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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밭갈이 그림, 우리소보다는 좀 못생겼지만 소 그림 중에서 가장 잘생긴 소다.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에 실린 사진이다.
김홍도의 밭갈이 그림, 우리소보다는 좀 못생겼지만 소 그림 중에서 가장 잘생긴 소다.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에 실린 사진이다.
잘생겼다고 해서 좋은 소는 아니다. 비싸지도 않다. 잘 생긴 우리 소는 성깔이 있었다. 힘은 좋은 편이었지만, 부리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겨우내 소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끓여주는 소죽을 아침저녁으로 받아먹으며 시간만 보내면 된다.

봄이 되어 논갈이가 시작되면 우리 소는 꼭 성깔을 부린다. 힘든 일이 하기 싫어서 발광을 한 번씩 한다. 논갈이 하다 쟁기 째 끌고 도망간다. 튀어봐야 논에서 우리 집 마구간이다. 그날 우리 소는 몽둥이찜질을 당한다. 소보다 더 화가 나신 아버지의 몽둥이 세례를 받는다. 맞으면서 발광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논으로 또 끌려간다.

아버지는 봄마다, 또 말 잘 듣지 않을 때마다 소에게 몽둥이찜질을 하시지만, 소를 무척 아끼시고 사랑하신다.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내기 등 바쁠 때, 소 없는 사람들은 소를 하루 빌려가는 대신, 장정 한 사람이 대신 하루 일해 줘야 한다. 소 하루 일 삯이 장정 하루 일 삯과 맞먹었다.

소가 아프면 아버지는 한숨도 못 주무셨다

내가 배가 아프면 아버지는 내 배를 만져주신다. 나는 배가 시원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트림은 아버지가 하셨다. "끄윽, 끄윽" 하시면서 내 배를 만져주시고는 내 배가 다 나았다는 듯이 어느새 주무셨다.

그러나 소가 아파 누워있으면 아버지는 밤새 못 주무셨다. 소가 배가 아픈지 다른 데가 아픈지 어떻게 아느냐고? 소는 아프면 무조건 배가 아픈 거다. 그리고 척 보면 안다. 일단 여물을 안 먹는다. 그냥 누워만 있다. 똥도 물똥을 싼다. 목을 축 늘이고 말을 한다. 배가 아파 죽겠다고.

나는 그 말을 못 듣지만, 우리 아버지는 잘 들으셨다. 소가 아프면 막걸리를 먹인다. 2리터쯤 되는 큰 소주병(지금은 정종병)에 막걸리를 넣어서 소의 입을 벌리고 들이붓는다. 막걸리를 마신 뒤 소는 누워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내가 아는 한 우리 동네 소가 아파서 죽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소는 잘 안 죽는다.

소에게 통하는 네 가지 말

소에게도 언어가 있다. "이라"는 빨리 가자는 말이다. 보통 "이라"라는 말로만은 잘 통하지 않는다. "이라 이 눔의 소 새끼"하고 고함을 질러야 겨우 움찍거린다. 회초리를 들면 눈을 번득거리며 겨우 박차를 가한다. "워"는 정지, 스톱의 뜻이다. 워라는 말은 잘 듣는 편이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은가 보다.

그런데 "워"해도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발정을 했을 때다. 동네에서 키우는 소는 모두 암소다. 황소는 종우인데, 동네에서 돈을 모아 한 마리 마련한다. 그리고 동네 어귀 이발소집에 맡긴다. 그 황소네 집은 그 소로 농사를 짓는다. 대신 온 동네 과부 암소들에게 교미시키는 일을 마다않고 해준다.

이발소집이 학교 등굣길에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 길에 소 교미 장면을 보고는 싸우는 줄 알았다. 고학년 때에야 그것이 교미인줄 알았다. 그 때는 호기심도 있었고, 거북하기도 했다. 내 아랫도리를 누가 볼까봐 애 먹기도 했다.

다음으로 소에게 중요한 말은 "이라로"와 "워띠"다. "이라로"는 "오른쪽으로 돌아"라는 뜻이고 "워띠"는 "왼쪽으로 돌아"라는 말이다. 이 말 역시 중요하다. 고삐를 잡고 갈 때는 고삐로 목 부근을 쳐서 신호한다. 고삐가 없을 때는 이 말로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라로"와 "워띠"를 소가 잘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소도 눈치가 있어 좌우 어느 쪽으로 돌아야 할 경우를 안다. 그 때 무슨 말이 들리면 일단 아무 쪽으로나 즉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그런데, 주인으로부터 "“워띠 이놈의 소 새끼야"라는 짜증스런 말과 함께 고함소리가 들리면 그 반대쪽으로 돌린다.

논갈이 밭갈이 할 때 한 고랑을 끝까지 갈고 다음 고랑을 갈 때 돌려야 한다. 이때는 오른쪽으로 돌린다. 이때의 "이라로"는 조금 다르다. "이라∼로오"가 된다. 소는 180도 돌리라는 뜻인 줄 안다.

소에게 통하는 말은 모두 이렇게 네 가지다. 그러나 진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놈의 소새끼"라는 말일 게다. 어른이고 애고 소에게는 모두 반말을 쓴다. 욕설이 조금씩 섞인다. 어쩌면 어른이고 애들이고 소에게 욕과 고함을 치면서 화풀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소는 정신건강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

아침에 정말 귀찮은 소 올리기

우리 동네의 소 키우는 방법은 조금은 특이했다. 동네 이름이 평산인데, 등잔산(등잔산 뒤쪽의 높은 산이 요즘 유명해진 천성산이다)을 중심으로 산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모내기가 끝날 때쯤이면 소를 산에 올리기 시작한다. 모내기가 대강 끝나면 소도 한가해진다.

아침에 소를 소먼동까지 올려놓으면 소는 하루 종일 뒷산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거나 놀거나 잔다. 오후가 되면 다시 소먼동 가까운 데까지 내려온다. 소를 키우는 동네 애들이 뒷산에 가서 소를 데리고 집으로 가면 된다.

소를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이것은 조금은 위험하다. 소가 가끔 엉뚱한 데로 가서 집으로 못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은 찾아온다. 그러나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그러나 어릴 때 소를 아주 잃어버린 경우는 없었다.

7월 중순 쯤부터 차례를 정해 소를 돌본다. 소 키우는 집마다 차례를 정해 목동이 된다. 가까운 두 집이 한 짝이 된다. 소패가 오면 그 집이 차례가 된다. 길쭉한 나무판자에 소가 있는 집 택호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 소패다. 아침에 소를 소먼동까지 끌고 온다. 주로 애들이 하는 일이다. 어릴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소 올리는 일이었다.

소를 마구간에서 끌어내 고삐를 끌고 산으로 올라간다. 소먼동 가까이 가서 고삐를 소뿔에다 칭칭 동여맨다. 고삐를 그냥 두면 소가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 그리고 내려오면 된다. 형제가 넷이나 되기 때문에 서로 미루다가 아버지께 합동으로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아침에 소 올리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맘 약한 내가 가장 많이 소를 올렸다. 진짜다.

우리 동네 뒷산은 높이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된다. 동네 바로 뒷산은 평지가 좀 있었는데 ‘짱밭띠이’라 불렀다. 두 번째는 당산나무, 지금 보니 회나무인 듯한 나무가 있는 중턱이다.

소를 아침에 원래 이곳까지 올려야 하지만 대부분 그 중간에서 소를 놓고는 아래에서 고함만 서너번 치거나 돌멩이질 몇 번 하다 내려가고 만다. 이곳이 소먼동이다. 그곳에서 약 200m쯤 더 올라가면 차가운 맑은 물이 고이는 샘터가 있는데, 이곳을 참샘이라 불렀다. 사람이고 소고 목마를 때 많이 이용했던 소중한 곳이다. 가장 높은 곳은 등잔골 먼동이라 불렀는데, 제대로 된 이름은 등잔산이다. 등잔골은 바람이 억세게 불었다. 소판(소 돌보는 차례)때 소를 이 등잔산에 올려놓으면 된다.

소는 뒷전, 놀이에 빠져버린 아이들

오후에 애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짱밭띠이에서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이 일은 거의 내 차지였다. 오후가 되면 하나 둘씩 짱밭띠이까지 올라간다. 여기서 신나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야구였다.

점심 먹고 시간이 좀 지났다 싶으면 산으로 올라간다. 온 동네 소 몰러 온 애들이 다 모인다. 그러면 패를 나눠 야구가 시작된다. 시골 애들이 어떻게 야구를 알았을까? 부산상고 다니던 동네 형이 우리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줬다. 당시에는 형들의 말을 잘 들었다.

야구 방망이는 소나무로 만들었다. 겨울철 소나무에는 송진이 별로 없다. 낫으로 손잡이 끝부분에 동그란 테를 만들어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공은 서울에 사는 친구의 큰 형님이 경식 테니스공을 갖다 주었다. 당시 테니스공은 매우 질겼다. 일 년 정도 사용하면 털이 다 빠졌다. 그래도 우리들의 보물이었다. 물론 야구 장갑은 없었다.

소가 짱밭띠이에 내려오기 전부터 야구는 시작된다. 포수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심판이 대신했다. 투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가서 보면 투수와 포수 사이 거리가 너무나 짧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애들이 적을 때는 2루가 없어지기도 했다. 야구가 한창 무르익을 때 쯤 소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에서 하는 야구에서는 홈런이 많았다. 방망이에 맞은 공이 날아가 나무나 풀 속에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공을 빨리 찾지 못하면 홈런이다. 점차 수비기능이 향상되어 황당한 점수는 줄어들었다. 대개 30점 이내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놀이가 끝나면 야구공과 방망이를 은밀한 곳에 숨겨놓는다. 그 은밀한 곳은 야구에 끼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지만, 야구하는 우리는 모두 아는 장소였다. 그래야 누구든지 야구를 할 수 있으니까.

저녁 무렵 일단 짱밭띠이에 내려오면 소들은 조금 휴식을 취하며 논다. 야구를 하지 않은 애들은 소를 몰고 집으로 간다. 야구하는 애들은 야구에 푹 빠져 소가 내려온 것을 일단 확인하고는 소를 잊어버린다. 일부 애들이 소를 몰고 가면 대부분 소는 몰지 않아도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망할 놈의 마지막 회, 그것도 마지막회에서 승패가 판가름 나는 중요한 경우가 생긴다. 소는 이내 관심 밖이 되고 만다. 그날은 소가 나보다 먼저 집에 가 있다. 집으로 가다 논이나 밭에 벼나 고구마 콩을 훑어 먹고 가면 큰일 난다. 그 날은 엄청 혼난다.

소에게 가장 좋은 미끼는 망개순

우리 소는 성깔이 있다고 했다. 산에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짱밭띠이에 내려오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얌전한 소들은 언제나 쉽게 잡힌다. '워' 한번만 하면 꼼짝 않고 고삐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린다. 발정한 소와 우리 소는 잘 잡히지 않아 힘들다. 이 때는 미끼를 쓴다. 소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다 먹으라고 코앞에 갖다 댄다. 미끼를 먹으려할 때 코뚜레를 확 낚아채면 된다.

미끼로 가장 좋은 것은 망개순이다. 망개나무는 가시가 있고 단단한 넝쿨이 있지만 순일 때는 매우 부드럽다. 소가 매우 좋아한다. 특히 우리 소는 망개순을 가장 좋아했다. 발정했을 때도 망개순 미끼만 있으면 쉽게 잡히곤 했다.

소가 좋아하는 풀은 대개 냄새가 없는 깔끔한 풀이다. 가끔 산이나 들을 다닐 때 식물들을 보면 저것은 소가 좋아하는 풀, 저것은 절대 소가 먹지 않은 풀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토끼를 한번 키우고 나면 토끼가 좋아하는 풀, 싫어하는 풀을 구분할 수 있다.

소에게 가장 무서운 먹이는 곡식

소가 잘 먹는 것 중에서 어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곡식이다. 보리는 까칠해서 소가 잘 먹지 않는다. 그러나 벼와 밀은 소가 잘 먹는다. 말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놓으면 고삐 풀린 소가 한없이 먹어댄다. 마당에 곡식을 말릴 때 가장 두려운 것이 고삐 풀린 소다.

마른 곡식을 소가 먹으면 곡식이 배에 들어가 불려진다. 쌀을 넣어 밥을 하면 쌀보다 밥이 훨씬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소는 좋아하는 곡식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 그러면 소는 배가 터져 죽는다. 곡식이 아까워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배가 터질 줄 모르고 먹을까 무서운 것이다. 소는 아직도 인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많다. 소는 좀 미련스럽다. 걱정은 많이 하지만 배 터져 죽은 소는 한 번도 못 보았다.

('우리 소'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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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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