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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쾀멘의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의 <신의 괴물> ⓒ 푸른숲
인간이 사자와 싸워온 역사의 시작은 몇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네스토스 강 유역의 사자들 때문에 골치를 썩였다고 하고, 이집트에서는 사자 사냥의 특권을 가진 파라오들이 많게는 백여 마리의 사자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에서는 시민들의 구경거리를 위해서 매년 수백 마리의 사자들이 희생 당했다.

한때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며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했던 사자가, 무기의 발달과 조직적인 사냥 기술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인간들에게 포획 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운명은 사자뿐 아니라 다른 육식동물들, 인간에게 해를 끼칠수 있는 거의 모든 육식동물들에게도 해당된다.

미국에서는 1999년 한 해 동안 늑대, 코요테, 시라소니 등의 육식동물들을 무려 10만 마리 가까이 죽였으며 그런 제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악어 가죽의 수요 증가로 인해서 인간들은 매년 수만 마리의 악어를 도살하고 있으며, 극동러시아의 아무르 호랑이는 이미 멸종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데비이드 쾀멘의 저서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사라져가는 야생 동물들, 그중에서도 인간을 공격했던 대형 육식동물들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다. 저자는 모리셔스 섬의 멸종된 새 도도를 다룬 저서 <도도의 노래>로 유명한 자연 생태 저술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때 인간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대형 육식동물들이, 어떻게 해서 이제는 거꾸로 인간들에게 보호를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어떻게 해서 인간들은 인간의 무대에서 대형 육식동물들을 제거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장 조사를 위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지들만을 찾아 나선다. 인도 카티아와르 반도의 기르 숲, 아프리카 케냐의 루돌프 호수,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 얼음으로 덮인 시베리아의 극동지역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저자는 이런 지역에서 아직도 전근대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야생육식동물들과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보호구역 속의 사자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인도 말다리족 사람들, 야생악어 때문에 가족과 친지를 잃으면서도 악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호주의 욜른구족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천혜의 갈색곰 서식지인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에서는,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차우셰스쿠가 어떻게 수백마리의 곰들을 '학살'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자는 흥미로운 하나의 가설을 내세운다. 즉 원주민들의 지역에 서양인들이 침략할 경우에, 침략자들은 그곳에 있는 대형육식동물들을 모조리 학살한다는 가정이다. 그것은 단순히 침략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낯선 동물들을 제거하는 차원이 아니다. 원주민들이 토템신앙이자 신화로 떠받드는 대형동물들을 죽임으로써 원주민들의 가치 체계 자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다. 즉 대형 육식동물들을 제거하는 것은 식민 경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육식동물들의 서식지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육식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대형 육식동물들이 인간들에게 끼치는 구체적인 피해는 대부분 그 주변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반면에 그런 야생동물들이 주는 정신적, 심미적 혜택은 멀리 떨어진 부유한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그렇다면 이런 불평등한 비용의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그 혜택은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

대형 육식동물들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동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만 실제로 그 동물들을 미워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 아무르 호랑이와 영토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 우데게족 사냥꾼의 일부는 "호랑이는 산신령과 같아서 함부로 죽일 수 없다"고 한다. 호주의 욜른구족 사람은 "우리가 악어를 존중한다면, 악어도 우리를 존중합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런 오지에서조차 대형 육식동물들을 보기가 힘들다. 돈벌이와 개발 및 다른 명목들로 산림은 없어져 가고 그 안에 살던 야생동물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저자는 무분별한 개발과 포획을 경고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2150년 경에는 대형 육식동물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멸종해 버린 공룡을 상상하는 것처럼, 그때가 되면 사자나 호랑이들도 인간의 기억 속에서 없어져 버릴지 모른다.

야생사자의 주변에 살고 있는 말다리족 사람은 말한다.

"한때는 사자들을 미워했지요. 사자들이 없으면 사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거든요. 밤이나 낮이나 사자에 대한 불안감 없이 가축들을 데리고 풀을 먹이러 다닐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땅에 주인이 있다면 그것은 사자일 거라는 생각이요. 만약 사자가 이곳에 머물 수 없다면 어디로 가서 살겠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침입자인 거죠. 만약 사자가 사라진다면 숲도 사라질 것이고 나머지 모든 것도 사라질 거예요."

신의 괴물 - 인간을 먹고 산 식인 동물에 대한 문화 생태학적 고찰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최재천 감수, 푸른숲(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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