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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형광등 두 개 중에 하나는 불이 들어오는데 하나는 불이 들어오지 않고 깜박이기만 했다. 전구를 바꿔야겠다 싶어서 새 전구를 찾아온 다음 밟고 올라갈 의자를 가지러 가려고 형광등을 실내 자전거에 비스듬히 걸쳐두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 형광등이 또르르 구르면서 ‘퍽’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사다 둔 형광등이 하나 뿐이라 깜박이는 형광등은 바꾸지도 못하고 새 형광등만 하나 깨고 만 것이다. 깨진 형광등을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넣고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청소기와 물걸레로 치우고 나니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새 형광등으로 바꿔 끼우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급한 대로 깜빡이는 형광등을 빼버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럴 때 내 옆에 키 큰 사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흔의 나이에 난 아직 미혼이다. 친구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좀 일찍 결혼한 친구는 중학생인 아이들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이 엄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 온 초등학교 동창도 있었으니 그 친구는 아마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인데 나보다 열 살 많은 큰 언니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친정에 왔을 때 언니와 나란히 누워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너는 언제 시집갈래?"
"난 시집 안 가."
"그럼 시집 안 가고 누구하고 살래?"
"엄마하고 살지."
"그러다 엄마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어쩔 건데?"
"그럼 나도 엄마 따라 죽을 거야."

언니가 결혼을 했을 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어린 마음에 부끄러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결혼하지 않고 엄마하고 사는 게 잘하는 게 아니라, 시집 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게 효도하는 거라는 언니 말을 듣고 괜히 눈물이 나서 한참을 훌쩍거린 기억이 난다.

미혼인 내게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들을 모아보면,

"눈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세상에 별 사람 없다. 적당히 맞춰서 결혼해라."
"세상 남자들 다 눈이 삐었다. 왜 이런 사람을 아직도 그냥 두는지 모르겠다."
"애들은 언제 낳아서 기를 것이냐."
"나이 들면 등 긁어줄 남편 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얼른 가라."
"나중에 늙으면 자식들 밖에 없다. 자식도 하나 없이 어쩌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사춘기 때나 지금이나 난 이상하게도 이상형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외모는 어때야 하고, 경제력이나 가족 관계 하다못해 나이는 나와 몇 살쯤 차이 나면 좋겠다는 등 많은 여자들이 혼자만의 생각으로나마 가지고 있는 그런 이상형을 마음 속에 그려본 기억이 없다.

결혼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감나무에서 감이 뚝 떨어지듯 저절로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보러 쫓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짚신짝을 찾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직장이 있어 부족하나마 먹고 사는데 문제없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서 그런지 지금 이대로 살아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다.

이런 나도 한때는 시집을 가고 싶어 안달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이 한참 결혼할 무렵 나도 남들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고, 아들 딸 낳아 살면서 퇴근하는 남편에게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주면서 알콩달콩 살고 싶어 마음이 급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그 색깔이 옅어졌고 급기야 '결혼 적령기가 어디 있어, 내가 가면 그때가 적령기지' 하면서 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을 안 했느냐, 못했느냐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마땅히 결혼할 만한 사람이 없었고, 손가락 발가락 숫자만 맞으면 아무하고나 결혼을 해 버리겠다고 작정하고 덤빌 만큼 결혼이 조급한 일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아 너무 많이 외롭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어느 날 조금 외로워지면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지…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도 잘 놀고, 일 잘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는 편이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게 가장 아쉬울 때는 아이들을 볼 때다. 남편은 없어도 괜찮지만 예쁜 아기는 하나 낳아서 길러보고 싶다는 여자들이 많은 것처럼, 나 역시 내 아이를 한 번도 길러보지 못한 채 이대로 늙어가겠구나 싶을 때 아주 많이 쓸쓸해진다.

노후에 나를 부양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보험 들듯 아이를 하나 낳아서 길러볼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고 싶다는 모성 본능은 외로움이나 쓸쓸함과는 그 크기가 다르다. 하지만 내 욕심을 위해서 어설프게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앞으로 꼭 결혼을 하겠다 아니면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결혼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조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으면서 그저 흐르는 세월 속에 나를 맡겨둘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결혼 에피소드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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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하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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