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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중학교 학생들의 문제를 다룬 <조선일보>의 '편의점 습격사건' 기사.
K중학교 학생들의 문제를 다룬 <조선일보>의 '편의점 습격사건' 기사.

"미안해.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어."

누구나 살면서 이러한 소리를 한 번쯤은 듣기 마련이다. 사람이란 실수가 없을 수 없고, 그렇기에 때로는 본의와 다르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안함의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과하는 측의 진심 어린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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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이번 'K중학교 편의점 습격 사건'이 왜곡보도라며, <오마이뉴스>에 주장한 관련 교사의 글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실 많은 이들에게 공공의 적 취급을 받고 있는 조선일보 보도라는 것만으로도 이 보도가 공정성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명성 글을 보는 순간 이건 분명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습격 사건이라는 제목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근거로 우발적 행위이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발적 사건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실의 접근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청소년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편의점 내 물건을 그냥 들고 나갔다는 데 있다.

즉, 우발적이든 아니든 학생들로 인해 편의점이 물질적 피해를 입은 데 대한 사실이 변함없다는 것이다. '습격'은 본래 갑자기 적을 덮쳐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 당시 상황을 습격으로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두 눈을 멀쩡히 뜬 상태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가는 것을 습격 이외에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예전에 이라크에서 치안이 엉망이어서 사람들이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져가고 그랬다.

그것 역시 우발적이었다고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이 우발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아닌 물건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갔다는 데 중점이 두어져야 함에도 우발성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발적 사건의 근거로 든 것들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중 두 가지 이유만 꺼내서 살펴보자.

넷째 근거인 아이들이 계산을 못하고 밀려나왔다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학생은 교사에게 알려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글을 다 읽어보면 교사들의 대책 회의를 시작한 것이 학생들의 자발적 신고가 아닌 업체 측의 연락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계산을 못하고 밀려나왔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람이 몇 명이 되었든 몇 시간이 걸리든 기다렸다가 값을 지불하고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단 한 명도 그냥 갖고 나오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정말 우발적이었다면 오히려 군중심리로 다른 애들도 그러는데 하면서 굳이 계산대에 가지 않고 가져올 수도 있다.

다섯째 근거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껌, 우유 등이 대부분이었고 해어젤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값싼 물건이나 값이 좀 나가는 물건이나 지불하지 않고 가져온 행위는 같다. 게다가 값싼 물건을 가져온 것이 90%라는 것이 어떻게 우발적 행위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해어젤을 가져온 행위는 계획된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습격 사건이라는 기사 제목이 악의성을 가진 왜곡보도의 전형으로까지 뽑힐 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둘째로 그 교사는 선생들은 뭐하고 있었느냐는 보도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사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공감한다. 하지만 이 해명에서 실망감을 금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당사자가 말한다면 믿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의 주장만을 항변하기 전에 자신들의 지도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의 뜻이라도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교권이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지만 학생들의 행동은 분명 옳지 못했고, 그에 대해 일차적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게 가르친 학부모나 평상시에 제대로 청소년들을 돌봐주지 못한 나를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다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교사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제자들도 상황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은폐 의혹에 관한 부분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물론 은폐 의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폐의 기준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내에서 덮어두려는 태도를 은폐의 기준점으로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학교 측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은폐라는 말이 지나치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은폐하지 않으려 했다는 근거 부분에 이르러서는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사는 편의점이 계산 불능 상태에서 영업을 했다며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이게 과연 편의점의 과실을 끌고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일까?

편의점이 아무리 넓어도 직원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무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 순간 바로 영업 못하겠구나하고 문을 내렸어야 옳은 것일까? 아니면 학생들이 당연히 질서를 지켜 물건을 사리라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계산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모습이었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편의점의 잘못을 끌어와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누구나 300명이 넘는 학생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제대로 계산을 안 하고 가는 상황이 오면 계산 불능이 아니라 그야말로 영업포기 상태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피해업체가 합의에 응한 것이 피해업체의 과실 때문만일까. 아들이 있을 수도 있고, 동생이 또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 합의해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쪽도 잘못했다고 인정했다고 말하게 되면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수법인 '물타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후 처리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을 뿐더러 아쉬움도 남는다.

먼저 의문이 남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자수한 학생들에게 중한 처벌을 내리지 않고 벌점 10점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인성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뒷부분에 해당 학생 및 자수 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인성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했는데 이해하기가 힘들다. 타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자수 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고 했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 아이들은 어떻게 가려서 처벌했다는 뜻인가.

게다가 상담과 훈계, 청소 봉사가 교내외 봉사를 하는 자수한 학생들과 차이가 무엇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즉, 마지막 부분에 가서 해당 학생 및 갑자기 난데없이 자수하지 않은 학생들을 같이 묶어 넣어 사실 판단을 어렵게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마땅히 비슷한 상황을 설정해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을 세워놓아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무엇보다 염려되는 것은 아이들이 교실 밖의 수업을 할 기회를 아예 강탈해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비슷한 상황에서 교사 두 명 반드시 같이 동행할 것이라든가 각반 대표로 한 명씩 뽑아 돈을 모아 종류별로 사오게 한다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 같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작년에도 별문제 없었다는 것은 매년 이 학교가 하고 있는 행사일 테니 내년에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혼자서 수십 명을 관리해야 하는 교사도 힘들 것이고, 순간적인 치기에 일을 저지른 학생들도 조마조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인격모독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말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면 앞뒤 전후 상황을 막론하고 일단 이런 사건에 대해 앞서 말했듯 사과까지는 힘들더라도 유감을 먼저 표시해야 한다. 분명 이번 사건은 학생들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상처 안 나게 잘 보듬어 데리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인정할 줄 알게 해야 한다. 이번 해명성 글이 왜곡보도에 대한 억울함을 표현하려는 것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본의와는 다르게 본질을 흐릴 위험성이 있어 보인다.

이 기사가 뜬 포털사이트의 누리꾼들의 댓글이 결코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인격을 모독했다는 왜곡보도보다 그러한 보도를 하게 만든 학생들의 잘못된 행위에 더 주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게다가 조선일보 기사라면 비판적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러한 반응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 조금 잔인한 부탁일지 모르지만,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자성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그 교사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어보아도 학생들의 인격 운운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에 대해 따끔하게 문제를 삼아야지, '인격모독'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주는 듯하다면 다소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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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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