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같은 손이 가파르게 떨리고 있다. 22일 밤 전남대병원 소아병동 중환자실. 실핏줄이 선명해 보이는 '하진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오늘도 그렇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생후 28일째다.
임신 중 난치성 질환이 재발 돼 7개월여 만에 아이를 낳게 된 산모 유점숙(28)씨. 그녀는 오래 전부터 전신 홍반성 낭창 증세인 '루프스'라는 병마와 싸움 중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발병한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것만도 수 차례. 직장생활이 어려웠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고향 여수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있던 중 신앙생활을 통해 남편 유종균(36)씨를 만났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임신 중 그만 병이 재발하고 만 것이다.
심장수술...무호흡 증세 보이기도
태아 때문에 제대로 된 투약도 어려운 상태에서 병원에선 부득이 '수술'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산모와 어린 생명까지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28주 1일, 7개월에 막 접어든 때였다. 연이어 산모는 맹장염증으로, 미숙아였던 하진이는 심장 동맥관 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상태다.
"아이를 지우는 게 좋겠다고 얘기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볼 수만 있고 생각할 능력만 있으면 어떻게 든 키워보려고 합니다."
아빠가 된 유종균씨의 말이다. 아이는 가끔 무호흡 증세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산소를 투입하는 한편, 우유는 위관을 투입해 공급하고 있다. 한 번의 사산 끝에 얻은 새 생명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이제 체중 1.9㎏를 갓 넘어서고 있다.
이들 부부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하루 두 차례 주어지는 면회시간 뿐. 산모는 얼마 전 먼저 퇴원했다. 그녀는 "집에 있으면 아기 생각이 자꾸 나, 일부러 청소를 하기도 한다"며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직 한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가엔 벌써 물기가 서려 있다.
일당 2만4000원 용접공, 치료비 1천만원 넘어서
안타까운 것은 가난한 이들 부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병원비. 남편은 일당 2만4000원의 하남공단 용접공이다. 이미 산모 퇴원에 400여만원의 돈이 들었고 아이의 병원비는 1천만원이 넘어서고 있다.
몇 개월째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다 보니 잔업을 한다고 해도 고작 60∼70만원을 넘기 어렵다. 지난달에는 직장 동료들이 바자회를 열어 마음을 보탰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꿍꽝거리는 공장의 소음소리에도 어디 일손이나 한번 잡혔을까. 한 직장 동료는 "아이의 생명을 의지할 데라고는 병원밖에 없는데, 병원비가 없는 중소사업장 노동자에게는 병원이 또 하나의 하나님"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넓은 하늘처럼 베풀고 살라는 뜻으로 '하진'이로 이름 지었습니다. 난치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동안 아파도 힘든 표정 안 보이려고 새벽에 혼자 나가 토하고 있는 부인을 생각하면, 제가 더 용기를 내야죠."
가난하지만 맑은 부부의 바람처럼, 하진이는 다시 환하게 나래를 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