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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약수. 모처럼 찾는 이가 없어 고즈넉하다.오른쪽에 보이는 입간판은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수질검사 결과를 알리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덕산약수. 모처럼 찾는 이가 없어 고즈넉하다.오른쪽에 보이는 입간판은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수질검사 결과를 알리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광화문에 직장이 있던 1980년, 이 쪽으로 이사를 온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동네 뒷산을 답사한 일이었다. 그 때 처음 물맛을 보고 나서 지금까지 덕산약수의 음덕(陰德)을 입고 산다. 아침마다 찾아 목을 축이고 물을 길어 왔으니 지난 25년 동안 우리 가족이 마신 양을 따지면 작은 연못 하나쯤은 넉넉히 만들 수 있으리라.

인체의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음을 상기하면 덕산약수는 내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말할 만하다. 40대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은 체중을 유지하면서 잔병치레 안하고 지내온 것도 약수터와 가까이 지낸 덕분이란 생각이다.

해마다 김장철엔 이 샘물로 동치미를 담근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로부터 동치미가 맛있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덕산약수에 한층 더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된다.

덕산약수가 나에게 주는 또 하나의 은택이 있다. 자연의 생수(生水)로 건강을 챙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움에 더해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여러 가지 삶의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얻는 배움터가 돼준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약수터를 찾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네들로부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얻어 듣는다는 말이다. 약수터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대부분 건강관리를 잘 해 오신 분들이다. 각자 나름대로 익히고 실천하는 건강법이 따로 있어 들을수록 흥미롭고 유익하다. 살아온 궤적이 다른 만큼 축적한 지식과 경륜도 저마다 새롭다.

충북 괴산이 고향이신 서(徐)노인은 '솔잎건강법' 신봉자이시다. 희수(喜壽)를 넘기셨는데도 허리가 곧고 머리도 검어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신다. 30여 년 전부터 솔잎건강법을 실천해 오셨다고 한다.

조선소나무잎(꼭 잎이 2개씩 묶여져 나는 조선솔잎이어야 함을 강조하신다)을 두어 줌 골라 따서 약수물에 헹군 뒤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는다. 노인 말씀으론 200번 가량 씹다가 삼킨다고 한다. 솔잎의 떫은 탄닌맛을 중화시키고 소화를 돕기 위해 대추와 잣을 따로 준비해 가지고 다니신다.

"솔잎의 성미(性味)는 따뜻하고 독이 없어 오장(五臟)을 고르게 하고 풍습(風濕)을 없애주며 배고프지 않게 하고 장수(長壽)를 돕는다"는 설명과 함께 "조선소나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선약(仙藥)"이라는 게 서 할아버지의 주장이다.

"우리 토종 홍화(紅花)는 보배여…."

'홍화 할아버지'로 통하는 성(成)노인의 말씀이다. 경남 창녕이 고향이신데 시골에서 직접 홍화를 재배해 거두어 팔기도 하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파는 것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양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에게 이롭다고 하여 '잇꽃'이라고도 불리는 홍화는 약재로, 염료로, 또 시집가는 새색시 얼굴에 찍는 연지 원료로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한방에서 홍화인(紅花仁)으로 불리는 씨는 골다공증에 특히 효과가 좋고 씨를 짠 기름은 동맥경화증에 좋다고 한다. 유기백금과 칼슘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관상용으로도 아름다운 꽃은 말려서 우려내면 아주 맛좋은 차가 된다고 한다. 성 할아버지는 요즘 효능이 많이 떨어지는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와 '우리의 보배'인 토종홍화를 몰아내는 꼴이 못내 걱정스럽다고 하신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원(元)노인은 토종 씨앗 보존에 힘쓰시는 분이다. 상추, 쑥갓, 근대 등 푸성귀는 토종만 길러 드시고, 고추도 작으면서도 매운 재래종만 심으신다. 늦봄 할아버지 댁에 가보면 장독대는 물론 지붕 위에까지 흙을 채운 사과궤짝과 스티로폼상자가 가득하다.

10여 평 되는 안마당에는 둥굴레와 방가지라고도 불리는 왕고들빼기, 미나리, 돌나물 등 갖가지 식용 야생초들이 오밀조밀 심겨 있다. 한켠에선 요즘엔 보기 힘든 분꽃, 채송화, 맨드라미 등이, 그것도 색색깔로 자란다. 담 너머로는 동부, 강낭콩 줄기가 뻗어 나간다.

음식물 찌꺼기로 거름을 만들어 뿌리신다는데 할아버지네 집에선 초목들이 그렇게 잘 자랄 수가 없다. 올 봄에도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토종 상추 모종을 얻어다 심을 참이다.

약수터 청소를 도맡아 하시는 박(朴)노인은 쇠뜨기풀을 열심히 뜯으신다. 그늘에서 시들시들하게 말려 샘물을 붓고 차처럼 끓여 마시면 고혈압, 동맥경화에 좋다고 하신다. 전통의학에도 소양을 지니신 '쇠뜨기옹(翁)'의 말씀에 따르면 쇠뜨기는 이뇨제로 쓰여 몸이 붓거나 소변이 잘 안나오는 증세에 효험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혈 및 항염증작용도 해서 피가 나는 상처에 생즙을 내어 바르면 피가 멎고 상처가 빨리 아문다고 한다. 하긴 쇠뜨기는 빙하기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식물 중의 하나이니만치 생명력이 남달리 끈질기리라 짐작된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 소가 잘 먹을 뿐 아니라 '토끼과자'라는 속명처럼 토끼도 아주 좋아하는 풀이다. 초식 가축의 먹이이니 사람이 먹어도 해가 없음은 확실한데 중요한 것은 깨끗한 풀을 채취해 정결하게 달여야만 한다. 특히 논밭 가까이에 있는 것은 농약이 날아와 묻었을 수 있음으로 피해야 한다.

또 햇볕에 말려 오래두면 하얗게 변해 효험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녹색이 살아 있는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 이런 점을 지키지 않고 부주의하게 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신다.

덕산약수터에서 만난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얻는 삶의 지혜는 '자연의 샘물'만큼 신선한 '정신의 샘물'이다. 오늘이 경칩(驚蟄). 이제 곧 봄기운이 대지를 깨울 것이다. 봄을 기다리시던 어르신네들이 다시 약수터를 찾아오실 것이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전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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