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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사에 정밀하게 찍힌 어미활자 자국. 거푸집을 닫기 직전의 금속활자 원형틀로, 가운데 쇳물길을 따라 사각오목면에 쇳물이 들어가면서 금속활자가 만들어진다.
주물사에 정밀하게 찍힌 어미활자 자국. 거푸집을 닫기 직전의 금속활자 원형틀로, 가운데 쇳물길을 따라 사각오목면에 쇳물이 들어가면서 금속활자가 만들어진다. ⓒ 곽교신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지난 3월 22일에 제1회 직지상 예비후보 7건(개인 1, 단체 6)을 선정 발표한 후 심의에 들어가 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중국 리지안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국제자문회의'에서 수상자가 최종 결정되면, 9월 4일 '직지의 날'에 대한민국 청주에서 영예의 시상식이 열린다. 유네스코는 제1회 시상의 명예를 존중해 시상식을 직지의 고향인 대한민국 청주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상금(3만 달러)을 포함한 행사비용 일체를 청주시 예산으로 부담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2년마다 열리는 직지상 수상식을 전후해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대한민국 선조 고려인들이 만든 것임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 시너지효과는 투자 금액의 몇 배로 돌아올 것이다.

즐거운 직지, 공부하는 직지

가을 축제(직지의 날 및 시상식)는 제 1회 직지상을 시상하는 국제행사로서의 성격을 감안해서 "공부하는 직지"가 주제이지만, 이번 '직지사랑 어울마당'은 '즐거운 직지, 시민이 함께 즐기는 직지'로 꾸몄다는 청주시 행사관계자의 말이다.

닥나무 원료로 한지 뜨기 체험
닥나무 원료로 한지 뜨기 체험 ⓒ 곽교신
그러나 혼인잔치가 흥겹다고 그 자리가 혼사를 축하하고자 모인 자리임을 잊고 자기 흥에만 도취한다면 모임의 분위기는 깨지고 말 것이다.

'직지사랑'의 이름을 걸고 열어놓은 이번 행사에서 금속활자와 전통한지가 행사장 자리배치에서 구석으로 밀렸다.

또, 주 무대의 마이크 소음에 활자장의 시연 설명조차 듣기 어려웠음은, 혼인잔치 마당에서 신랑신부는 구석에 밀쳐두고 먹고 마시고 놀기에 정신이 팔린 것과 하등 다름이 없다. 노는 것은 신랑신부를 격려한 후의 부수적인 일이다.

현대 서양문명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금속활자 인쇄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는 영구 보존을 위해 빛까지 차단하고 암실에 보관 중이다.

그러나 그보다 78년 먼저 찍어낸 '직지'는 지금도 열람이 가능한 "온전한 책"이다. 직지가 책의 기능을 하며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것은, 천년을 버티는 한지에 찍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속활자와 한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인쇄문화의 형제이다.

가을 직지상 시상 행사에서는 제대로 된 행사장 공간 구성으로, 외형 편성만 둘러봐도 금속활자와 한지가 직지의 모체임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모든 직지관련 행사의 주체가 금속활자와 한지인 것은 논의가 필요 없는 일이다.

9월 4일 직지의 날을 기대하며

자신이 직접 떠서 말린 한지로 인쇄물을 찍어보는 이 순간, 직지는 그의 것이 된다.
자신이 직접 떠서 말린 한지로 인쇄물을 찍어보는 이 순간, 직지는 그의 것이 된다. ⓒ 곽교신
현대에도 잘 팔리지 않을 것 같거나 소용이 절실하지 않은 책은 찍어내지 않는다. 금속활자를 만들어 능률적으로 책을 찍어냈음은, 고려가 출판물을 대량으로 필요로 했던 당대 최고의 문명국이었음을 증명하는 생생한 증거이다.

현존하는 증거물은 직지가 유일하지만 직지보다 143년 먼저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인쇄한 것 등, 고려가 금속활자를 활발히 사용한 기록은 많다. 세계 최고의 고려인쇄출판 기술이 현대까지 이어 나오지 못한 과오를 학문적 연구로나마 보상해야하는 것은 후손으로서의 도리다.

봄 축제의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직지상 시상식을 겸한 9월 4일 직지의 날 행사 때에는 세계에 최초의 금속활자와 천년을 버티는 한지를 인상깊게 심어준다면, 청주시는 물론 문화국가로서의 대한민국 위상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행사 추진위원장인 연영석 청주시 부시장은 기자에게 "직지 연구의 모체인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대한민국인쇄박물관'으로 개편하려는 학술조사용역에 이미 착수했다"는 시 계획을 전했다.

이에 대해 정종진(청주대 국문과) 교수는 박물관의 확대개편이나 국립화 등의 하드웨어도 중요한 명제이지만, 문화유산 직지의 소프트웨어적 투자가 체육행사로 대표되는 놀이성 축제보다 비중이 있어야한다는 의견을 내었다.

세계문화유산 직지를 이어나갈 다음 세대의 심각한 붓놀림. 이 어린이들이 9월 직지상 행사장을 둘러보며 머리 속에 바른 획을 긋고 가도록 해야한다.
세계문화유산 직지를 이어나갈 다음 세대의 심각한 붓놀림. 이 어린이들이 9월 직지상 행사장을 둘러보며 머리 속에 바른 획을 긋고 가도록 해야한다. ⓒ 곽교신
중앙정부가 나서서 핵심문화사업으로 다뤄야 마땅할 "인류의 문화유산 직지의 세계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자치단체 예산으로 수행하고 있는 청주시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어린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세계 문화계가 관심있게 지켜볼 "화려한 직지의 날 9월 4일"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현재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한 심의에 들어가 있는 제1회 직지상 예비후보는, 

호주 국립도서관/ 체코 국립도서관/ 콜롬비아 발레 델카우카 주정부/ 인도 국립필사본 기록연구소/ 니카라과 센트로아메리카나 대학/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그리고 개인으로는 유일하게 이집트의 하싼 살레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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