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족인 채유정보다는 김 경장의 긴장이 더 컸다. 난데없이 북한 사람들의 안내로 여기까지 왔고, 거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까지 만나다니? 둘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잠시 어색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눈에 익기 시작하자 외국인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헤치며 천천히 다가가자 한척의 작은 나룻배가 강 한가운데 떠있었다. 거기서 플래시 불빛이 두번 점등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트를 나룻배에 바짝 붙였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얼른 이쪽으로 건너왔다.

주위가 어두웠기 때문에 남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서양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50대 중반 정도? 머리털은 짧고 코는 높이 솟아나 있었으며 피부는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목은 얼굴의 굵기와 똑같았고 땅딸막한 체구에 어깨가 바둑판처럼 넓었다. 그는 의미 모를 미소와 함께 김 경장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난 독일에서 온 하우스 돌프라고 합니다."

영어로 또박또박 말한 그의 어조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김 경장은 그와 손을 맞잡았지만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았다. 아직 상대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도 영어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죠?"

"난 고고학자이면서 사진작가요. 이미 하늘에서 바라본 땅이라는 사진 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김 경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술을 중얼거렸다.

"하우스 돌프라……"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우스 돌프는 고고학계에 꽤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사진에 담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의 친구인 피터 크랴샤와 함께 중국의 만주 지방에 갔었죠."

그는 나룻배의 의자에 앉으며 중국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하우스 돌프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중국을 찾아 만주로 향했다. 만주의 광활한 들판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몇 년째 사진 집 발간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하늘에서 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둘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찍고, 곧바로 만주 지역의 무순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만주지방의 광활함은 익히 들어 왔었다. '하늘가와 땅 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맞닿아' 있다는 유명한 구절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그 광활한 모습을 담아 사진집에 싣고 싶었던 것이다.

둘은 무순 공항에서 많은 돈을 주고 경비행기를 빌렸다. 무순과 심양 일대의 넓은 들판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들은 그들이 중국이 필요로 하는 관광용 사진까지 찍어 준다는 조건으로 비행 허가를 받았다.

비행기는 무순 일대의 광활한 들판 위를 날았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는 들판 위로 간혹 나무와 바위가 솟아 있는 게 보였다. 하우스 돌프는 그 들판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비행기가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들판의 모습은 끝이 없었다. 낮은 구렁과 평평한 논과 밭, 그리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얼마를 더 날아가자 들판이 끝나고 작은 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벌여져 있는 것이다. 하우스 돌프는 그 산의 모습을 향해 셔터를 눌렀고, 그의 친구 피터 크랴사는 비행기 조종사에게 방향을 일렀다. 한참 동안 카메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피터 크라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산 모양이 이상하지 않아?"

하우스 돌프도 그 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의문을 품고 있던 터였다.

"군데군데 솟아나 있는 산이 좌우종횡 규칙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아."

"그렇지. 마치 체스 판을 들판 위에 펼쳐놓은 것 같은데."

"산의 모양도 특이해."

피터 크라샤는 조종사에게 비행기의 고도를 낮추게 했다. 산 위로 바투 다가섰다. 산의 모습이 가까이 보이자 그 형체가 더 잘 드러났다.

"사각뿔 같이 보이지 않니?"

"사각뿔 같이 생겼다면……."

둘이 동시에 얼굴을 마주보며 외쳤다.

"피라미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