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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입학식. ⓒ 성락
이제 입학식이 막 시작됩니다. 여자 교장 선생님이 인자하신 목소리로 훈시를 합니다. 각 부장 선생님들과 반 별 담임선생님들 소개를 끝으로 30여분만에 입학식은 끝이 났습니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 병원을 오가며, 몸 상태가 좀 나아진 시기를 이용해 학습지 풀기와 학원 보충수업으로 초등학교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당당히 중학교에 입학한 중경이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좀 엄할 것 같은 남자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자, 신입생 전원 일어∼섯!"
"뒤로 돌아."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접어서 여학생은 옆 남학생에게 준다, 실시."

자기 머리하나만큼이나 더 큰 여학생이 건네는 철제의자를 중경이는 주저 없이 받아 듭니다. 등에 멘 가방도 힘겨워 보이는데 양팔로 철제 의자를 간신히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그래도 아빠가 시킨 대로 어깨를 펴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입니다.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의젓한 중학생입니다.

"자, 의자를 바닥에 끌지 마라."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행사장을 울립니다.

"아유, 의자를 각자 들고 가게 하지…. 옆 여자애는 중경이보다 힘도 셀 것 같은데."

보다못한 아내가 조그만 소리로 한 마디합니다. 엄마의 마음이란 다 그런 것이지요. 의자를 들고 뒤편으로 온 중경이는 그제서야 엄마아빠를 발견합니다. 의자를 놓고 씩씩하게 V자를 그려 보입니다. 그러나 곧 키 큰 아이들 숲에 묻혀버립니다.

첫 종례시간에 학부모도 함께 했습니다.
첫 종례시간에 학부모도 함께 했습니다. ⓒ 성락
교실에 가봅니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많아 서먹한 분위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끌벅적한 교실은 담임선생님이 오시면서 조용해집니다. 선생님은 따라온 학부모들이 아이들 뒤에서 첫 종례를 참관할 수 있도록 배려하십니다. 영어 담당이신 담임선생님은 깔끔하면서도 당당한 좋은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서 중경이와 함께.
학교 정문 앞에서 중경이와 함께. ⓒ 성락
중학생이 된 중경이에게 아빠는 다른 바람이 없습니다. 오직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시력을 회복하고, 식생활 습관을 스스로 조절하여 아토피도 말끔히 나았으면 합니다. 공부를 남보다 더 잘하길 바라는 것은 과분할 것입니다. 그저 정의롭고 당당한 학생으로 성장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 가족의 정해진 코스, '하모니' 노래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입학식을 마친 중경이는 곧바로 예약된 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수술 후 경과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수술한 오른쪽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어 내심 걱정이 됐었는데,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수술도 매우 잘 됐다는 것이 담당 의사 선생님의 소견입니다.

모처럼 오붓한 저녁식사를 합니다. 아이들은 돼지갈비를 끝까지 고집합니다. 아내와 저는 두부보쌈과 순두부찌개로 메뉴를 바꾸자고 하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지고 맙니다. 아내는 상추, 배추 등 야채 한 잎이라도 더 먹이려고 내내 씨름을 합니다. 이렇게 한 가족이 마주 않아 아웅다웅하며 저녁을 먹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참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빠, 하모니 노래방 문 열었다."

작은 아들 제경이가 은근히 바람을 잡습니다. 언제부터 영업을 다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의 '정해진 코스'인 '하모니'노래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제경이가 신나게 앞장서 계단을 내려갑니다. 뭔가 단단히 벼르고 있는 노래가 있나봅니다.

'하모니' 노래방의 실내 분위기가 전보다 깔끔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넉넉한 미소의 주인 아주머니는 그대로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주 문 닫으신 줄 알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기사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이들이 빨리 들어오라며 보챕니다.

녀석들은 언제 배웠는지 전에 듣지 못한 신곡들을 신나게 불러댑니다. 요즘 노래들은 참 길다는 느낌입니다. 끝났는가 싶으면 또 시작하고 이상하게 마무리를 합니다. 제경이 녀석은 남자가수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내려다 기침을 한참하고도 또 허스키한 목소리를 끝까지 고집합니다. 중경이는 그런 제경이가 느끼하다며 옆에서 인상을 씁니다.

아이들에 비하면 제 레퍼토리는 초라하기만 하군요. "에이, 또 그 노래야" 녀석들이 식상해 합니다. '그래, 까짓 거 망가지는 거지 뭐' 아주 오래된 노래 김상진의 '이정표 없는 거리'를 특유의 가늘게 늘어지는 바이브레이션을 살려 부릅니다. 녀석들 표정에 '뭐 이런 노래가 다 있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내는 배꼽을 잡습니다.

또 고민이 됩니다. 엉겹결에 하동진의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를 시작합니다. 아, 그런데 또 아내의 눈 흰자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얼씨구" "어이구, 참" 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겁니다.

'사랑에 한 번 빠지고 싶어요, 아주 예쁜 여자를 만나.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해변을 둘이서 걷고 싶어요. 가슴이 벅차 올라요, 눈물마저 핑 도네요….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아주 멋진 여자를 만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그대와 함께 있고 싶어요….'

노래를 부르는 저도 좀 거북합니다. 떨어져 살며 기껏 일주일이나 열흘만에 얼굴을 볼 수 있는 혈기왕성한 남편이 이런 노래가사나 읊조리고 있으니, 아내 입장에서 듣기 좋을 리 없지요.

엊그제 다툰 앙금이 다 가시지 않았는데, 이래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럴 땐 뭐니뭐니해도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가 특효입니다. 서수남의 '아내에게'를 신청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여, 내 인생의 동반자여. 이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사랑하리오, 사랑하리오.'

멋진 폼의 중경이. 몇 년 전 찍은 사진입니다.
멋진 폼의 중경이. 몇 년 전 찍은 사진입니다. ⓒ 성락
아내는 노래 책만 뒤적이며 애써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들도 이번만큼은 아빠 노래에 공감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노래를 하는 내내 저는 표정관리가 잘 안됩니다.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제 마음을 다 이해했을 겁니다. 노래는 이런 맛에 부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아이들의 신나는 무대가 이어집니다. 오늘은 아내도 탬버린을 흔들며 장단을 맞춥니다. 노래방 주인 아주머니가 이 분위기를 좀더 지속하도록 도와줍니다. 한 시간을 10분 여 남기자 추가시간 30분이 타이머에 찍힙니다. 이후에도 10분씩 두 번이나 연장이 됩니다. 무려 1시간 50분간 원없이 즐겼습니다. 또 시간이 추가될까봐 몇 분 남기고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중경이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중경아, 어깨를 펴고 배를 쑥 내밀어 봐. 고개를 들고 팔을 힘차게 휘둘러라. 당당한 중학생으로 네 뜻을 마음껏 펼쳐라. 성중경 파이팅!"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런 우리 가족들과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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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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