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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밤 강배 표지
ⓒ 민음사
일본의 3대 여류 작가 중의 하나인 요시모토 바나나. 언제나 몽환적인 색체를 내뿜으며 상처와 외로움을 치유를 통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그려온 그가 <하얀 강 밤배>라는 작품을 들고 나왔다.

이 작품 역시 그녀는 어둠 속을 헤매는 은밀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꺼내며 그 바탕에는 외로움과 무기력함에 쓰러져 가는 젊은 영혼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 사랑이 외로움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내내 알고 있었다. 빛처럼 고독한 이 어둠 속에서 둘이 말없이, 저릿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밤의 끝이다.(16쪽)

삶의 지친 영혼, 창문으로 어둠이 들어와 숨이 막히는 악몽을 꾼 것 같은 젊은 시절, 이번 소설은 밤을 소재로 젊은 여성 셋의 이야기를 담아낸 단편집이다. 또한 이번 소설은 역시 그동안 다루어 온 인간들의 군상이 모두 표현되고 이어 이전 작품들을 몽환적인 모습을 최대한 살리며 그녀의 모든 작품이 총집결된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표제작 ‘하얀 강 밤배’에서 식물인간이 된 부인을 둔 남자와 연인관계인 테라코는 시도 때도 없는 잠에 빠진다. 그에게 밤은 자살한 친구에 대한 아픈 기억과 상처 입은 현실을 덮어주고 위안을 준다. 테라코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한때 같이 생활했던 친구 시오리의 꿈을 꾼다. 시오리는 상처를 입고 지친 사람들 옆에서 잠을 자 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자신이 지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 풍경은 외롭고 괴롭고 황량하다. 시오리는 그들이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희미한 불빛 속에서 생긋 웃어주는 일을 했다. 누구에게나 옆에서 같이 잠을 자 주는 사람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주인공의 애인인 남자가 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는 끝없는 잠을 자고 있다. 그 남자도 밤을 같이 세울, 위안의 동반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인공과 그 남자의 어설픈 사랑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합일에 이르지 못하고 밖으로 겉돌 수밖에 없다. 서로 간절히 상대방의 가슴속에 다다르기를 바라지만, “기다림에 지쳐버렸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이들에게 잠은 부조리하고 절망스런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잠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교묘하게 엮고 있다.

또 다른 작품에서도 파경에 이른 사랑과 당연하게 따라오는 비극까지도 담백하게 그려낸 ‘밤과 밤의 나그네’, 농도 낮은 레즈비언적인 관계, 죽음, 주술 등을 마치 여고생의 어느 날처럼 깨끗하게 그려낸 ‘어떤 체험’ 모두 그렇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을 남자든 여자든 간에 반감을 갖지 않고 마치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듯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또한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가장 감수성 짙은 문장을 쓴다고 정평이 난 작가의 명성은 <하얀 강 밤배>에서도 절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문체를 쓰고 있는 그녀는 아직도 사춘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 번쯤 의심하게 될 것이다.

불현듯 귀에 들리는 음악과, 밤에 창가를 찾아오는 친구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흔적, 밤풍경을 부각시키는 도시의 어둠에 묻혀, 정원수를 바라보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 모든 것에 눈뜨려 하지 않는 자신을 아는 것. 그런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지만, 다만 이 소설집에서는 그런 때 몽롱한 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강함과 약함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구원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집을 읽고 편지를 보내주신 무수한 잠자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깨어나리란 것을 믿고, 지금은 푹 주무세요.”

-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감수성 짙은 문장, 또한 약한 것 같지만 그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서사적 구조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하얀 강 밤배>. 왜 작가가 사랑받는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작가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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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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