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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문화시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척도는, 부안에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만한 곳은 노래방 정도다.
부안의 문화시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척도는, 부안에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만한 곳은 노래방 정도다. ⓒ 인권위 김윤섭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층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농촌에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둥, 10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둥 유년층의 감소를 걱정하는 소리가 드높지만, 더 심각하게 감소하는 건 청소년층이다.

최근 5년 단위로 1994년-1999년-2003년의 부안군 인구를 비교해 보면, 유년층조차 대략 700~800명씩 줄어드는데 청소년층만 수천 명씩 푹푹 준다. 10~14세 인구는 7605명-4185명-3524명으로, 15~19세는 9884명-6251명-4445명으로 줄었다.

2002년 부안군의 10~19세 인구는 12.4%밖에 되지 않았다. 부안군의 인구구조는 노년층이 많은 역삼각형도 아니고, 가운데가 깎여 들어간 망치형이라고나 할까. 취재진이 만난 청소년들은 열에 하나도 안 되는 농촌인구 중 몹시 귀한 인물들이다.

얼마 전 농촌경제연구소는 이런 추세라면 10년 안에 전국에 20~30대 농민이 2000명밖에 남지 않으리라는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진짜 충격은 따로 있다. 10년 후에 바로 그 20~30대가 될 농촌 청소년들, 취재진이 만난 6명 중에 앞으로 고향에 살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 지난해 대안학교인 '변산공동체학교'를 졸업한 김시전(19)군밖에 없었다. 그것도 일단 떠났다가 35세 이후에 돌아오겠다는 이야기다.

장차 뭐가 될지 모르겠다는 김보라양조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부안에서는 살지 않겠다는 것. 부안에서 자란 데 불만이 없는 박수필군도 부안에서 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무리가 농촌 청소년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한다면, 10년 후에 농촌에 살 젊은이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어른들도 농사짓든지 조그만 장사를 하든지, 이것저것 하다 말든지, 제대로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더러 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라고 해요. 여기 대학이 생긴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아요. 이런 데서 대학 나와 봤자 뭘 해요? 젊은 사람들을 나가라, 나가라 하는 데에요."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중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살던 곳에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남들은 진작 떠난 고향을 뒤늦게 떠나기까지, 중·고등학교 6년은 공백기나 유예기간이다.

그동안 놀 곳도, 갈 데도 없다. 시간은 축축 늘어지고, 아이들은 읍내 터미널 부근을 걷고 또 걷는다. 워낙 숫자가 적으므로 학교나 마을의 다른 아이들끼리도 다 아는데, 그 아이들도 역시 하릴없이 걷기 일쑤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어디를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읍내 사람들이 다 안다. 아이들은 숨고 싶고, 제발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 조그만 '매창공원'이나 빈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도시 아이들이 모처럼 내려와 논의 벼를 보고 "어머나, 새싹이 돋네!"하며 감탄하거나 "허수아비를 어떻게 만드니?" 하고 물으면 확 짜증이 난다.

"할머니댁에서 매일 고구마 구워 먹어 봐요. 죽고 싶지. 우리들은 버림받았어요. 어른들은 계모임이나 술집에 가고, 어린애들은 놀이방과 학원에 가죠. 우리들은 어디에 가죠? 보도블록과 가로등은 왜 그렇게 뜯어고치는지. 그런 거 보면 다 때려부수고 싶어요. 지역 발전? 다 헛짓이에요."

고교생 강수진 양이 가수 '동방신기'와 'TONY'의 팬클럽 카드를 보이고 있다.
고교생 강수진 양이 가수 '동방신기'와 'TONY'의 팬클럽 카드를 보이고 있다. ⓒ 인권위 김윤섭
올해 부안여고를 졸업하고, 친척의 사업을 도우러 경기도 일산 신도시로 간다는 강수진(18) 양은, 새만금이나 핵폐기장이 어떻게 되든 부안은 발전할 리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확신하고 있다.

설사 부안에 뭐가 생긴다고 해도, 여기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외지 사람들, 즉 서울 사람들이 덕을 볼 것이다. 원래부터 전라북도는 소외당해 왔고, 부안은 특히 그랬으니까.

박수필군은 분석적으로 덧붙인다.

"정부가 정확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잖아요? 일자리가 창출된다 해도 일시적일 거에요."

올해 부안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민경숙(17) 양은 더욱 암울하게 전망한다.

"부안이 발전해서 인구가 는다고 해도, 한번 떠난 부안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고향을 이미 겪어 봤으니까요.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지. 우리보다 앞서 도시로 나간 언니, 오빠들은 명절 때도 고향에 와서 며칠 못 견뎌요. 심심하니까요. 40대나 되면 모를까.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젊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어요. 지금까지야 부모님 때문에 가끔이라도 오지만, 그분들 돌아가시고 나면 올 일이 없을 걸요? 성묘하러나 오겠죠. 서울 사람들이 놀러오든지."

20대가 된 김시전군은 간혹 만나 술이라도 같이 마실 또래 친구가 단 두 명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만 부안에 온다. 변산공동체 학교 졸업생 중 아직 부안에 남아있는 동창도 본인을 포함해 두 명뿐이다. 개교할 때 11명이었던 공동체 학교 학생 수도 지금은 두 명으로 줄었다.

물론 취재에 응한 여섯 명의 청소년들이 한결같이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고향을 사랑한다. 그러나 김시전군을 빼놓고는, 혹시 고향에 돌아오더라도 50세 이후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는 날은 이미 어둡고 비가 내렸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날이 졸업식이고, 그 다음날이면 강수진양은 떠난다. 홍주희양은 일주일 뒤에, 박수필군은 3월 초에 떠나고 김시전군은 9월에 군대에 간다.

부안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부안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 인권위 김윤섭
그렇게 떠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언제 볼지 기약이 없다. 어차피 떠나야하므로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나머지 두 명, 김보라양과 민경숙양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고향에 온다 해도 방문이지 귀향은 아닐 것이다. 흔히 도시인들이 뿌리가 없다는데 농촌에서 자란 청소년들이야말로 성장기를 통째로 잘라 내고 떠돌아야 한다.

그 아이들은 참 외롭다. 수치로 보면 전라북도의 소득은 경북, 충남, 전남과 엇비슷하게 하위를 차지한다. 고향이 소외되었다는 아이들의 주장은 근거가 있기도 하지만, 농촌 청소년이라면 다들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생명평화모임의 김영표 사무국장은 새만금이며 핵폐기장 문제의 배경에는 농촌의 절망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갯벌을 파묻는 게 잘못이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라도 보상이랄까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농촌을 전부 관광지나 도시인의 쉼터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일부 지역이고 나머지는 여전히 소외된다. 위험 시설을 전부 농촌에 몰아 버리면, 사람은 다 도시에서만 살란 말인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을 되살리는 것, 농촌을 살리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인터뷰하면서 아이들이 사투리를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필자는 돌아오는 길에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취재진을 피했던 이유는 거리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도시에 나가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거리감을 느껴야 한다니, 그 아이들은 참 외롭다. 공유할 사람이 너무나 적어서 잊혀 버릴 그들의 청소년기는 아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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