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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처남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돼지를 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돼지우리로 갔습니다. 시커먼 게 제법 무섭게 생겼습니다. 크기도 만만찮았습니다. 100㎏ 가까이 되어 보였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똥돼지'라고요.

제 처가는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 있습니다. 바로 지리산 기슭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똥돼지'를 키웠습니다. '똥돼지'를 키우는 화장실은 좀 특이했습니다. 구조부터가 2층으로 되어있습니다. 용변은 2층에서 봅니다. 돼지는 1층에 있었는데, 용변을 잘도 받아먹었습니다. 그렇게 큰 돼지라서 그런지 맛이 아주 좋았답니다.

물론 지금은 '똥돼지'가 없습니다. 그런 화장실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맥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닙니다. '똥돼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에 비길만한 돼지가 있습니다. 바로 '흙돼지'입니다. 일반 돼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습니다. 특히 셋째 처남이 키운 '흙돼지'는 그 중에서도 제일 맛이 좋습니다.

셋째 처남은 '흙돼지'에게 일체 사료를 먹이지 않았습니다. 순전 등겨만 먹였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족 회식용으로 돼지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처남 말에 의하면 돼지는 100㎏이 넘으면 맛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처남이 돼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만한 때가 제일 맛이 좋습니다."

▲ '흙돼지'입니다
ⓒ 박희우
돼지는 연신 꿀꿀거렸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흔들어대기도 했습니다. 그때 불도저가 도착했습니다. 젊은이가 불도저에서 내렸습니다. 손에는 하얀 밧줄이 있습니다. 젊은이가 성큼성큼 돼지우리로 들어갔습니다.

젊은이는 돼지가 무섭지도 않은가 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밧줄을 돼지 오른발에 묶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밧줄을 잡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돼지가 특유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앞다리에 안간힘을 썼습니다.

돼지의 저항이 의외로 강했습니다. 마침내 막내 처남까지 가세했습니다. 가까스로 불도저의 흙 푸는 삽에 돼지밧줄을 묶었습니다. 젊은이가 불도저에 오르더니 엔진을 당겼습니다. 흙 푸는 삽이 위로 쑥 올라갔습니다. 돼지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젊은이는 돼지를 처남 트럭에 내려놓았습니다. '흙돼지'는 그렇게 도살장으로 끌려갔습니다.

1시간 남짓 지나자 처남이 돌아왔습니다. 돼지고기를 식구 수대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장모님은 내장을 씻었습니다. 솥에다 내장을 넣더니 삶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처남 댁은 파를 다듬고 양파를 깠습니다. 된장도 준비했습니다.

▲ 돼지내장이 먹음직스럽습니다
ⓒ 박희우
점심은 풍성했습니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았습니다. 돼지내장이 여간 먹음직스런 게 아닙니다. 장모님이 소주를 내오셨습니다. 소주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한잔 두잔. 어느새 취기가 오릅니다. 저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옆방으로 갔습니다. 방바닥이 절절 끓고 있습니다. 이 방만은 온돌입니다. 장모님께서 아궁이에 장작을 많이 집어넣었나 봅니다.

슬금슬금 눈이 감깁니다. 저는 방바닥에 누웠습니다. 도란도란 옆방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미숙아, 고생 많제. 어무이(어머니)가 돼가꼬 느그한테 도움도 몬 준다."
"그런 말 마이소. 우리는 잘 살고 있십니더. 어무이만 건강하모 아무 걱정 없십니더."

장모님과 아내의 얘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얘기 모두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모녀간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 바로 그것 때문에 저는 지레 잠을 청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꿈속에서도 이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장모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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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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