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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산성 전경
적성산성 전경 ⓒ 이양훈
휴게소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이 성재산이다. 이 성재산의 정상부를 둘러가며 쌓아올린 전형적 퇴뫼식 산성이 '적성산성'인데 멀리서 보아도 튼튼하게 축조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산성은 안과 밖을 모두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석성으로서 내외협축(內外挾築)방식으로 시공되었다. 총길이 약 920m.

적성산성 성벽. 다듬은 자연석을 촘촘히 쌓아 올렸다.
적성산성 성벽. 다듬은 자연석을 촘촘히 쌓아 올렸다. ⓒ 이양훈
북쪽으로는 남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동쪽에는 죽령천, 서쪽에는 단양천이 남한강으로 흘러 들고 있어 삼면이 물줄기에 감싸인 봉우리이니 천연의 방어요새다. 또 남한강을 상하로 오르내리는 수로와 죽령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나 있어 교통의 요지기도 하다.

인근인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온달산성의 모습. 비슷한 시기에 축조한 탓인지 적성산성과 많이 닮아 있다.
인근인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온달산성의 모습. 비슷한 시기에 축조한 탓인지 적성산성과 많이 닮아 있다. ⓒ 이양훈
신라는 이곳 적성산성과 조금 남쪽의 온달산성을 근거로 한강유역과 함경도까지 진출할 수 있었으니 적성을 얻은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충만했던 진흥왕의 기쁨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으니 단양 신라 적성비가 그것이다.

비석은 이곳 적성이 신라의 영토라는 것과 그 과정에서 신라에 충성을 바친 적성인(赤城人) 야이차(也이次)에 대한 칭찬과 포상 그리고 누구든 야이차(也이次)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성내에 있는 비각
산성내에 있는 비각 ⓒ 이양훈
6세기 중엽, 좁디좁은 서라벌 시대를 마감하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호호탕탕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정복 군주 진흥왕의 자부심 짙게 배인 포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울릉도를 복속시킨 장군 이사부(異斯夫)와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武力) 등 우리 역사 속의 낯익은 이름들도 확인된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견해 조사하기 전까지 등산객들의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이 비석은 휴게소에서 5분 남짓한 적성산성 안에 있다.

국보 제198호 단양 적성신라비
국보 제198호 단양 적성신라비 ⓒ 이양훈
촘촘히 쌓아올린 성벽 위에서 굽이치는 남한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진흥왕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던 온달장군의 피맺힌 절규를 생각해 본다.

인근인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에 있는 삼층석탑. 보물 제405호. 역시 무료로 둘러 볼 수 있다.
인근인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에 있는 삼층석탑. 보물 제405호. 역시 무료로 둘러 볼 수 있다. ⓒ 이양훈

석탑위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석탑위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 이양훈
원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바로 이 길이 그 옛날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질풍처럼 내달리며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격전의 현장임을 생각하며 즐거이 고대사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요즘은 공짜로 뭘 본다거나 즐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부근을 지나는 일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바로 단양휴게소다. 온달산성과 향산리의 석탑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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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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