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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인 제가 꿈에 그리던 금강산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9월이었습니다. 우리학교 의 금강산 모꼬지를 오랜 시간 준비하면서 본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답사로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고 그리웠던 북녘 땅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솔직히 금강산 보다는 북녘동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까지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금강산을 가기 위해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금강산 관광조장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광가이드입니다.

▲ 금강산 관광조장 시절 나. 해금강에서
ⓒ 이수영
‘참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구나’ 생각을 했지만 금강산에서 지내면서 그 분 이야기 보다는 금강산에 빠져 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로 반년 후에 제가 금강산 관광조장이 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답니다.

2004년 3월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첫 직업으로 금강산 관광조장이 되었습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후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금강산이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남과 북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평화와 통일의 성지가 되기까지 일선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조장입니다. 평소에는 금강산에 오시는 남측관광객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이산가족상봉이나, 남북통일 행사가 있으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바로 금강산 관광 조장입니다.

▲ 10차 이산가족 상봉 2진 조장들 호텔해금강 앞에서
ⓒ 이수영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을 하고, 매일 같이 산에 오르면서 많이 힘들지만 주위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함께 했던 동료관광조장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남들 다 고향집으로 가는 설날이나 추석 때도 금강산을 지키는 우리 조장들입니다.

금강산 현지에 있을 때는 남쪽에 있을 때보다 개인시간은 줄어들지만, 동료조장의 생일이면 2층 침대를 쓰는 4인 1실방에 스무 명씩 모여 침대 1, 2층으로 축하를 해주는 정 많은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금강산에서 하산을 하기 전 제 생일축하를 못하고 온 것이 후회가 됩니다.

금강산이라는 곳은 산이 좋아서 그런지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참 좋습니다.

▲ 금강산 상팔담에서 산악구조대 영남이와.
ⓒ 이수영
금강산 관광 조장을 비롯해서, 금강산 관광전용 버스를 운전하시는 재중 동포기사님들, 사진사분들, 관광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산악구조대원들, 남녘관광객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북녘동포 해설원, 환경관리원분들.

▲ 금강산 관광의 운행을 책임지고 계신 기사님들
ⓒ 이수영
100일 동안 금강산 관광조장을 정리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금강산에서 나오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금강산에 좋은 사람들,따뜻하게 제 손을 잡아주셨던 많은 관광객 할머니, 할아버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와 미소 짓게 합니다.

금강산에서는 이미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분단 60년의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올 봄에는 금강산부터 시작한 따뜻한 통일의 봄바람이 남녘, 북녘으로 많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계속되는 동안은 우리의 금강산 지킴이 '금강산 관광조장님'들은 항상 그 곳에 계실 겁니다.

▲ 눈이 많이 와도 열심히 일하는 관광조장
ⓒ 이수영
정말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금강산 관광조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작년 금강산 현지에서 100일동안 금강산 관광조장을 하면서 만났던 동료들의 이야기와 금강산 현지에서 정말 뜻깊은 일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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