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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방안에서 국을 뜨고 있다
할머니가 방안에서 국을 뜨고 있다 ⓒ 우리안양 제공
정의진(80세) 할아버지는 "집에서 썰렁하게 혼자 먹는 것과 어떻게 비교하겠어. 음식이 깔끔하고 어울려 먹으니 더 맛있고, 매일 식당에서 별식을 먹는 기분이지"라고 말한다. "여기 국 좀 더 줘요"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후딱 식사를 끝낸 노인들은 각자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운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홍정선 회장은 "경로당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황 할머니의 인정이 묻어나는 손맛이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놀면 뭐해. 집에는 며느리가 살림하구. 난 할 일이 없어. 내가 좋은 일 하면 자식들이라도 잘 될 거 아녀"라며 당당하다.

경로당을 개소(2003년 8월)이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점심밥을 짓고 있는 황쾌선 할머니. 시(市) 지원금과 20여명 회원들의 쌈지돈 회비로는 매일 10여명의 식사를 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할머니가 남부시장과 중앙시장을 돌며 일주일분 식료품을 알뜰하게 장만하기에 가능하다고. 시장에서 돌아오면 쉴 틈 없이 채소를 다듬고, 생선을 손질하여 차곡차곡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할머니의 몫이다.

싱크대 찬장 가득 술잔, 물 컵, 접시, 밥공기, 국 대접, 냉면기에 이어 프라이팬까지 잘 정돈된 모습에서 할머니의 빈틈없는 살림 솜씨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식판을 받고 있다
할아버지가 식판을 받고 있다 ⓒ 우리안양제공
할머니와 동갑이라는 임동임 할머니는 "내 살림도 이렇게는 못하지. 이런 사람 첨 봤어. 엄청 부지런하고 음식 잘하고 버릴 게 없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급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탕수육이나 잡채, 만두에 이어 빈대떡까지 일품요리가 탄생된다. 할머니들이 만두 하나를 빚으면 황 할머니 손에서는 대여섯 개의 만두가 탄생된다고.

주민들이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도 고추장 풀고 수제비 뚝뚝 떠 넣으면 경로당 식구들이 놀라는 할머니 표 별미다. 할머니들이 도와주려면, 원래 일을 잘하는 황 할머니에겐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정도라고.

지난 가을 30포기 김장 역시 할머니 혼자서 거뜬히 해냈다. 도움이라면 할아버지들이 뒤곁 화단에 구덩이 파서 독을 묻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여장부처럼 당당하고 씩씩한 할머니의 뒤안길에도 쓰라린 과거와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54세 때 태산처럼 믿었던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며 병 수발과 3남매 양육을 감당해야 되었던 아픔이 있었다.

"남편을 잃고 명동의 요정에서 일했지. 내가 눈썰미가 있어서 보조 3개월만에 양식조리사 자격을 따서 주방장이 되었어. 어린 자식들 하고 살려니까 건강을 챙겨야겠기에 몸에 좋다는 인삼, 해삼, 멍게도 고루 챙겨먹으며 70세까지 일했어. 고생은 했어도 3남매 모두 집 장만 해주고 이젠 두 다리 쭉 뻗고 살아"라며 뒤안길을 회상한다.

할머니 특기는 문어 모양내 썰고, 무 같은 야채로 잠자리나 장미꽃, 나팔꽃도 척척 피워내는 그야말로 음식의 마술사였다고. 지금도 동네 처녀 시집갈 때면 할머니의 구절판 솜씨가 빠질 수 없다고 한다.

노익장을 과시하듯 한번 듣고 보면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넘치는 총기로 점심 식사뿐만 아니라 술안주며 새참으로 노인들을 항상 즐겁게 하는 황쾌선 할머니.

화통하게 "어디 돈 있는 영감 하나 있으면 소개 시켜 줘"라며 농담을 던지는 할머니의 걸걸한 웃음이 오래도록 경로당 안에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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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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