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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입구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선운사입구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 김정은
스스로 삶 자체가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늘 서툴고 어색해서 언제나 가야 할 길을 놓치기도 하고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가서 후회하기도 하며 길을 헤매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 안식처를 얻어 편안한 안정을 찾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인생도 여행과 닮았다. 치밀한 준비를 하고 예상했던 대로 삶을 살고자 해도 어긋나기도 하고 한순간의 즉흥적인 선택으로 가는 길이 달라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삶의 의외성이 주는 매력을 나는 여행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느낀다.

지난 4월 16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아무런 계획 없이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가 화창한 봄 햇살에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고속도로로 진입하긴 했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하긴 여행이란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라서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더라도 늘 서툴러 헤매기도 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하지만 또 그런 것들이 모여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가끔은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떠나보는 것도 내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서투른 기억을 남길테니까 말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으로 지도 하나를 그려놓고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다가 뒤늦게 정한 곳이 바로 전북 고창. 그러나 너무 늦게 결정한 탓에 빠른 길인 서해안고속도로로 빠지지 못하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선운사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주위는 깜깜해져 버렸다.

그러나 선운사 가는 길에는 생각지도 않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로등 불빛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밤 벚꽃 분위기를 풍긴다. 밤 벚꽃의 화려함은 여행객의 혼을 빼놓을 만큼 좋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느덧 우리나라 봄꽃의 대표주자가 되어 바이러스마냥 전국적으로 퍼지는 벚꽃나무를 마냥 좋다고 보기에는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벚꽃 유감

아무리 원시 왕벚꽃의 자생지가 우리나라라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벚꽃하면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네들의 문학이나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벚꽃은 그네들이 일본 민족정신이라 숭상하는 야마토 정신(大和魂)을 상징하는 꽃이기에 더욱 그렇다.

더욱이 일제 식민시대에 우리의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이름의 동물우리로 만들고 벚꽃을 심어 대중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권위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그들의 흉악한 속내가 20여 년 전만 해도 창경원 밤벚꽃놀이(よさくら)라는 미명 하에 순진한 대중 속에서 꿈틀되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가 숨어 있는 만큼 아무리 겹사쿠라니 왕벚꽃이니 품종 타령을 한다 해도 벚꽃이 주는 이미지는 왜색이 강하다 할밖에.

그럼에도 요즘은 관광수입을 위해 일부러 없던 벚꽃나무를 심어 벚꽃길을 조성하고 벚꽃축제를 화려하게 여는 곳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 있다. 조금만 지나면 이제 대한민국 전체가 봄만 되면 벚꽃축제로 들썩일 판이다.

기왕에 심은 벚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문제는 전국적으로 새로 조성된 벚꽃나무 가로수 길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봄을 대표하는 꽃이라면 매화꽃이나 복사꽃 등 다른 종류도 많이 있는데도 벚꽃나무를 새로 심는다는 것은 혹시 손쉽게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겠다는 단순한 목적 때문은 아닌지?

만약 화려하고 멋있고 관리하기 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벚꽃나무를 심는다면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전국을 벚꽃 천지로 만든다는 것은 왜색문제를 떠나서라도 지역 고유의 특색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화려한 벚꽃을 뒤로 하고 선운사에 당도한 시간은 오후 8시. 어차피 선운사는 내일 아침 일찍 갈 생각이어서 느긋하게 근처 음식점에서 이 고장의 유명한 풍천 장어로 저녁식사를 하고 잠잘 곳을 수소문하다가 우연히 인근 구시포 해수욕장에 있다는 해수찜질방을 찾아나섰다.

구시포 해수욕장과 해수찜질

일몰로 유명하다는 구시포 해수욕장은 이미 깜깜했지만 보이지 않은 밤바다 대신 하늘에는 무수히 빛나는 별과 손님을 기다리느라 환하게 밝힌 음식점 불빛 그리고 해수찜질방이라 환하게 매달린 조명간판이 이곳에 새로 온 낯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40분 정도 조그만 욕탕 속 뜨거운 바닷물을 듬뿍 축인 수건을 온몸에 씌우는 해수 찜질로 피로한 몸을 달래고 난 후 샤워를 하고 낯선 찜질방 수면실에서 잠에 빠져 들었다.

길지 않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이튿날 새벽 5시. 선운사로 가기 위한 발걸음이 유독 가볍다. 혹시 찜질방 주인 아저씨가 열을 올리며 설명했던 거의 만병 통치약 수준의 해수찜의 효과가 과장된 상술이나 허풍이 아닌 사실이었을까?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해수 찜질은 준비없이 떠난 여행에서 느낀 즐거운 추억이었다.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선운사 주차장 입구에서 절까지 걸어가는 길, 이곳에도 하얀색 벚꽃은 지난 저녁 열을 올렸던 나의 생각을 비웃듯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맘 가는 대로 떠난 고창여행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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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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