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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눈을 머금고 있는 설중매
ⓒ 한성수
3월 5일 어제 저녁 7시에 연초에 결혼한 처남 부부의 집들이 초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후 6시경, 차를 타고 창원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눈발이 흩뿌리더니만 마산 구암동에 도착했을 때는 활짝 핀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면 집에 돌아올 때 운전을 해야 하는 마누라는 걱정을 하는데, 아이들과 나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15년 만에 처음 맞는 장관입니다.

▲ 차창 밖에 함박눈이 내립니다.
ⓒ 한성수
집들이를 하는 중에도 연신 눈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눈에 쌓인 매화를 찍고 싶은데, 다들 일어설 기색이 아닙니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고, 밤 12시를 넘기고서야 자리가 파했습니다. 이제 눈이 조금 주춤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시가 되었습니다. 나는 손전등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기어이 마누라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 눈에 파묻힌 파밭
ⓒ 한성수
결국 오늘 6일 아침 6시에 어제 함께 가기로 약속한 마누라를 깨워서 집을 나섭니다. 동네 입구의 매화거리에 있는 매화꽃이 시들어 있습니다. 하기야 지난 2월 17일경에 첫 꽃을 피웠으니 이제 시들만도 합니다. 나는 연달아 셔터를 누르지만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길옆의 파밭이 눈에 편안하게 안겨 있습니다. 다시 명지여고 쪽으로 향하는데, 하늘에 조각달이 걸려 있습니다.

▲ 눈에 어린 조각달
ⓒ 한성수
우리는 팔짱을 끼고 얼어서 미끄러운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전에 내가 들었던 이야기 한토막 할까?”

마누라는 귀를 쫑긋 세웁니다. 도로에는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고, 부지런한 사람들 몇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옛날 공부를 하지 않아 글을 모르는 응석받이 부잣집 도련님이 장가를 들었대요. 신부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려는데, 신부가 보기에 영 아니거든. 그래서 도련님에게 부탁을 했어요.

서방님! 저는 무식한 사람과 평생을 보내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십시오. 제가 문제를 낼 테니 그 답을 알았을 때 다시 저를 찾으십시오. 이리 눈이 많이 오는 것을 보니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 雪白 天地白)입니다. 이 댓귀를 알아 오시면 그 때는 제 서방님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서 첫날밤에 신부한테 소박을 맞고 쫓겨났단 말이야! 3년 동안 절에서 열심히 공부했지. 그런데도 그 답을 알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흰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저런 조각달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지. 그러면서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수심도 깊다(산심 야심 객수심: 山深 夜深 客愁深)고 읊었는데, 이게 바로 딱 맞는 댓귀란 말이야.

그래서 싱글벙글거리며 짐을 쌓지.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약삭빠른 젊은이가 물었지. 그러자 그 세상 물정 모르는 서방님은 여차저차해서 이차저차하다. 그래서 내일은 드디어 마누라한테 가게 되었다고 얘기를 했지. 다음날 기분 좋게 처가를 찾았는데, 아! 글쎄~~”

눈치 빠른 분들은 다음 이야기를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 선비가 신부집에 도착해 보니 그 약삭빠른 젊은이가 먼저 도착해 그 댓귀로 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혼례를 치렀으니 가능한 얘기입니다. 마누라는 크게 웃어 줍니다. 아마 그 놈(어리숙한 선비)이 이놈(접니다)을 닮았다고 생각한 게죠.

“그 얘기는 아마 김삿갓이 지은 시에다가 이야기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덧붙였다고 했지, 아마.”

길가의 동백나무 울타리에도 소담스런 눈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 동백나무 울타리
ⓒ 한성수
이제 매화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매화도 볼썽사납게 벌써 시들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지만 마음이 그리 흔쾌하지 만은 않습니다. 10일 붉은 꽃이 없다고 하더니 너무 늦게 오신 눈을 탓하는 수밖에요.

▲ 눈과 매화 사이
ⓒ 한성수
우리는 손을 잡고 다시 왔던 길을 천천히 걸어서 돌아옵니다. 매화 덕분에 데이트 한번 참 잘했습니다, 그려.

▲ 매화꽃(십일 붉은 꽃이 없다더니 )
ⓒ 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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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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