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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계곡의 절벽을 따라 흐르는 물
화림계곡의 절벽을 따라 흐르는 물 ⓒ 김동희
정확히 8년 전이었다. 유홍준의 <우리문화유산답사 2권>을 가지고 지리산 자락 답사를 했다. 진주를 출발해 산청으로 그리고 함양으로의 답사 길은 안의마을과 농월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학시절 돈 없던 우리는 함양에서 안의마을로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와서 한 시간마다 있을법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농월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8년의 시간이 나에게 선사한 것은 편안하게 차에 앉아서 이 곳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거창에서 안의마을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길에 대한 기억이 좋은 나는 안의마을을 지나 흐르는 내천과 광풍루를 보자 터미널이 있는 곳을 바로 알아차렸다.

잔잔히 흐르는 옥빛 물색이 곱다.
잔잔히 흐르는 옥빛 물색이 곱다. ⓒ 김동희
터미널… 함양에서 탄 버스에서 내리던 곳, 시내버스를 기다리다 탄 곳. 그곳은 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변한 곳도 없고 그나마 대합실의 의자는 불에 탔는지 시커멓게 그을려있고 유리문은 없어서 바람막을 곳도 없었다. 그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먼저 허삼둘네 고택으로 하기로 했다. 허삼둘네 고택은 양반집이 아니라 그냥 돈 많은 상민의 집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 구조 또한 여느 양반집과는 다르다. 그 길이 가물가물해 빵 가게에 문을 빼꼼이 열고 길을 물어보았다.

"저기요.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겪는 일인 듯 대꾸를 한다.

"뭐요? 여기서 가장 맛있는 갈비집이 어딘지 물어볼라 그래요?"

그랬다. 이곳은 그 유명한 체인점 ‘안의 갈비찜’의 본고장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갈비탕집, 갈비집이 즐비하다. 외지 사람들이 오면 이 많은 집 중에 어느 집이 맛이 있는지 궁금해 할만 하다.

안의초등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는 아주 쉬웠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8년 전 허삼둘네 집에 들어가려면 조그만 골목길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다른 집과 달리 양반집 비슷하게 생긴 허삼둘네 집이 있었다. 골목길 돌담길은 너무나 예스러웠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 조그만 길이 보이질 않았다. 큰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찰라 큰길가에 허삼둘네 집이 서있질 않은가! 그렇다. 그 조그만 길은 포장도로로 큰 차 한 대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바뀐 것이다. 거기다 대문은 공사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새것으로 바뀌어 그 색이나 모양이 조화롭지도 못하다. 더더욱 놀란 것은 본 건물은 앞부분이 새카맣게 그을려져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난 그렇게 너무나 많이 변한 허삼둘네 집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기분이 그렇던지 들어가 보지도 않고 애써 회피하여 터미널로 가버렸다.

차에 올라 농월정으로 향했다. 사실 농월정도 불에 소실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던 터라 그 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터미널, 허삼둘네, 농월정 모두 불에 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농월정 너럭바위들
농월정 너럭바위들 ⓒ 김동희
농월정에 도착하니 자연은 그대로였다. 화림계곡의 물은 멋지게 휘감아 갈 길을 가고 있었고 너럭바위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물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 와 봐도 좋은 곳이다. 흐르는 물은 너무나 시리고 맑다. 조금만 따뜻했어도 양말을 벗고 너럭바위에 앉아 발을 담갔을 것이다.

너럭바위와 물에 비치는 달을 희롱했다 하는 농월정. 그 이름만큼이나 풍류가 가득한 그곳은 사라졌다. 오직 타버린 잿더미들과 그 옆에 서있었던 표지판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의 곡선은 참 아름답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의 곡선은 참 아름답다 ⓒ 김동희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건 꽤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방치되어 있는 듯하다.이 제 그곳은 그냥 물놀이 장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여름에 비라도 많이 오면 잿더미들은 강을 따라 사라질 것이다. 농월정도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까 염려스럽다.

잿더미만 남은 농월정. 팻말만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잿더미만 남은 농월정. 팻말만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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