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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채 밝아오지 않은 정동진의 앞바다
여명이 채 밝아오지 않은 정동진의 앞바다 ⓒ 이은화
바다는 고요해지는가 싶었는데 바람이 바다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가 춤을 춘다 오랜만에 바람냄새 바다냄새를 실컷 맡으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1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1 ⓒ 이은화
기다림….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들었다. 나는 처음에 구름속에 해가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먼저 하늘이 물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해! 서두르지 말라고 조급해지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면서 그렇게 해는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토함산에서 처음으로 본 일출 다음으로 본 두 번째 일출이다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3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3 ⓒ 이은화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4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4 ⓒ 이은화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2
정동진 바닷가의 일출 2 ⓒ 이은화
산에서 봤던 일출과 바다에서 보는 일출은 그 느낌이 달랐다. 기다림. 나는 기다림을 배우고 왔다.

한쌍의 연인
한쌍의 연인 ⓒ 이은화
해변가에 많은 사람들이 추운 바닷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연인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예뻤다.

바닷가 편의점에서 간단히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바로 길을 떠났다. 7번 국도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에 울진에 들러 성류굴을 보기로 했다.

울진 성류굴앞의 재미난 광고
울진 성류굴앞의 재미난 광고 ⓒ 이은화
성류굴 앞 음식점마다 약숫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는데 재미난 선전판이 눈에 띄어 얼른 찍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바가지 가득 욕심껏 마셨다. 그리고 3시간 후 정말 감당치 못할 만큼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성류굴
성류굴 ⓒ 이은화
작은 입구를 허리 굽혀 기어들어가니 계단이 나온다.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서로 교차되기도 한다. 많은 굴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나는 굴에 들어갈 때마다 두렵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밀실공포증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늘 가게 안에 있다보니 쇼윈도 크기만큼의 바깥 세상을 보게 되면서 답답하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자연의 그 경이로움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굴에서 사진들을 찍고 싶었지만, 차마 카메라를 누를 수 없었던 것도 아마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선녀들의 밀실이라는 제목이 있던 그곳은 조금의 일렁거림도 없는 고요한 물과 어우러져 있었는데 물을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큰 두려움을 느꼈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 계단을 보면서 저승과 이승으로 갈리는 암울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은 요즘 나의 맘 탓이렸다. 그런 우울한 마음을 성류굴 안에서 멋진 추억을 하나 만들면서 떨쳐냈다. 물기가 서린 나무로 된 길을 걷다가 미끄러워서 멋진 슬라이딩을 했다. 엉덩이가 한동안 얼얼했다.

성류굴
성류굴 ⓒ 이은화
다시 길을 떠났다. 서서히 눈이 감기고 졸려워진다. 운전하는 친구의 배려로 시트를 뒤로 젖히고 길게 누워 잠을 잤다. 그때부터는 경치도 필요없고 오로지 잠이 필요했다. 가게를 밤 12시에 닫고 바로 쉴 틈도 없이 떠나온 길이었으니 잠도 쏟아질 만하다.

어느 정도 가다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세차를 하고 그곳 화장실에서 늦은 세수를 하였다. '아, 이렇게 하는 것이 여행이구나' 비로소 지금 내가 여행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항상 편하게 떠나고 편한 곳에서 잠을 자던 나로서는 진짜 여행의 참맛을 느꼈다.

어디로 갈까. 포항으로 갈까. 정처없이 떠난 여행이라 그때 그때마다 목적지를 정해야 했다. 우린 경주로 향했다. 강원도에서 떠날 때엔 매서운 겨울이었는데 경주는 꽃피는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화와 목련 꽃봉우리를 보며 봄의 향연에 끼어들었다.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친구의 선배를 만나기로 한 부산으로 달려가는데 길이 밀리기 시작한다.

경주
경주 ⓒ 이은화
부산에서 선배를 만나고 해운대를 바라보며 모처럼 일식으로 푸짐하게 포식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일상을 떠나 잠시 떠난 여행이지만 마음 속에는 가게가 늘 자리잡고 있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운전을 하던 친구가 많이 피곤해 하는 것 같아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목적없이 일정없이 훌쩍 마음가는 대로 떠났던 잠시 동안의 일탈이 새롭게 활력소가 되어 삶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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