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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영세 유통점포들의 현실

▲ 한겨레신문 4월 25일 월요일
ⓒ 한겨레신문
최근 세계시장에서 한국제품에 대한 평가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반면 사회 내부의 빈부격차는 극심하게 진행되고 왔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업에서도 진행되어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재래시장의 영세한 소매점포와 슈퍼마켓, 백화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소매유통업계에 유통시장의 전면개방으로 국내외 대형 할인점 및 신업태들이 진입해 왔고, 그 결과 재래시장 등 영세소매업이 일방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대형할인점이 270여개로 추산되고 올해 말에는 300여개에 달할 예정인 가운데 대도시는 물론 최근에는 인구 5만여명의 작은 지방 도시들마저 파고들어 지역민들의 생존기반인 중소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강원도 춘천과 태백시, 제주 서귀포시 등에서 이런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예컨대 태백시의 경우 인구 약 5만 4000여명의 도시로, 대형 모 할인점의 입점 찬반 여부를 둘러싸고 주민 간에 고성이 오가고, 일부 주민들이 시청 내부에서 항의집회를 여는 등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또 가까운 경산과 포항에서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할인점 입점이 허가되어 지역 영세 상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또 대도시는 대도시 대로 할인점 간의 경쟁으로 인해 교통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의 강남 서초구 양재동이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대형 3개점이 경쟁을 벌이면서 일대 교통체증이 더 심해졌다. 게다가 값이 싸다고 해서 대형할인점이라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값이 더 싼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이름을 대형소매점이라 불러야지 대형할인점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됨에 따라 국내외 대형 할인점 및 신업태들이 진입하면서 업태 간 차별화, 개성화, 전문화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영세소매점이 그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대자본의 시장 유린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볼 때 그 생산성, 즉 효율성을 높여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외국 유통산업의 국내 진입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나아가 산업전체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역에서 중소형 상가는 지역 주민의 생계유지 방편이자, 고용의 일정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가게 하나에 4~5명의 가족들의 생활이 달려있는 ‘생계형, 자립형 독립사업자’가 대부분이다. 가게 하나가 문을 닫으면 가족 전체의 생존자체가 위협받는 것이 현실이다.

유통산업 발전을 위한 산자부의 계획을 보면 대형소매점 중심의 계열화된 유통시스템과 도매상 및 독립중소 소매상으로 연합된 유통시스템간의 경쟁, 도매업의 재활성화를 통해 중소유통업의 구조개선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또 지방 유통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하고 지방중소 유통업의 활성화를 위한 재래시장 정비, 상점가 재정비, 구시가지 상권 활성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육성 특별법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재래시장 근대화에 많은 자금이 지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시장 근대화의 성과보다는 대형할인점의 시장 잠식이 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영세 유통업체 보호의 어려움

이에 따라 대형 유통업체들의 지방 상권 장악에 대해 우선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제동을 걸었다. 대구 남구의 할인점 진출 제동이 전국 첫 번째 예이다. 매장면적 3000㎡ 이상의 유통업체는 인구 15만명 당 1개만 등록할 수 있도록 업무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인 대구시에서도 대구시내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등의 교통유발부담금을 상향조정하는 개정 조례안이 18일 대구시의회 상임위원회와 25일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래서 다른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교통유발부담금이 대폭 오르게 되었다.

대형할인점과 백화점은 3급지로 차등화해서 교통유발부담금 최고 50%를 인상하도록 했다. 해외에서도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정부는 대형유통마켓에 대해 초기에는 강력한 지원 정책을 펼쳤으나, 이후 입장을 변경해서 규제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지침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 입점을 규제할 경우 이 지침은 상위 법률인 ‘유통산업발전법’에 위배되는데다 역규제라는 지적마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 등 관련 법령에서는 3000㎡ 이상 대규모 점포의 개설은 구청에 등록만 하면 되고 6000㎡ 이상 점포만 교통환경영향평가와 건축심의를 받아야 한다. 3000㎡ 미만 규모의 점포는 관련법 규정이 없어 사업자 등록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 산자부 관계자는 “대형할인점의 입점을 규제할 수 있는 법규는 없다”고 말하며 “하지만 대형 점포로 인해 지방 중소상권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국회에서 의원들이 영세상인보호를 위해 일정 기준 이하의 소도시에 대규모 점포를 설립할 경우, 해당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지난 4월에 발의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대형 유통업체 입점 규제가 차기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심행정이라며 자치단체장의 월권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영세유통업을 살리기 위한 대안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해본다.

▲ 영남일보 4월 22일
ⓒ 영남일보
첫째, 유통산업의 근대화를 이루어 해외 대형소매점의 침투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산업전반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 지역 유통산업의 생계산업적 특성과 고용흡수력 그리고 소비자가 보다 양질의 상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 등, 이 복잡한 문제 영역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권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소비자들이 이러한 상호 모순되는 목표 가운데 어떤 것을 원하는지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국적 차원에서의 획일적인 법률적 규제 혹은 기준 설정보다는 각 기초자치단체의 소비자들이 각 지역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형유통업이 특히 발달한 미국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대형소매점과 패스트푸드점의 진입을 지역주민이 반대하고 지역의 소형 소매점을 애용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둘째, 전체적 방향이 이렇게 설정되면 영세 유통업 종사자들도 과거와 다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래 유통업 종사자들은 생계형 업주들로서 관성적인 상거래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들의 유통행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을 가장 중요시하고 그 다음으로는 깨끗하고 위생적인 매장을 선호했다.

또 가격 대비 식음료의 질이 좋은 매장, 방문의 편리성,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매장을 선호했다. 기타 주요 항목으로는 편리한 주차시설, 넓은 공간, 다양한 제품 구비, 효율적인 계산대 운영 등이 있었다. 가격, 매장환경, 판매상품 관리와 서비스 등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50세 이상의 소비자 중 절반 이상(51%)은 슈퍼마켓을 주 소비 채널로 이용하고 있는 반면, 대형소매점의 경우는 특히 25세에서 39세까지의 비교적 젊은 소비자층이 선호하고 있는 것(51%)으로 드러났다.

재래시장에 대한 선호도는 50세 이상의 소비자들에게서 조금 높게 나타난 반면(10%),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선호도가 감소,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젊은 소비자들은 재래시장을 아예 방문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0%).

현대적인 유통채널에 대한 선호도는 증가하고 재래시장에 대한 선호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맞추지 않고서는 국가에서 아무리 지원하고 법률적으로 보호를 하여도 시장에서의 생존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양적인 규모가 필요할 때에는 중소 유통업자들에 의한 상인협동조합의 확대가 적극 모색되어야 한다. 협동화의 필요성이다.

유통업체간의 전략적 제휴(자원과 정보, 그리고 기술의 공유, 규모의 경제 달성)와 공생적 마케팅 노력(공동 물류, 공동 브랜드, 상가 구조개선, 공동주차장 확충 등)의 전개가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대구 동성로에서 동성로상가번영회가 주축이 되고 중앙 및 지방정부가 지원하여 동성로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구 도심의 재활성화운동은 우리에게 귀중한 사례로 평가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양적 규모 경쟁 못지않게 질적 특성화도 필요하다.

전문화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 구매와 관련한 깊은 지식 혹은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상품 소비와 관련한 상담가로서 다가가게 해 줄 것이다. 개별 유통업체로서 차별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독자적인 영업 컨셉트를 정립하여, 개별 점포가 단순한 판매장소가 아닌 커뮤니티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역밀착형 경영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근 발달하고 있는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 기능도 활용하여 판매자와 구매자가 지역에서 하나의 동아리를 형성해가야 한다.

셋째, 영세한 유통업 종사자들에게 지나친 요구가 될지 모르지만, 유통과정에서의 자구적 노력과 경쟁력 확보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으로 지역 상인들은 지역사회에 기여해서 주민들에 보답하여야 한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행사와 사회복지적 측면에 많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형편이 닿는 대로 경제적 참여, 혹은 비경제적 참여를 할 때 지역의 소비자들은 애정을 가지고 지역 상인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최근 반월당 지하상가가 개발되면서 그 네거리의 횡단보도를 폐쇄한 것은 상인의 입장을 단세포적으로 반영해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정책이라 봐야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지하로 다니게 해서 상인들의 고객을 확보하려는 방법은 주민들의 불편함을 극대화시켜 반감을 고조시킬 뿐이다.

횡단보도 폐쇄가 지하상가 분양 조건이었다는 의혹도 있는 가운데 대구시는 해괴한 논리로 폐쇄결정을 정당화하려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반월당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한 교통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공개하고 횡단보도 폐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넷째, 이런 여러 가지 쉽지 않은 대책을 생각할 때 최근 대형유통업자가 소형 유통업태까지 활용하여 지역 상권을 장악해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소매점이 업태를 중간규모 소매점인 이른바 슈퍼슈퍼마켓(SSM)까지 영역을 넓혀가서 동네 슈퍼까지 고사시키는 것은 법률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정글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 영역이 보장되어야 공룡에 의한 먹이사슬 붕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지향적인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거니와, 소매유통업계가 앞장서고 정부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당면한 과제들이 해결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언론 참소리>

참언론대구시민연대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언론개혁운동단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 참소리>칼럼은 기존의 <참언론 대구시민연대 언론신경쓰기 칼럼>을 확대 개편했다. <참언론참소리>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재훈님은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참언론대구시민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 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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