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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2라디오에서 <강원래 노현희의 뮤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강원래씨.
KBS 제2라디오에서 <강원래 노현희의 뮤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강원래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나는 잘려도 행복하다. 예전엔 몰랐는데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잘린 것이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방송인 강원래(36)씨. 그는 오는 5월 프로그램 개편 때 1년6개월 동안 진행해 왔던 KBS 제2 라디오 <강원래·노현희의 뮤직토크>에서 도중하차한다. KBS 제2 라디오의 성격이 성인 위주로 바뀌면서 진행자가 전영록씨로 바뀌게 됐다.

지난 2000년 1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온 뒤 그에게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해준 프로그램을 그만두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의외의 반응이다.

"사실 클론 시절까지만 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누구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DJ는 달랐다. 피디, 작가, 옆에 있는 노현희씨 등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진짜 사회생활을 배웠다. 33년 헛살았는데 이제 성인이 되는 것 같았다. 이번 개편 때 진행자가 바뀌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이게 사회구나' 싶었다. 또 하나의 공부였다."

이렇게 그가 세상에 나온 지 1년 반이 훌쩍 지나갔다. <오마이뉴스>는 18일 강씨의 라디오 녹음실을 찾아 '휠체어를 타면서 배운 세상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잘려도 행복... 실력을 더 키워야 할 뿐"

강씨는 라디오 DJ 이외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강릉 '클론 댄스 스쿨'의 대표이자 안무가로,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인 KBS TV <사랑의 가족> 진행자로 또 교통법규 위반 사범을 전담해 교육하는 명예보호관찰관 등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장애인들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사랑의 가족>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강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이 프로의 진행자로 나섰다.

"부담이 컸다. 나의 불편함만 알았지 장애인 문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몰랐기 때문에 더 물어보고 궁금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뛰어들었다. 내가 못해서 그만두게 되면 이 방송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싶다."(미소)

그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장애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특히 "5년 동안 엄마 말고 한 번도 외부 사람을 보지 못했던 친구의 이야기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나도 사고 뒤 처음 1년은 그야말로 은둔생활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많은 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두려운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울퉁불퉁한 도로, 계단뿐인 건물… 친장애인 환경이 드물다고 강씨는 주장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강원래씨에게 장애물이 있다면 방송국 사이사이에 있는 문턱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강원래씨에게 장애물이 있다면 방송국 사이사이에 있는 문턱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KBS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최근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서 봉을 잡고 변기에 앉을 수는 있는데 정작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다. 세수하기도 힘들다. 만약 내게 한마디만 물어봤어도 이런 시행착오를 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내 입장에선 미안해서 바꿔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강씨는 방송국에 와서 하루종일 있는 날에도 꼭 화장실에 갈 일이 생기면 본관 4층으로 간다고 한다. 그 곳에는 제대로 만들어진 장애인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에 만든 '클론 댄스스쿨' 건물은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등이 마련된 모범적인 곳이다. 그러나 건물까지 가는 도로는 혼자 휠체어를 밀기 힘들 정도로 고르지 않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못하다. 그는 "예전에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갔는데 옷가게 주인이 '몸도 불편한데 왜 나왔어요. 김송씨 시키면 되지'라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며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정도"라고 지적했다.

"KBS조차 장애인 편의시설 취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강씨의 활동과 솔직한 언변에 박수를 보내준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얘기하지 않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현재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 농성 중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에게는 강씨와 같은 유명인의 동참이 중요할 수도 있다. 강씨는 이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분들의 말씀에 공감한다. 그러나 지금 나서지 못한다. 나 또한 다치기 전에는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으로서도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 서툴다."

잠시 동안의 망설임 끝에 그는 말을 이었다.

"(장애인분들께) 미안하다. 나는 지하철을 170원일 때 이후 타본 적이 없다. 부르주아였다. 그런데 내가 버스 타기 운동이나 지하철 선로에 나가 쇠사슬을 묶는다면 얼굴마담은 되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까."

그의 꿈은 브랜드로서의 '클론'을 만드는 것. 댄스스쿨이 그 시발점이다. 올해 안에 클론 새 앨범 출시하는 것이 두 번째. "소니, 삼성과 같은 신뢰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강씨다. 물론 그는 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해 자그마한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명예관찰관이나 무료 강연 등도 시간 나는대로 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활동과 사회환원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투쟁방식'이다.

"지하철 170원일 때 타봤다... 최선 다하는 게 돕는 것"

이날 대화는 방송국과, 그가 안무를 맡은 가수 박미경씨의 안무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가며 4시간 이상 진행됐다.

여의도에서 연습실로 그의 차를 타고 향하던 중 자동세차장에 들렀다. 직원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발 대신 손을 움직였다. 하반신 마비인 그는 손으로 모든 작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처음엔 저런 말 들으면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러려니 한다. 아! 20일 장애인의 날에 모 방송국에 지난해 장애인의 날 이후 1년만에 출연한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강원래입니다. 지난해 장애인의 날 이후 꼭 1년만에 출연하네요. 전 장애인의 날 반짝 스타입니다.' 물론 장애인의 날이라도 장애인들에게 관심 가져주는 것도 고맙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강원래씨는 늘 디카를 가지고 다닌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스튜디오에 초대한 게스트 사진을 찍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인터뷰하던 본지 기자들이 강씨의 앵글에 '딱 걸렸다'.
강원래씨는 늘 디카를 가지고 다닌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스튜디오에 초대한 게스트 사진을 찍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인터뷰하던 본지 기자들이 강씨의 앵글에 '딱 걸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송 "한바퀴도 못 굴리고 넘어졌다"

▲ 강원래씨와 김송씨 부부
ⓒ김송홈페이지
강원래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방송국에 이어 찾아간 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가수 박미경씨의 안무 연습실. 이곳에서는 강씨가 안무를 맡은 박씨의 신곡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강씨의 부인 김송(32)씨를 만날 수 있었다.

강원래씨는 사고를 당한 뒤 김씨가 없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김씨는 이에 대해 "당연한 일을 했다"고 수줍어했다. 김씨에게 가족으로서 느끼는 장애인 현실을 물어봤다.

"미국에 갔을 땐 하루에 휠체어 탄 사람을 7, 8명은 봤다.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다. 카페나 백화점에는 장애인화장실이 더 컸다. 예전에 오빠가 해보라고 해서 휠체어를 타봤다. 한바퀴도 채 못 굴려 넘어졌다. 오빠도 처음 집앞을 나섰을 때 비슷하게 넘어져 놀랐던 적도 있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사실 나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안쓰럽다"며 "얼마전 장애인의 날 행사 때문에 대학로에 갔는데 정말 많은 장애인들이 왔었다. 그들이 거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겠나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김씨는 이어 독자들에게 부탁했다.

"예전에 63빌딩 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는데 문이 열리니까 오빠가 앞에 있는데도 사람들이 우르르 먼저 탔다. 이런 일이 2,3번 계속되자 내가 막 화를 냈다. '오빠 왜 안타'냐고. 장애인인 친구도 비슷한 일을 당했는데 오히려 외국인이 나서서 너무 한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조금의 배려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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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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