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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 기운에 어색해뵈는 계곡의 얼음
완연한 봄 기운에 어색해뵈는 계곡의 얼음 ⓒ 성락
이제 강원도 산골도 완연한 봄입니다. 계곡 깊은 곳에 버티고 있는 얼음들도 찬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힘없이 곧 녹아 내릴 듯 보입니다. 텃밭에 모습을 드러낸 파릇파릇한 새싹들과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연못을 보며 궁금해 하던 것이 있습니다. 두터운 얼음장 밑에서 붕어들이 살아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집 앞 연못에는 붕어 다섯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동생이 강에서 잡아다 넣었다는데, 제법 어른 손바닥만하게 보입니다.

붕어가 사는 연못
붕어가 사는 연못 ⓒ 성락
지난 겨울 좀 추웠습니까? 원체 두껍게 언 얼음 속에 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붕어 다섯 마리의 안부도 장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때늦은 봄 눈은 또 얼마나 제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나요? '빨리 얼음이 녹아야 할텐데….' 지난주 농장을 떠나면서 연못 가운데로 움푹 내려앉은 얼음장을 보면서 가졌던 생각입니다.

아침 일찍 사슴축사로 향하면서 연못을 보았습니다. 얼음은 완전히 녹았습니다. 연못의 물도 어울리게 가득 차 올랐습니다. 과연 붕어들은 살아 있을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아침상을 물리고 연못으로 다가갑니다. 살며시 구석구석 그늘진 풀 사이를 살펴봅니다. 이내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릅니다. 붕어들은 무사했습니다. 힘찬 꼬리질로 흙탕물을 일으키며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줍니다. 다섯 마리 모두 확인했습니다. 숨통이 막히고도 남을 얼음장 밑에서 한 겨울을 잘 버틴 붕어들의 생명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붕어들은 아직 얼음장 밖 세상이 낯선 모양입니다. 연못가 돌멩이 틈과 풀뿌리 사이로 몸을 숨기기 바쁩니다. 놈들의 몸놀림에 금세 연못은 뿌연 흙탕물로 변했습니다. 그 바람에 장한 놈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제 욕심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연못을 떠나려다 낯선 뭔가를 발견합니다. 아니 낯선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입니다. 동글동글한 투명체들이 덩어리져 연못 속에 있습니다. 투명체 속에는 까만 눈 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개구리 알입니다. 날 풀리기를 기다렸던 개구리가 서둘러 연못 속에 알을 낳은 것입니다.

산란중인 암캐구리
산란중인 암캐구리 ⓒ 성락
낳은 지 오래 된 알은 투명체가 뿌옇게 흐려진 채 부풀어오른 모습입니다. 얼마 전 낳은 알은 투명체가 맑고 흰 점이 또렷합니다. 정말 많이도 낳았습니다. 머지 않아 이 연못은 붕어가 올챙이를 잡아먹고, 살아남은 올챙이들은 개구리가 되어 연못의 주인 행세를 하는 신비한 '생태계 쇼'가 펼쳐질 것입니다.

한참을 연못가에 머무릅니다. 개구리 알들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행운이 찾아 왔습니다. 개구리 알 사이로 막 산란을 진행하고 있는 암컷 개구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체격이 큰 암컷 개구리의 등에 수컷 개구리가 업혀 있습니다. 마치 한 몸인 듯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자 알이 쏟아집니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자 알이 쏟아집니다 ⓒ 성락
암컷 개구리가 미동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엉덩이를 좌우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검은 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금세 수북히 쌓입니다. 이제 수컷 개구리가 그 위에 정자를 뿌려 댈 것입니다. 그 모습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바꾸었습니다. 수면에 빛이 반사되어 또렷이 잡히지는 않지만 암컷 개구리의 산란을 담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보아 온 개구리 알이지만 산란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한 일은 없습니다.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구리 산란 장면을 동영상 기사로 올려보는 거야. 특종감은 안 되겠지만 생명의 탄생 모습을 봄소식과 알릴 수 있다니….'

사용설명서를 뒤져가며 동영상을 편집합니다. 물 속의 장면이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암컷 개구리가 엉덩이를 흔들며 알을 쏟아내는 모습은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사진들도 잘 찍힌 것만 골라냅니다.

그런데, 아뿔싸. 서툰 솜씨 탓에 촬영된 동영상이 그만 삭제돼 버린 것입니다. 다른 사진들을 정리하다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연못으로 뛰어갑니다. 이왕지사 더 세련되고 선명한 촬영을 해 보겠다는 욕심이 앞섭니다. 연못의 전체 모습부터 천천히 촬영합니다. 그리고는 무수히 뿌려져 있는 개구리 알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방금 산란한 개구리 알
방금 산란한 개구리 알 ⓒ 성락
아, 이게 웬일입니까? 이미 개구리는 산란을 마치고 그 자리에 없습니다. 새까만 알만 한 무더기 남아 있습니다. 암·수컷이 제각각 떨어져 알 주변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나만의 특종 '생명탄생의 신비-개구리 산란 동영상'은 이렇게 물거품이 돼 버렸습니다.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내 깨닫습니다. 자연의 위대한 조화와 생명창조의 고귀함을 멋대로 차지하려 한 인간의 욕심을 나무란 것이라고.

산란과 수정을 마친 개구리 암·수컷은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갑니다. 알들이 부화하여 올챙이가 되고 무수한 천적들 사이에서 목숨을 부지해 개구리가 되는 과정은 이들이 안아야 할 책임이 아닙니다. 제 각각 타고난 운명에 따라 죽거나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니까요.

한바탕 다섯 붕어가족의 꼬리질이 이어집니다. 새 연못가족을 맞는 환영인사라도 건네는 듯합니다. 조용히 연못을 비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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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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