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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에 떼를 지어 모여 사는 까치들.
덕산에 떼를 지어 모여 사는 까치들. ⓒ 이덕림
‘봄꿩이 제 스스로 운다(春雉自鳴)’고 이따금 장끼 소리도 들리지만 까치들이 떠드는 소리와 홰치는 소리에 다른 날짐승들은 주눅이 든 듯 조용합니다.

높다란 아카시아 나무 위에는 여기저기 새로 지은 까치집들이 얹혀 있습니다. 까치집은 보기에 참 엉성합니다. 땅에서부터 너댓 길쯤 되는 높이에 가지가 서너 가닥으로 갈라진 틈새를 택해 마른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얹어놓아 집을 짓습니다. 저런 둥지에서 어떻게 비바람을 막아내려나 싶을 정도로 허술해 보입니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런 수필을 많이 발표한 치옹(癡翁) 윤오영(尹五英.1907~1976) 선생은 그의 수필에서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부인이 매만져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아카시아 나무 위의 까치 둥지.
아카시아 나무 위의 까치 둥지. ⓒ 이덕림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새기도 하는 청빈한 서생(書生)의 거처 같다고 할까요. 까치는 그런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잘도 길러냅니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지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듣던 까치 소리는 아침의 신선함을 전해주는 상쾌한 노래였습니다. 희소식의 전령사로 반김을 받던 까치. 희작(喜鵲)이란 한자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일 테지요.‘오작교(烏鵲橋) 전설’에서 ‘까치 까치 설날’에 이르기까지 까치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정서에 깃들어 있는 새입니다. 의당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새로 꼽혀 왔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까치를 보는 눈이 곱지 않게 변했습니다. 까치를 엠블렘으로 삼아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던 어느 은행은 소리소문없이 간판에서 까치를 지워 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까치를 앞다투어 시조(市鳥)나 군조(郡鳥)로 내세우던 여러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슬그머니 상징을 바꾼 곳이 많습니다.

덕수궁 안 은행나무 위에 있는 까치집. 둥지 옆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가 보인다.
덕수궁 안 은행나무 위에 있는 까치집. 둥지 옆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가 보인다. ⓒ 이덕림
어느 틈에 까치는 해조(害鳥)로 따돌림을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농작물을 해친다는 이유때문입니다, 특히 과수재배 농가들의 까치에 대한 원성이 높습니다. 익어가는 배나 사과를 쪼아 먹어 피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녀석들은 음식물 쓰레기에 몰려들어 먹이를 찾는 구차한 모습을 보여 흉을 잡히기도 합니다. “귀찮다”는 눈총에서 “밉다”는 괄시까지 받는 민망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까치들이 왜 농작물에 입을 댈까요? 따지고 보면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농약의 과다사용 등 환경악화로 까치의 먹이인 벌레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식량난(?)에 처한 까치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가꿔놓은 농작물에 덤벼들게 된 것입니다. 까치는 본래 인간에게 이로운 새입니다.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益鳥)임.우리 나라의 국조(國鳥)로…”라는 국어사전의 풀이처럼 까치는 조상 대대로 익조로 인식돼왔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어른들이 까치 때문에 속을 끓이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논밭 곡식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때라고 까치들의 식성이 지금과 달랐겠습니까?

환경파괴는 ‘익조’까치를 ‘해조’ 까치로 바꿔 놓았습니다. 환경파괴는 생태계에서 ‘인간의 적(敵)’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환경파괴가 계속되는 한 까치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불화(不和)는 계속되리라는 걱정이 듭니다.

까치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 텃새입니다. 예로부터 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도 삽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담장 안 은행나무 위에 서너 채의 까치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이서 살기를 좋아하는 까치. 까치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까치 사이의 정겨운 교감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침 까치소리가 반갑지 않고 밉살스럽게 느껴진다면, 또 “까치까치 설날이…”이라고 시작하는 동요가 동요책에서 사라진다면 우리의 정서는 그만큼 스산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까치들의 합창이 조용한 은평구 우리 동네에 날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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