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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랑은 집에서만 한다? 주5일제가 일터뿐 아니라 학교까지 확산되는 요즘. 집을 벗어나 여행이나 등산, 운동 등 취미를 함께 즐기며 가족 사랑을 확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박홍구, 유난희씨 가족에게 그 비장의 무기는 바로 '마라톤'. 이들 부부에게서 마라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귀중한 존재다. 지난해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나란히 출전해 유명세를 탔던 이들 부부는 이제 자녀들까지 마라톤 대열에 동참시켜 함께 즐기고 있다.

▲ 왼쪽부터 유난희씨, 큰딸 사은이, 아들 성현이, 박홍구씨.
ⓒ 전진한
이들 가족을 만난 장소는 특이하게도 서울 양재천 둔치였다. 올해 들어 가장 더웠다는 지난 주말 오후 이들은 한여름 같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양재천을 달리며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기자님도 마라톤 좀 하셔야겠네요"

나는 박씨 가족을 만나자마자 예의도 없이 부부의 나이부터 물었다. 자녀들이 벌써 중학생인데 너무 젊어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복 차림에 살짝 드러난 몸매는 군살 하나 없이 아주 탄력적으로 보였다. 박홍구씨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제가 44살이고 아내는 40살입니다. 허허허."

몸매가 너무나 탄력 있어 보인다고 칭찬하자 대뜸 아내인 유난희씨가 나를 보며 한마디 던진다.

"전진한 기자님은 몸매를 보니 마라톤 좀 하셔야겠습니다!"

충격이었다. 최근 다이어트로 5kg이나 감량한 후인데도 그런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찢어졌다. 다이어트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투지가 불타오른다. 기선을 제압당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마라톤 얘기를 시작했다.

이들 달림이 가족에게 마라톤은 어떤 의미일까. 많고 많은 운동 중에 마라톤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박홍구씨가 속사포처럼 마라톤 자랑을 늘어놓는다.

"마라톤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좋은 운동입니다. 가족과 마라톤을 하니까 너무 좋습니다. 공통의 관심사도 생기고 뛰면서 얘기도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 강남마라톤클럽 회원들과 박홍구·유난희씨 가족
ⓒ 전진한
마라톤 예찬은 끊임없이 이어져갔다. 마치 마라톤은 말 그대로 '또 하나의 가족'인 것 같았다. 박홍구씨의 마라톤 자랑이 계속되자 다른 주제로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자랑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이라면 하루 종일 얘기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권위적이던 남편이 부드러운 남자로

지금은 너무나 다정스러워 보이는 이들이 마라톤을 하기 전에는 어땠을까?

"남편은 아주 권위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부부싸움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마라톤을 시작한 후에 아주 부드러운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싸움 같은 것은 생각도 않는 닭살 부부가 되었어요."

권위적인 성격이 마라톤을 하면서 어떻게 부드럽게 변할 수 있었을까? 박씨는 잠시 예전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울트라 마라톤(100km를 13시간만에 완주해야 하는 경기) 대회를 부부동반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70km 지점에서 아내보다 제가 먼저 지쳐버렸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내의 무릎을 베고 40분을 쉰 후에 뛰기 시작해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자신도 힘들어했지만 내 상태를 체크해 주면서 내가 회복될 때까지 곁에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없었더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박홍구씨는 아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내가 더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온 가족 보스턴대회 참가가 목표!"

이렇게 마라톤은 이들 부부관계를 회복시켜 준 소중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너무 다정한 부부 모습에 슬쩍 질투심이 밀려온다. 괜히 심통을 부려보고 싶었다. 부부야 마라톤이 좋아서 매일 뛰고 있지만 자녀들은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힘들어하지 않을까.

옆에서 웃고 있는 딸 사은(16)이와 아들 성현(14)이에게 슬쩍 물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주 엄마 아빠와 뛰는 것이 너무 좋아요. 체력도 많이 길러지고요. 그리고 지방에 마라톤 대회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여행 다닐 수 있어서 더욱 좋아요."

이들 가족은 양재천에서만 뛰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 어느 곳이나 대회가 있으면 온 가족이 짐을 싸들고 간단다. 이 말에 박홍구씨가 신이 났는지 또 자랑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방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마라닉(마라톤+피크닉)이라고 해요. 마라톤과 피크닉을 같이 한다는 거죠. 대회 참가를 위해 가지만 마라톤이 끝나고 나면 재밌게 여행도 해요. 가족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지요."

정말 마니아 가족답다. 서울에서 뛰는 것도 모자라 지방에서 작은 마라톤 대회라도 열리면 온 가족이 곧장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라톤대회 참가는 국내에서 머물지 않는다.

"저희 가족은 해외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해요. 베를린, 일본, 하와이 마라톤 대회에 다녀왔죠. 특히 하와이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마라톤을 주제로 가족끼리 여행을 하는 거죠. 이제는 다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술·담배 대신 마라톤에 투자"

이쯤 되니 그들의 열정이 부러워진다. 같이 뛰는 것으로 저렇게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저렇게 열심히 하려면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드는 것일까? 은근슬쩍 비용 문제를 물었다.

"물론 비용은 많이 듭니다. 마라톤에 필요한 도구(신발, 체육복 등)며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비용이 꽤 들지요. 평균 한 달에 50~60만원 정도 듭니다. 하지만 과거에 술, 담배 하던 비용을 아껴 투자하는 것이라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랬다. 박홍구씨는 마라톤을 만난 이후 술, 담배를 거의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그 비용을 몽땅 마라톤에 투자하고 있었다. 얘기가 지속될수록 나도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마라톤 전도사 가족에게 마라톤 강의를 1시간 받으니 마라톤에 매력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마라톤만 좋아하는 걸까? 가족애를 위해 다른 계획은 없는지 궁금했다.

"저희는 마라톤 덕분으로 자신감을 가졌어요. 앞으로 등산, 사이클 등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말이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마라톤 선택"

▲ 마라톤 시작 전 몸을 풀고 있는 부부
ⓒ 전진한
시계를 보더니 연습시간이 다 되어간다고 부인이 살짝 귀띔해준다. 인터뷰를 마무리 해달라는 신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었다. 요즘 많은 가족이 겪는 불화에 대한 것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불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좀 더 서로를 잘 알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무엇인가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이 마라톤을 선택한 것처럼요."

마라톤 가족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마라톤 동호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마라톤을 사랑하는 또다른 달림이 가족들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30℃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였지만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에 있는 아내와 이제 갓 돌이 넘은 아들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도 우리 가족들과 뭔가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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