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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 직후 헤드라인에 등장한 팔레스타인인 압바스 수안. <예디오트아하로노트> 3월 27일자 1면.
시합 직후 헤드라인에 등장한 팔레스타인인 압바스 수안. <예디오트아하로노트> 3월 27일자 1면.
아일랜드에게 1-0으로 뒤지던 이스라엘이 전후반 경기가 끝난 인저리 타임 진입한 후반 46분에 결정적인 한 골을 추가시켰는데, 그 주인공은 후반 30분에 투입된 팔레스타인 출신 압바스 수안이었다.

이스라엘의 축구 열풍은 대단하다. 더욱이 경기의 중요성에다 연휴에 벌어진 이번 예선전은 그야말로 축구를 모르는 이스라엘 국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여건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국민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반 4분만에 아일랜드에게 한 골을 허용한 이스라엘은 시종일관 아일랜드에 끌려갔다. 정말 이대로 패한다면 이스라엘로선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이 피 말리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그랜트 감독은 후반 18분에 선수 두 명을 교체 투입시켰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결국 후반 30분에 감독은 마지막 히든카드로 공격수(미드필더) 아바스 수안을 그라운드에 투입시켰다. 모험이었다.

모험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수안은 아랍계 이스라엘인으로 팔레스타인인이었다. 이스라엘 리그에서 유일한 아랍계 팀인 사크닌에 소속해 있는 아랍인 선수였던 것이다.

경기장을 꽉 채운 4만4000여명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더욱이 경기종료 15분을 남겨놓고 투입된 아랍인 선수는 자칫 패배의 모든 화살을 한 몸에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경기엔 이스라엘 주요 장관을 비롯한 정치인이 대거 참석했다.

이스라엘의 아랍인 영웅, 압바스 수안

이스라엘 일간지에 등장한 팔레스타인 축구 영웅 수안의 가족 사진
이스라엘 일간지에 등장한 팔레스타인 축구 영웅 수안의 가족 사진
압바스 수안은 기적을 만들었다. 경기 전후반 90분이 지난 91분에, 인저리 타임에 25m 중거리 포를 날려 골망을 흔들었다. 이스라엘 국민은 열광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인이든 유대인이든 관계없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의 희망은 되살아났고, 이스라엘이 세계 랭킹 12위의 아일랜드와 비겼다는 것 자체가 축구팬과 국민을 열광시켰다. 승리는 고사하고 비기기만이라도 해달라는 국민의 열망을 해소시킨 그 자체가 더욱 열광케 했다.

이날 수안의 한 골은 꺼져가던 월드컵 본선 진출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고, 이스라엘은 승점 9점(2승 3무)을 기록, 아일랜드 프랑스 등과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을 따져 3위로 뛰어올랐다.

아랍인 수안은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다. 다음날 이스라엘 언론은 그의 득점 순간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그에 관한 모든 것이 보도되었다. 특히 우익의 대표적인 신문 <마아리브>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의 1면에 이어 다음날에도 그의 집까지 찾아가 취재 경쟁이 벌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이 골을 모든 이스라엘인에 바친다"는 그의 발언은 그대로 주요면 헤드라인으로 뽑혔다.

시합 전 이스라엘 국민의 기대를 한껏 받은 축구 스타 요시 바닌. 헤드라인 제목 "희망이 있다".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3월 25일자 1면.
시합 전 이스라엘 국민의 기대를 한껏 받은 축구 스타 요시 바닌. 헤드라인 제목 "희망이 있다".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3월 25일자 1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이번 경기에 이스라엘 국민이 걸었던 기대는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전통 명절인 부림절의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치러진 이 경기는 경기 전부터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는 듯한 언론전이 벌어졌다. 특히 국민적인 스타 요시 바닌을 게임 직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에 등장시키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기 직후 언론의 헤드라인엔 한 아랍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압바스 수안. 이날의 수안이 터뜨린 동점골, 그 하나는 그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목과 증오를 가시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지닌 골이었다.

축구를 통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교류는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3월 27일, 다시 그 경기장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혼성 축구팀을 만들어 시합을 했다. 이 자리에 유럽리그 2연패에 도전하는 첼시의 감독 조세 무링요를 초청해 함께 관람케 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9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시몬 페레스가 설립한 '페레스 평화센터'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또한 지난해에는 2004년 이스라엘 전국 리그에서 아랍 프로팀이 우승했다. 중요한 것은 이 팀이 아랍계 팀이지만, 아랍인 유대인 그리고 해외 용병이 각각 30%씩 혼합된 팀이라는 것이다. 아랍인 유대인 누구나가 응할 수 있는 그런 팀이었다.

한 민족, 한 나라를 강하게 묶을 수 있는 수단이 전쟁과 스포츠라고 한다. 때문에 스포츠는 그 비폭력적 수단으로 전쟁의 대용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맞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축구 열기는 두 나라의 반목을 일시적이나마 친목으로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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