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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서 일하던 때의 일이다. 토요일 저녁 누군가가 외쳤다.

"로또 발표 시간입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웃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PC방에 있던 사람들 중 90% 이상이 그 소리를 듣고 난데없이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번호를 확인하려든 것이다.

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그 당시의 충격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지만 나 역시 로또를 구입해 본 적이 있다. 물론 늘 '꽝'이었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로또에 열광하는 이유는 광고 문구처럼 '한 번에 인생역전'의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꿈도 잠시 로또 당첨이 끝나고 나면 로또를 산 거의 모든 이들은 '말도 안 되는 번호다' '이런 사행성 복권을 정부가 조장해도 되냐'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등 잠시 꾸었던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해댄다. 나 역시 그 대열에서 열변을 토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난 내 주변의 이 사람을 떠올리면 인생역전의 꿈이란 것은 결코 큰 데 있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이벤트 걸'이라고 불리는 나의 여자친구이다. 주위 사람들은 수많은 이벤트, 경품 등에 당첨되는 그녀를 보고서 '이벤트 걸'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물론 그녀가 이벤트 걸이 된 데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여자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조영화를 통신사 카드로 할인을 받아 2000원에 보는 등 저렴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가끔 무언가를 사먹다 경품 이벤트가 있으면 꼭 보낸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한 포탈사이트에서 하는 '경품쟁이'라는 코너를 발견해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적지 않은 경품이나 행사에 당첨된 것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이런 저런 경품이나 행사에 당첨되니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넌 어떻게 맨날 그렇게 당첨되는 게 많니?"

비록 여자친구이긴 하지만 나 역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무심코 지내다가 오늘 역시 당첨된 이벤트에 다녀온 후 그녀의 미니 홈피 이벤트 모음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가만히 잘 살펴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녀가 당첨된 것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시사회를 비롯, 음악, 연극 등의 초대권이다. 액세서리, 화장품, 외식 상품권, 놀이동산 초대권 등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무척 행복해 한다. 그녀에게 이러한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오는 선물들을 보면 그녀가 삶에 있어서 무얼 중시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독립영화제를 따라다니며 일했을 만큼 영화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영화 일에서 멀어진 지금까지 영화를 보는 것은 큰 낙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시사회였고, 시사회 당첨으로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친구는 영화 뿐 아니라 연극,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경품에 당첨, 몇 번 다녀온 적도 있다.

또한 그녀는 각종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기타 유명 음식점 등의 식사권도 적지 않게 당첨됐다. 사실 가난한 학생이 매번 비싼 돈 주고 좋은 음식을 사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늘 같은 것만 먹고 싶지 않고, 때로는 비싼 것도 먹고 싶은 법이다. 그러자면 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권이 필요했고 그녀는 그러한 경품을 주는 곳을 골라 참여함으로써 적지 않은 식사권을 확보했다.

마지막으로는 커플 이벤트이다. 많은 연인들이 특별한 이벤트를 꿈꾸지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자금력을 극복하기 위해 커플 이벤트에도 집중 공략했고 그 결과 밸런타인 데이는 모 초콜릿 회사의 밸런타인 데이 행사에서 휘성의 노래를 들으며 보냈고, 화이트 데이는 모 미용실 변신 이벤트에 당첨되어 스타일을 바꾸는 이벤트로 기념할 수 있었다.

마치 '경품 이렇게 하면 탈 수 있다'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자. 그녀는 '이벤트걸'이라고 불리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남들이 아주 부러워할 만한 상품이나 경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벤트 걸이라고 불리며 부러움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자친구 자신이 진정 소망하는 것을 알고, 그 소망에 근접한 경품을 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기쁨과 소망들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경품행사에 참여하면서 이번에 자동차, 냉장고, 현금 몇 백 몇 천 만 원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행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말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한 욕망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정말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신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복권 당첨자의 불행한 말로나 복권이 당첨되자마자 해외로 떠나가버리는 사람들이 과연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행복할까?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난 이제부터라도 로또 대박의 꿈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처럼 내가 정말 원하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기로 했다.

토요일 오늘도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저녁이 되면 탄식이 전국을 뒤덮겠지만 그 가운데 과감히 복권을 찢어버리는 이들도 있으리라. 쉽게 얻은 행복은 쉽게 빠져나가기 쉬운 법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돈이 많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행복이란거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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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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