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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4월 2일 칠순잔치를 하신 우리 시아버님은 영등포에서 대서소를 하고 계십니다. 전직 경찰이셨기에 그때의 여러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고소장이나 진정서 또는 이혼서류 등 여러 가지 서류들을 대신 작성해 주시는 일을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하고 계십니다.

한때는 대서소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드나들었지만 요즘엔 옛날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요즘은 법무사 사무실들이 그런 일련의 일들을 하고 있고 또 워낙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보니 그 양식을 찾아 직접 서류들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그 이유인 듯합니다.

지금 저희 아버님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십 수 년 동안 아버님을 찾아오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저희 아버님은 이곳 김포에서 서울 영등포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시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출퇴근을 하십니다. 한 달 중 손님이 한 분도 안 오시는 날이 더 많아도 행여 누군가 아버님의 급한 도움을 바라고 찾아왔다 헛걸음을 할까봐서 부득이한 일이 없는 한 일요일도 거의 사무실을 나가시는 편입니다.

아버님의 그런 투철한 사명의식 때문인지 요즘 아버님의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10년 20년 된 단골손님들이 거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 세상에 개나리며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대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조차도 달콤할 때쯤이면 아버님께 그 십수 년 된 단골보다 더 아버님을 유혹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설게라는 녀석입니다.

토요일 저녁 아버님은 짐을 챙기기에 늘 바쁘십니다. 커다란 배낭에 물옷, 장화 그리고 목이 늘어나거나 구멍이 나서 못 신는 양말 또 긴 쇠막대기처럼 생긴 설게 잡는 뽕까지 그 잡다한 준비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십니다.

아버님은 온 세상이 캄캄함을 핑계 삼아 달콤한 휴식에 깊은 침묵을 하고 있는 일요일 새벽에 어머님께서 준비해주신 주먹밥을 마지막 짐으로 챙기시고 영종도를 향해 홀연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십니다.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시고 또 배까지 타시고 도착한 영종도에서 아버님이 하시는 일은 설게를 잡는 일입니다. 설게는 갯가재의 한 종류로 어릴 적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바위를 들추어내면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던 그 가재와 아주 흡사하게 생겼더군요.

▲ 갯가재의 일종인 설게
ⓒ 김정혜
설게를 잡을 때는 뽕이란 도구를 사용하는데 뽕은 긴 막대기로 끝이 조금 둥글면서도 뾰족하게 생겼습니다. 옛날에는 소나무로 많이 만들어 썼는데 요즘엔 아예 쇠막대기로 만들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뽕으로 설게의 숨구멍인 갯구멍에 뽕 대를 넣었다 빼면 바로 그 압력 때문에 설게가 튀어 나오는데 뽕 대를 넣었다 뺄 때 '뻥'하고 소리가 나서 사람들은 그 순간에 "뻥이요"하고 외친다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은 항상 그 갯구멍을 잘 찾지 못하시고, 또 찾더라도 한 번에 넣었다 빼는 게 서툴러서 늘 설게가 죽은 채로 잡히기에 시어머님은 아버님께 잡히는 설게는 항상 능지처참을 당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 아버님도 설게를 산 채로 잡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버님께선 늘 그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다니신답니다. 살아 있는 설게를 그곳에다 고스란히 담아서 가지고 오시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시고 또 집에 오셔선 그 살아 있는 설게를 저희들에게 보여주시면서 그 녀석을 잡기까지의 무용담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버님의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일요일 저녁 우리 집 밥상은 설게로 가득하답니다. 설게는 보통 얼큰한 설게탕이나 담백한 설게찜이나 짭짤한 설게장을 주로 만들어서 먹는데 우리 집에선 무우와 청양 고추와 온갖 야채를 넣고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인 설게탕과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고소하고 바삭한 설게 튀김을 주로 만들어서 먹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들을 먹는 사람은 우리 아버님과 저와 우리 딸아이뿐이고 시어머님과 남편은 그저 매운탕 국물만 몇 숟갈 뜹니다. 왜냐하면 설게가 발이 많이 달리고 색깔이 거무죽죽해서 보기에 좀 징그럽기 때문입니다.

▲ 색이 검고 발이 많이 달린 설게
ⓒ 김정혜
제가 남편과 결혼하고 맞은 첫 봄에 아버님께서 잡아오신 설게를 처음 보았습니다. 색깔이 좀 거무죽죽하여 약간 징그럽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적 아주 두메산골에서 자라 계곡에서 가재잡고 놀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설게란 것이 그렇게 징그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님께서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인 설게탕과 고소한 설게 튀김으로 저녁상을 차리셨습니다. 아버님은 그 저녁상을 앞에 놓고 그날 하루 설기 잡았던 무용담을 신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애미야! 설게가 구멍으로 튀어 나올 땐 정말 신바람이 나더구나. 그럴 때 한바탕 봄 바다에 대고 크게 '뻥이요'하고 소리치면 가슴은 또 얼마나 시원해지는데" 하시며 안 해 본 사람은 도저히 그 쾌감을 알 수 없다며 자랑이 대단하십니다.

또 생전 처음 그 설게를 마주한 제게 설게탕이 얼마나 시원하며 설게튀김이 얼마나 고소한지를 설명하시느라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과 남편은 아버님의 그 열변에 그저 묵묵부답 그 어떤 반응도 없을 뿐더러 설게탕과 설게튀김에는 숟가락 한 번 젓가락 한 번 대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아버님이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던지. 저는 아버님의 그 외로운 열변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해서 설게탕을 한 번 떠먹고 설게튀김을 하나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설게탕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뭔가 싸르르 하는 그 얼큰함과 시원함에 두 번 세 번 숟가락질을 하게 되고, 설게튀김 역시 바삭거리는 고소함이 오징어 튀김이나 야채 튀김은 저리 가라더군요.

그날 이후 저는 아버님의 설게 찬양론에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아버님의 지지자를 한 사람 더 만들었습니다. 바로 올해 일곱 살 된 제 딸아이입니다. 무엇이든 아무 거나 잘 먹는 제 딸아이도 다른 어떤 튀김보다도 설게 튀김을 좋아한답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자태를 뽐내는 봄이 오면 또 그 봄이 일요일 저녁을 만나면 우리 집 저녁풍경은 진정 행복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펄펄 뛰는 바다 내음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아버님의 바다 나들이. 설게가 갯구멍에서 펄쩍하고 튀어 오를 때의 그 환희와 "뻥이요"하고 외칠 때의 그 통쾌함. 그 일련의 것들을 눈으로 보는 듯하게 구구절절 침을 튀기시며 들려주시는 아버님.

그런 무용담을 두 귀 쫑긋 세우고 듣다가 제 때에 튀어나오는 제 맞장구. 얼큰하고 시원한 설게 매운탕과 고소한 설게 튀김에서 피어오르는 아버님의 그 열정.

그건 감사함인 것 같습니다. 칠순의 연세에도 일요일이면 바다를 찾으시는 아버님의 건강과 그 열정이 못내 감사하기에 설게 매운탕도 설게튀김도,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듯이 그렇게 맛있나 봅니다.

올해도 이렇게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버님은 어김없이 일요일을 바다에서 보내실 것입니다. 더불어 저는 이 봄에 몸과 마음이 더욱 더 살찔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그 열정에 대한 감사함으로 마음의 살이 찔 것이고, 설게로 인하여 몸이 살찔 것 같습니다.

올 봄엔 저도 아버님을 따라 자주 바다에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님과 좋은 시간을 많이 만들려 합니다. 그런 좋은 시간이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그렇게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리고 이 맏며느리가 아버님을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한답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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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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