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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정국악원의 교과서 국악여행 연주회
대전연정국악원의 교과서 국악여행 연주회 ⓒ 윤형권
노랑색 머리에 김치보다는 피자나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세태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또 이상한 댄스음악에 몸을 비틀고 흔들어대는 아이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게 청소년들의 잘못인가요? 피자나 햄버거를 먹는 청소년들을 탓할 게 아니라 청소년들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개발하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면 지나친 역설일까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들이 우리 음악을 모른다고 나무랄 수만은 없지요. 그동안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우리 음악을 만드는 걸 게을리한 것 아닙니까?

요즘 청소년들은 자기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합니다. 싫고 좋음을 주저 없이 말하고 표현합니다. 우리 음악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청소년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음악이 왜 좋습니까?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 슬픔과 기쁨, 분노와 좌절, 애틋한 사랑과 이별 등 사람들의 정서가 음악이라는 기호화된 또 다른 언어가 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핏줄을 타고 흐르는 정서적 동질성 때문 아닙니까?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 음악을 모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핏줄에 흐르는 우리 정서는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냐고요? 제가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대전 KBS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대전 KBS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 윤형권
지난 14일 오후 7시 30분 대전 연정국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교과서 국악여행'이라는 기획연주회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대전연정국악원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국악 중에서 선정하여 연주했습니다. 관객들은 대부분 초·중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꽤 됩니다.

수제천 연주 장면. 궁중무용반주나 임금의 행차에 사용되었던 음악.
수제천 연주 장면. 궁중무용반주나 임금의 행차에 사용되었던 음악. ⓒ 윤형권
맨 첫 곡으로 수제천의 장중한 선율과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의상에 압도되어 숨죽인 듯했습니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아이들이 점점 빠른 곡이 연주되자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들을 엮은 동요메들리가 연주될 때는 객석에 있던 아이들의 반응이 금방 나타났습니다. 함께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대전연정국악원 해금주자 김소희 양
대전연정국악원 해금주자 김소희 양 ⓒ 윤형권
이날 연주회 협연으로 해금 협주곡인 방아타령을 김소희(24·대전연정국악원)양이 해주었습니다. 방아타령은 경기지방의 대표적인 민요입니다. 해금의 청아하면서도 폭넓은 음색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관객들은 해금주자의 활이 움직이는 손에 따라 몸을 오그리기도 하고 활짝 펴기도 하면서 해금연주에 푹 빠지는 듯했습니다.

흥에 겨운 청소년들
흥에 겨운 청소년들 ⓒ 윤형권
이렇게 점점 달아오른 객석이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한 열기로 휩싸이게 만든 것은 연주회 마지막 순서인 사물놀이 '신모듬'이었습니다.

사물놀이 신모듬 연주가 첫째거리 '풍장', 둘째거리 '기원', 셋째거리 '놀이'라는 3악장으로 진행되면서 사물놀이 특유의 폭발적인 힘과 경쾌한 가락이 어우러져 거대한 파도가 객석을 이리 쓸고 저리 쓸고 다녔습니다. 청소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며 그야말로 '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사물놀이
사물놀이 ⓒ 윤형권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함께 온 어른들도 흥에 겨워 주체하지 못하는 몸짓으로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음악이 몸을 휘감는 느낌"이라는 사회자인 이지은씨의 말이 이날 '교과서 국악여행'의 분위기를 말해줍니다.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아직도 북과 꽹과리의 힘찬 리듬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우진희(대전 송촌중학교 1학년)양은 "학교에서 단소와 대금을 부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직접 듣고 보니 우리 음악이 정말 재미있고 신명나는 것을 느꼈어요"라며 뿌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날 우리 음악에 푹 빠진 외국인도 있습니다. 대전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찬텔 그랑데(26·캐나다)양은 "한국 음악의 힘과 아름다운 선율에 놀랐다"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교과서 국악여행'이라는 이날 공연을 기획한 김진호(55·대전 연정국악원) 관장은 "청소년들이 국악을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연주회를 통해 흠뻑 빠져들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악과 친숙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교과서 국악여행에서 연주한 곡은 수제천(전통음악), 숲(가야금독주), 시나위(민속합주), 돈타령(판소리 흥보가 중), 동요메들리(관현악), 방아타령(해금협주곡), 신모듬(사물놀이를 위한 관현악) 등이었습니다.

"36년간 우리 문화를 빼앗긴 탓입니까? 금수강산 이방인만 들끓는 세상입니다. 늦었지만 '나랏소리'를 찾게 돼서 다행입니다."

교과서 국악여행 초대의 글에 있는 말입니다.

양금 연주
양금 연주 ⓒ 윤형권
수제천
수제천 ⓒ 윤형권
홍보가
홍보가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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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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