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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캐논수동카메라 카페' 운영자 이재영(54)씨
ⓒ 심은식
하루가 다르게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필름 카메라 가운데서도 유독 '구닥다리' 수동 카메라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사람이 있다.

바로 '다음 캐논수동카메라 카페' 운영자인 이재영(54)씨. 수동카메라에 얽힌 그의 특별하고 깊은 사연을 들어보았다.

30여년 간 수동카메라 약 80대 모아

70년대 초 대학교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처음 캐논 FTb라는 기종의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시작된 그의 카메라 사랑은, 도중에 일에 쫓겨 잠시 관심이 뜸했던 적도 있었지만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 동안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한 카메라가 이제는 무려 80대 가까이 된다.

카메라가 이처럼 많다보니 거기에 얽힌 사연 또한 적지 않다. 애타게 찾던 물건이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먼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가는 것은 기본.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온 적도 있고 작은 액세서리 하나를 구하려고 전화한 통화료가 액세서리 값보다 더 나온 적도 있다고 하니 그의 카메라에 대한 정성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동안 수집한 카메라들과 렌즈가 수납장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 심은식
▲ 수납장 내부 적정습도를 확인하는 습도계
ⓒ 심은식
처음 카메라를 접하기 시작했을 때는 가격을 잘 몰라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불량품을 산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길 어언 30년. 이제는 눈감고 카메라만 만져도 칠을 다시 한 것인지 아닌지 알 정도라고.

어렵게 고생해가며 구한 카메라들이다 보니 보관에도 온갖 정성을 쏟는다. 별도로 마련한 수납장 두 개에 카메라들을 넣고 전등을 켜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한다.

그런 면에서 엄밀히 구분하자면 이재영씨는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카메라 수집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노출·셔터 조작하는 손맛 잊지 못해"

▲ 이재용씨가 가장 아끼는 캐논의 구형 F-1
ⓒ 심은식
그는 왜 이렇게 수동카메라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일까?

"디지털은 찍고 바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필름은 사진을 찍은 후 기다리고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그만큼 한 컷 한 컷을 소중하게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고, 노출이며 셔터 등을 조작하는 과정의 손맛 등도 남다르죠."

그러나 이재영씨는 자신이 수동카메라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자동카메라는 물론 디지털 카메라도 여러 대 가지고 있었다.

"수동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스포츠 사진을 찍는데 수동카메라를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초점 맞추고 하는 동안에 벌써 휙 하고 지나가잖아요. 다만 수동이 필요한 순간과 용도가 있어요. 예를 들어 풍경 사진 같은 경우는 수동을 쓰면 좀 더 정밀하고 세심하게 시간을 들여 찍을 수 있어요. 조작하는 동안 구도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러면서 고민하고… 그런 게 즐거움이죠."

▲ 이재용씨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를 모아 만든 책을 보며 설명해주고 있다.
ⓒ 심은식
당초 개인적으로 수동카메라에 대한 자료와 사진들을 모아두는 자료실로 쓸 계획으로 만들었던 이재영씨의 '카페(http://cafe.daum.net/coco9890)'는 지금은 입소문을 타고 모여든 사람들로 200명 이상에 이른다.

회원은 운영진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야만 정식회원으로 가입된다. 비록 인원이 적게 모이더라도 행동과 생각이 진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이씨 나름의 방침 때문이다. 마치 수동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모인 회원들은 10대 고등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년까지, 연령층과 직업도 다양하다.

맥주 한 잔에 친구가 되어버린 사람부터,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장난 카메라를 다른 카메라로 바꿔준 사람, 사진 공부를 하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거저 카메라를 준 사람까지 모두 이재용씨의 진국 인연들이다. 이 모두가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결과가 아닐까?

▲ 지난 3월 1일 있었던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 기념사진
ⓒ 이재영
낡은 카메라도 손에 익으면 최고!

▲ 캐논 AE-1으로 찍은 화분 사진. 중고 수동카메라는 표준렌즈를 포함해 1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 심은식
초보자가 쓰기 좋은 수동 카메라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이재영씨는 다른 회사 것은 잘 모르고 캐논의 경우 A시리즈 정도면 무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좋은 카메라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람마다 카메라에 대한 만족도가 다 다르고, 사고 낡은 카메라라도 본인이 즐겁다면 그것이 최고의 카메라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굳이 비싸고 고급스런 수동카메라를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지금은 불과 10만원도 안 되는 중고 수동카메라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흔히 집에서 찾은 수동카메라들을 '장롱 카메라'라고 해요.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카메라가 상당히 고가품에 속해서 장롱 깊숙이 넣어두곤 했던 거죠. 제 첫 카메라만 해도 그 때 돈으로 10만원인가 주었는데 당시 하숙비가 1만5천원이었으니 상당히 비쌌던 셈이죠. 예전에 소중한 물건들이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만 소중히 다루어주면 그 때나 지금이나 좋은 사진들로 보답을 해요."

자신은 아이가 장난감을 좋아하듯 그저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일뿐이라며 겸손해하는 그를 보면서 필자는 그의 장비들보다 그런 마음 자세가 더 부러워졌다.

역시 아날로그의 미학은 느림과 여유. 그리고 정이 아닐까. 돌아오는 동안 한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내 수동카메라에게도 오래간만에 필름을 배불리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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