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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 ⓒ 사계절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은 이 탐험가들의 이야기다. 20세기 초반, 중국의 오지에서 외국의 탐험대가 행했던 고고학적 침략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인물들은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등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그들의 발견과 중앙아시아 역사 연구에 대한 공헌으로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이들을 자신의 역사와 유물을 강탈해간 파렴치범 또는 악마로 취급할 뿐이다.

물론 이 탐험가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서양인들은 이 탐험가들의 유물 반출이 이후에 자행된 유물 파괴행위로부터 구제해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후의 무슬림들은 실크로드 도시의 많은 유물과 벽화들을 파괴하였다. 수천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던 많은 유물들이 마지막 반세기를 앞두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재 이 실크로드의 도시들에서 반출된 유물들은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해서 최소 약 13개국의 박물관에 나뉘어져 있다. 워낙 많은 양의 유물들이라서 아직도 분류가 되지 않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대영박물관과 영국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1만 3천점의 한문 필사본과 고서들은 특수 캐비닛 속에 꽂혀 있다. 오렐 스타인이 들고 나온 수많은 조각과 두루마리들은 현재 델리의 국립박물관, 베를린의 인도 미술관,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미술관 등지에 나뉘어져 있다.

폰 르콕이 베제클릭에서 가져온 불교 미술품들의 상당수는 2차대전 때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무슬림들의 문화재 파괴행위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 반출되었다는 유물들이 서양인들의 폭격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이들의 행위가 옳은가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벽화, 조각, 필사본들이 본래의 장소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과연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자. 또한 아무리 그것이 '구출'을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한 민족에게서 영원히 그들의 유산을 박탈해 버린 것이 과연 도덕적이었나 하는 것도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자. 그러나 중국인들이 왜 처음에는 유물들이 실려나가는 것을 허용했는지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들의 탐험과 생애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오지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고 탐험과 발굴로 뛰어들었던 이 모험가들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5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타클라마칸 사막을 헤매고 다녔던 스벤 헤딘, 필사본 위조자(僞造者) 이슬람 아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오렐 스타인, 아흐레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라다크 고개를 넘은 후에 탈진해버린 폰 르콕 등.

행위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이 탐험가들의 극기와 모험의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고국에서는 영웅으로 대접받았던 이들은 이후에 다양한 운명을 맞이했다.

중앙아시아 고고학의 태두로 불리는 오렐 스타인은 1943년 82세의 나이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프가니스탄을 탐험하기 위해서 42년 동안 이 나라 정부에 허가를 요청했던 그는, 허가증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폰 르콕은 그보다 13년 앞서서 세상을 떠났다. 불치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탐험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제 4차 탐험을 위해서 남경에 머물던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개척자였던 스벤 헤딘은 1952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는 이미 잊혀진 존재였다. 그가 죽고 나자 한때 그를 존경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1,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지지하고 나섬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잃게 된 것이다.

스벤 헤딘이 죽은 지 3년 후, 마지막으로 실크로드 탐험에 뛰어들었던 미국의 랭던 워너도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랭던이 '길고 오래된 길(long old road)'이라고 표현했던 실크로드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오아시스 사이에는 현대식 포장도로가 들어서고 있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클라마칸 사막은 가장자리부터 농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실크로드의 신비와 낭만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실크로드의 악마들 -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사계절(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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