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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전문가나 다름없는 목수 아버지들. 토요일, 일요일을 꼬박 책장 만들기에 보냈습니다.
ⓒ 공순덕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에 있는 정배분교입니다. 학생 수도 적고, 또 분교이다 보니 예산 지원이 적어 반듯한 도서실 하나 없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어렵게 본교인 서종초등학교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책장도 구입하고 책도 구입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하려니 욕심만큼 만만치가 않습니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분교장님은 도서실 만드는 이야기를 학부모에게 의논했고, 학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십시일반으로 어려움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처음에 전문 업체에 도서실 책장 제작을 맡길 생각으로 견적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책장의 크기나 양도 적은데, 들어가는 비용은 지원 예산을 다 쓰고도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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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 가운데 아버지들이 주축이 되어 '책장을 직접 짜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책장을 짜는 공사비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일 텐데 인건비만 아껴도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도와준다면 고마울 뿐이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정배분교 학부모들도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도서실을 부모가 직접 만들어 준다면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며, 아이들에게 더욱 값지고 소중한 학습 공간이 될 것이라 믿고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아빠들, 도서실 책장 만들기 도전

도서실로 쓰일 교실의 크기와 높이를 재고, 책장이 들어갈 크기를 자로 정확하게 잰 다음 설계 도면을 그렸습니다. 도서실은 양쪽 벽면에 가로 70cm, 높이 230cm짜리 책장이 각각 8개씩 16개, 창문 아래로 가로 70cm, 높이 130cm짜리 책장이 5개 놓이고, 각 교실에 2개씩 같은 크기의 책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도서실에 들여놓은 재단된 집성목. 큰 책장 16개와 작은 책장 12개를 만들고도 비용을 좀 더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공순덕
먼저 인터넷으로 책장에 쓰일 나무의 재질과 규격, 소요량과 비용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양평 읍내에 있는 목재상을 찾아 실제 구입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알아 본 내용과 양평의 목재상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자작나무 집성목으로 3자*7자짜리의 나무판이었는데, 양평 읍내 목재상에서는 4자*8자짜리 미송 집성목이었습니다. 가격은 같았지만 나무의 크기가 미송 집성목이 더 컸으므로 같은 양의 책장을 짤 경우 나무의 양은 적게 들어갔습니다.

집성판의 크기가 달라지는 바람에 책장 설계 도면을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그 결과 큰 책장 16개와 작은 책장 12개를 만들고도 비용을 좀더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면을 바탕으로 목재상에서 집성목을 재단해 달라고 부탁했고, 책장을 짜는 공사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아버지들이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고즈넉한 분교에 드릴과 망치 소리가

토요일 아침, 트럭에 실려 온 재단된 집성목을 도서실에 쌓았습니다. 각종 연장과 도구들은 각자 집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어지간한 연장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어서 드릴, 대패, 망치, 수평기 등 필요한 연장들이 넉넉하게 모였습니다. 처음 시험 삼아 작은 책장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작은 책장 하나를 만들고 나니 오전이 지나가 있었습니다.

나무에 나사못을 박기 위해 드릴로 작은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깊이와 힘 조절이 안 되어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책장의 뒷면 합판을 대는 곳에는 나사못보다는 일반 못을 박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못을 다시 사와야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오전 작업을 마친 다음, 어머니들이 해 준 밥과 국, 삼겹살 구이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니 오후부터는 좀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자리를 잡은 책장. 정배분교에도 드디어 도서실이 탄생했습니다. 아버지들의 힘으로 만든 작은 도서실이었고, 우리 모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뿌듯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 공순덕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오전 체험 학습으로 연극놀이를 마친 아이들까지 모두 돌아간 학교는 고즈넉했습니다. 빗소리와 더불어 드릴 돌아가는 소리와 망치 소리, 그리고 비안개가 소리 없이 내리는 시골 학교에 조용한 어둠이 내려 안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늦게까지 책장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그만 나사못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핑계 김에 쉬어 간다고, 작업을 중단하고 어머니들이 만들어준 김치찌개 반찬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책장 16개, 작은 책장 12개 탄생

일요일 아침부터 다시 모인 아버지들의 프로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점심 무렵에는 책장을 전부 만들 수 있었고 만들어 놓은 책장을 세워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계획은 벽의 삼면에 책장을 놓는 것이었는데, 책장을 도서관처럼 마주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모두들 찬성하여 한쪽 벽면에다 책장을 마주보게 4개씩 맞추었습니다. 안전하게 고정하기 위해 책장 위쪽에서 책장 4개를 하나로 고정하고 벽면에도 나사못을 박아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책장은 모두 자리를 잡았고, 정배분교에도 드디어 도서실이 탄생했습니다. 아버지들의 힘으로 만든 작은 도서실이었고, 우리 모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뿌듯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날 저녁, 책장 짜는 데 동참한 가족들이 2학년 성준이네 집에 모여 닭볶음탕과 닭칼국수로 멋진 만찬 파티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학교여서 좋은 점이라면 이렇게 공동체 속에서 모두 가족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 힘을 합해 작은 일을 이루고, 학교와 마을을 위해 내 일처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배마을, 정배학교.

학부모로, 또 이곳 지역의 일원으로 함께 하게 된 것이 즐겁습니다. 이제, 이 책장에 꽂혀 어린이들에게 읽힐 책만 있으면 됩니다. 지금은 텅 빈 책장이지만 조금씩 책장이 채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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