에 넣으면 절로 살살 녹아내리는 학꽁치회를 아직까지도 맛보지 못했다면 지금 낚시도구를 챙겨들고 울진 죽변항으로 가자. 가서 죽변항 주변 방파제나 갯바위에 아무렇게나 퍼질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면 낚시꾼이 아니더라도 찌릿한 손맛과 함께 금세 열네댓 마리의 학꽁치를 낚을 수 있다.

만약 낚시도구가 없다면 그냥 울진 죽변항에 가서 죽변항 바로 옆에 있는 죽변수협 수산물 회 직판장을 찾으면 된다. 그곳에 가서 곳곳에 널린 싱싱한 학꽁치를 고르기만 하면 알아서 회를 떠준다. 그러면 학꽁치회를 들고 낚시꾼처럼 죽변항 방파제나 갯바위에 앉아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학꽁치회 한 점 입에 넣어보자. 세상 시름이 입속에 든 학꽁치회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리라.

칼등으로 두드려 납짝하게 펴야 등뼈 쉬이 발라져
학꽁치회 이렇게 뜨야 맛깔나요

▲ 학꽁치회를 썰고 있는 '대구회' 집 아주머니
ⓒ이종찬

1. 싱싱한 학꽁치를 도마 위에 올려 비늘을 벗기지 말고 그대로 토막을 낸다. 이때 가슴 지느러미 부분과 항문 부분까지만 자르고 나머지는 버린다.

2. 학꽁치의 배를 갈라 내장을 긁어낸 뒤, 배 안쪽의 까만 부분은 수세미나 행주를 사용하여 깨끗이 긁어낸다. 배 안쪽의 까만 부분은 배탈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5. 학꽁치 배를 가른 쪽을 도마에 닿게 하고 칼등으로 톡톡톡 두드려 납짝하게 편다. (※너무 세게 두드리면 살이 뭉개지고 너무 살살 두드리면 등뼈가 잘 발라지지 않는다).

6. 토막 난 학꽁치의 껍질 부분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접고, 대가리 쪽 등뼈의 끝을 잡아 당겨 등뼈를 발라낸다.

7. 등뼈를 발라낸 학꽁치의 대가리 쪽을 가볍게 문지르면 껍질이 쉬이 벗겨지면서 대나무 이파리만한 살점 두 덩어리가 나온다.

8. 발라낸 살점은 나머지 학꽁치를 손질할 동안 얼음물에 담궈둔다. 나머지 학꽁치의 손질이 모두 끝나면 깨끗한 물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뒤 접시에 담아 된장, 마늘, 풋고추, 깻잎, 상치와 상에 올리면 끝. /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효산-울진-죽변항-죽변수협 수산물 회 직판장 5호점 '대구회' 
※동서울에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울진터미널에 내려 죽변항으로 가는 시내버스(30분)를 타도 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