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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열린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왼쪽)과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의 간담회.
ⓒ 오마이뉴스 이종호

17대 국회의 변화 중 하나는 장애인 의원의 진출이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은 각각 비례대표 1번과 8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두 의원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간담회에서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국회의원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기만 할 뿐, 국정감사 전까지는 우리를 동료로 믿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 의원의 의정활동 능력을 믿지 않다가 외부에서의 국감 평가가 좋게 나오자 그때서야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다.

개원 초기 편의시설 확대를 위해 국회 사무처와 실랑이를 벌였던 것도 두 의원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장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단상 옆에 보조발언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사무처에 대해 "평생 밖에서 따로 대접받았는데 국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따져 버튼을 누르면 높낮이가 조절되는 현재의 단상을 만들었다. 정 의원은 "점자통역과 안내를 위한 비서를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맹도견을 안내견 삼아 몰고 국회에 들어오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고군분투 덕분에 현재 국회 건물은 '구조가 허락하는 한' 대부분의 편의시설을 갖춘 상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국회나 행정기관의 문서는 전혀 점자본이 없는 상황이어서 정 의원은 일일이 비서를 통해 문서를 점역해야 한다.

두 의원이 뽑은 '장애인인권의식 우수 의원'은 누구일까? 장 의원은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과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을, 정 의원은 한나라당의 권철현·나경원 의원, 열린우리당의 유재건 의원을 꼽았다.

장 의원과 정 의원은 모두 부산에서 장애인운동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평소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다. 이번 간담회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에 "당연하지"라고 맞장구를 치거나 "나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을 이어가며 공감을 나타냈다. 정 의원은 "국회도서관, 헌정기념관 계단이 장애인에게 불편하다"며 장 의원에게 "건의 한번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의원의 간담회는 2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동안 국회 의원회관 정화원 의원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화 전문.

"의원들, 국정감사 끝나니까 장애인을 동료로 인정하더라"

▲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오마이뉴스 "장애인에 대한 동료 의원이나 국무위원, 공무원들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이하 장향숙) "다들 친절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고 느꼈는데 국정감사가 지나면서 의원들 태도가 달라졌다. 국정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까 비로소 나를 동료로 인정한 것이다. 내가 의정활동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의원들이 믿지 않다가 평가가 잘 나오자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이하 정화원) "마찬가지다. 도와줄 대상으로 보더니 국정감사가 끝나고 난 뒤에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고 인정하니까, 다른 의원들도 보건복지 분야나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묻고 같이 의논도 한다. 정부나 국회나 국민, 모두 다 장애인이 조금 잘하면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고 못하면 '역시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장애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생각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할 생각인가."

정화원 "3선, 4선이 되면 가야지. 그래도 초록은 동색인데, (장애인 의원이) 보건복지위에 가게 되어있다. 장애인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숙명적이다. 아직 장애인복지가 OECD 국가 중 끝에서 2·3번째다. 장애인 문제 해결은 10분의 1도 못했다."

장향숙 "개인적으로 들어가고 싶은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였다. 조기교육, 통합교육으로 장애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장애인계도 당도 내가 보건복지위 들어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장애인 의원 1세대로 의정생활을 시작했는데, 다음 의원들은 다양한 상임위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정화원 "장애인만 장애인문제에 나서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국회에 (경증을 포함해) 장애인 의원이 5명인데, 전혀 장애인 마인드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나무라지 않는다. 나나 장 의원은 오래 전부터 장애인으로 살면서 운동 해와서 더 잘 알 뿐이지."

오마이뉴스 "비장애인 의원 중 장애인에 대한 인권의식이 높은 사람을 꼽아달라."

정화원 "우리 당에서는 나경원 의원도 장애인 가족인데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려 하고, 권철현 의원이나 유재건 의원이 장애인 마인드가 좋다."

장향숙 "우원식 의원이 환노위에서 장애인 직업 문제에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하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다."

"장애인계의 기대는 우리가 질 십자가... 터무니없는 요구엔 난감"

▲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오마이뉴스 "국회나 행정기관의 시설이나 업무 방식은 얼마나 장애인 친화적이라고 평가하나."

정화원 "지금은 국회 사무처가 수고를 많이 해서 현 국회 건물에서 할 수 있는 시설은 다 갖췄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국회의원이 됐지만) 국회나 기관의 공식 문서는 점자로 전혀 번역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문서조차도 번역이 안됐고, 다만 점역 비서를 한 명 따로 배정해줬다."

장향숙 "처음에 국회 사무처에서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안 고치고 보조발언대를 두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언론에 대고 '그렇게 해라, 단 나는 그 보조발언대 절대로 안쓰겠다'고 했다. 나는 평생 밖에서 따로 대접받았다. 화장실도 따로, 길도 따로 돌아서 가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따로 대접받지 않겠다 싶었다. 그랬더니 지금은 버튼 누르면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단상으로 바뀌었다. 단상 고쳐놓으니까 결국 키 작은 여자의원들이 덕을 본다.

그리고 마이크가 단상에 고정되어 있는데 휠체어 때문에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다. 마이크를 앞으로 당기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면서 성능좋은 마이크로 바꿨다. 그것도 다른 (목소리 작은) 동료의원들이 덕 본 거지."

정화원 "초기에 '점자도 알아야 하고 나를 안내도 해야하니 비서를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더라. 그래서 (시각장애인인) 영국의 데이비드 블런킷(전 내무장관)처럼 안내견을 몰고 들어오겠다고 했다. (장향숙 "당연하죠. 정 의원님, 지금도 개 몰고 오지 그래요.") '나도 맹도견 몰고 들어오겠다'고 했더니 사무처에서 다 해주겠다고 하더라."

장향숙 "처음에 의총장에 가니까 기자들 앉는 자리 끝머리에 의자 하나를 떼내고 내 자리를 만들어서 굉장히 화를 냈다. 동료의원과 같은 동선에서 움직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화원 "당연하지") 의원들과 인사도 하고 찬반의견 주고받으면서 발언해야 하는데 따로 떨어져 앉으면 언제 얘기하나."

정화원 "장 의원, 도서관이나 헌정기념관의 긴 계단 깨고 다시 만드는 게 안 좋겠나? 그래야 휠체어도 다니고. 전에 행사하는데, 휠체어 장애인들은 다 뒤에 앉더라. 시각 장애인도 계단 보조 맞추기 힘들고. 건의 한번 해라."

오마이뉴스 "두 의원에 대한 장애인 단체들의 기대가 큰데, 단체의 요구와 현실 사이에서 고뇌가 크겠다."

정화원 "우리가 정부와 국민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많이 있다. 터무니없는 요구 있을 때는 난감하다. 그럴 때는 장애인단체를 이해시켜야 하지만, 정부가 해줄 수 있는데 안해줄 때는 너무 괘씸하다.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요구가 클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못 지킬 공약을 많이 냈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장애인 관련 행정을 권리가 아닌 시혜로 생각한다."

장향숙 "장애인계의 기대는 운명적으로 짊어질 십자가다. 그렇지만 그 무게 때문에 일에 지장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인계의) 본뜻이 아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면 일을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질타는 각오하고 때로는 한 귀로 흘려야 한다. 제도권 안에서 의원으로 의정활동 해보니까 한계가 분명히 있다."

▲ 지난해 5월 31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장향숙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탓에 가장 밑단에 있는 반면, 다른 의원들은 두계단 높이 줄지어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본회의장에 의원 보좌관은 출입할 수 없지만, 장애인 의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 지난해 7월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투표를 마친뒤 본회의장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의원은 이런 경우 누가 이야기를 나누는지조차 모르는채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현 정부는 장애인 불참정부"

오마이뉴스 "참여정부의 장애인정책을 평가하고 이후 집중할 장애인정책분야도 밝혀달라."

정화원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을 많이 해놓고 안지켰다. 고용장려금을 30% 삭감하고 차량 LPG 조세 지원을 250리터로 제한하고 장애예산은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참여정부가 아니고 '장애인 불참정부'다. 이번에 LPG 조세 제한을 푸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놓았다. 장애인연금법안도 발의했고. 장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잘 설득시켜야 하는데….

앞으로 장애문제를 교과서에 넣고 통합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중증장애인 고용 문제도 중요하고, 십수년 전에 정한 의무고용율 2%도 3.5%로 올려야 한다."

장향숙 "참여정부 장애인 정책은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의 최대 과제는 장기적인 종합대책 차원에서 장애인 이동권·노동권·교육권·여성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때 그때 따라 던져주기식으로 정책이 만들어졌다. 여당 의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올해 장애계의 이슈는 차별금지법 문제와 장애인연금법인데, 저나 정 의원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의사를 존중하는 입장이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법안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도울 생각이다."

▲ 지난 2월 17일 대정부질문을 하는 장향숙 의원(왼쪽)과 지난 4월 14일 대정부질문하는 정화원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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